[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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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 민속오일시장에 어머니를 따라 간 일이 있었다. 어머니는 장 안을 한 바퀴 돌아보고 오겠다면서 나를 호빵집 앞에서 기다리게 하셨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빵집 앞에서, 나는 당연히 군침을 흘리며 빵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서 있었다. 빵집 아저씨가 나를 보더니
“너, 빵을 먹고 싶은 거로구나?”
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빵 하나를 집어주면서 먹으라고 하신다. 덥석 빵을 받아 먹고 있는데, 장을 둘러보고 나오던 어머니가 나를 발견하고는
“너, 돈이 어디 있어 빵을 산 것이냐?”
하고 놀라신다. 내가 말하기도 전에 빵집 아저씨는
“외상으로 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외상을 싫어하는 맛돈집 할아버지 - 우리 할아버지는 외상을 절대 안하고 언제나 현금(맛돈) 범위 내에서 거래했다고 붙여진 별명 -인데, 그 손자는 1전짜리 빵을 외상으로 사 먹었으니, 할아버지께서 아시면 큰 일이 날 것입니다.”
하고 겁을 주었다. 어머니도 빵집 주인 아저씨와 장단을 맞추며 “할아버님 아시면, 외상으로 빵을 사 먹었다고 야단칠 텐데 어쩔거니?” 하며 놀려대셨다.
당시 빵 하나의 값은 1전이었다. 그 순간 나는 내 수중에 동전 1전조차 없는 것을 그토록 아쉬워해 본 적이 없었다.
내게는 널손자(형의 손자)되는 젊은이가 조그마한 마트를 운영하고 있다. 어느날 아침 내가 마트에 들렸더니 마트 앞길에다 호스로 물을 뿌리면서 무엇인가를 줍고 있기에 물었다.
“무신거 주섬서?(뭇엇을 줍고 있는가?)”
“동전 주섬수다. (동전 줍고 있습니다.)”
손자는 빙그레 웃으며 주먹쥐었던 손을 펴 주은 동전을 보여주며 대답했다.
“동전이라니?”
“요즘 아이들 큰일입니다. 할아버지! 물건을 사고 가는 아이들에게 거스름돈으로 동전을 주면, 상점 앞 길바닥에 던져두고 그냥 가 버립니다. 동전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라 마씸.(모양입니다.)” 하고 한숨을 쉬었다.
“게난(그렇다면), 하루에 얼마 정도나 모아지는가?”
“보통 1,000원 이상은 되어 마씸.(됩니다.)”
우리가 동전을 가치없다고 길바닥에 내던져버릴 정도로 잘 살고 있는가도 문제이고, 선생님이나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돈의 가치에 대하여 어떻게 가르쳤기에 이 지경이 되었는가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돈을 아껴 써라, 저축을 해라 하는 절약정신은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
몇 해 전 유럽여행 중에 로마에 들렀더니, 로마의 트레비분수에는 세계 각국에서 여행 온 관광객이 분수를 등지고 서서 어깨 너머로 동전을 던지느라 야단 법석이었다. 이렇게 하면 로마에 다시 오게 된다는 낭만적인 속설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서울 청계천에도 동전던지는 시설을 갖추어 놓아 모여진 동전을 불우이웃돕기에 활용한다고 한다. 그러나 마트앞에 거스름돈을 버리고 가는 아이들은 이런 낭만적인 생각이 아니라 쓸모없는 동전이라는 생각에 던져두고 가는 것이다.
동전이 보이면 항상 돼지저금통에 집어 넣도록 타이르고, 저금통이 언제면 가득 찰까 손꼽아 기다리며 저축의 보람을 느끼도록 가르쳤던 나의 자녀들의 어린시절을 되돌아 보면서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계산대 앞에 통을 하나 놓고, 길바닥에 던져버리고 가는 동전을 그 통 안에 넣도록 하는 게 어떻겠나? 그러면 동전 줍는 수고도 덜고, 저금도 될 것이고, 보람되게 활용할 수도 있을 텐데..... 하고 제안했다.
한참 후에 들러 그 결과를 확인한 결과, 통 속에 동전을 넣고 돌아가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기는 한데, 아직도 던져버리고 가는 아이들이 없어지지는 않고 있다고 했다.
KBS TV를 보다가 스리랑카에서 우리 나라로 시집 온 여성이 역시 슈퍼마켓 앞에 버려진 동전들을 주워 모아 고향에다 학교를 지어 줄 계획이라고 인터뷰 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길바닥에 버려진 동전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으나, 그것들을 모아 고향 스리랑카에다 학교를 지어주겠다고 꿈을 꾸다니, 자라나는 우리 아디들 세대는 이 말을 듣고 뭔가 깨달음을 얻어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은행에서는 이런 동전을 제작하느라, 동전의 액면가보다 더한 막대한 예산을 지출하고 있다. 실제로 10원짜리 동전 제작에는 30원 이사의 비용이 든다. 1년이면 우리 나라 주화 제작에 700억원의 예산이 소모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들은 정작 동전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초등하교 선생으로 근무하는 분게 이런 얘기를 들려주며 저축에 대하여 관심을 갖도록 교육을 해야겠다고 말씀드렸더니“요즘 어린이들은 자기 물건 잃어 버려도 찾으러 오지도 않습니다. 잃어버리면 아무렇지도 않게 새로 사 주는 부모님이 계시니 아무런 걱정이 없다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라는 대답을 하셨다.
이 말을 들으니 우리 나라의 앞날이 걱정되었다. 저축이 없는 나라가 어떻게 경제대국이 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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