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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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가 특별자치도로 승격되면서 중앙정부의 외교. 국방을 제외한 모든 행정업무 권한을 지방으로 이양했다고 한다. 재정자립도가 약한 제주도가 격에 맞지 않게 너무 많은 업무를 이양받고, 힘에 부쳐하는 소리가 간혹 들리고 있어 아직은 시기상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여튼『특별자치도』라는 이름에 걸맞게 모든 행정을 자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된다면 도민의 한사람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만하다. 제주도가 특별자치도로 승격함에 즈음하여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조선시대 제주목사는 『선참후결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제주가 변방이다 보니 모든 사건을 일일이 중앙에 보고하고 결재를 받은 후에 처리하기에는 지리적. 시간적 어려움이 많았기에 위급한 상황이 벌어지면 중앙의 결재이전에 목사의 결정으로 먼저 처리하고 사후에 보고하는 제도이다.
제주목에는 강 이방이라는 나이든 아전이 있었다. 야무진 일처리와 뛰어난 인품에 비해, 얼굴은 곰보에다 작달만한 키로 보잘것없는 용모를 지니고 있었던 모양이다. 제주목사가 발령 나면 으레 강 이방이 한양까지 올라가 신임목사를 제주로 모셔오는 일을 도맡아 왔다.
이번에도 신관사또를 모시러 한양으로 올라갔다. 강 이방이 산관사또 댁에 도착하여 새로 맞이하게 될 목사를 쳐다보니 어머니 젖도 안 뗀 듯 앳된 어린 상정이어서 맘 속으로
“애고, 일 가르치려면 고생깨나 하겠구만.” 하고 각오하고 있었다.
반면 시관사또인 목사의 눈에도 강 이방의 볼품없는 용모가 거슬렀는지 “제주에는 이다지도 인물이 없는가? 하필이면 ‘곰보’ 에다 키도 ”땅딸보“ 이니, 전혀 쓸모가 하나도 없겠구나.” 하고 외면해 버렸다. 목사는 강 이방이 말하는 것을 귀담아 듣지도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여 한양을 출발했는데, 강 이방을 아예 일행의 꽁무니에 따라오도록 지시하였다.
목사 일행이 전라도 나주를 지나치게 되었는데 전라감사 휘하의 군졸들이 앞길을 막아서면서 “웬 행렬이나? 멈춰라!” 하고 소리쳤다. 신임 제주목사가 어쩔 줄을 몰라 우왕좌왕하는 것을 보며 강 이방은 속으로
“내, 이럴 줄 알았지. 어린 것이 어찌 처신하는지 두고 보자.” 하고 시치미를 떼고 가만있었다. 군졸들은 심지어 목사를 말에서 내리라고 호통치며 기세등등하게 행동하였다. 더 이상 그냥 두고 보다가는 목사의 체통이 말이 아니게 될 것 같은 상황이 되었다.
“어사 기를 올려라! 뭣들 하느냐!”
이 때 강 이방 입에서 커다란 불호령이 올려 퍼졌다. 어사 기를 올리라는 소리에 군졸들은 암해어사 행렬로 알고 흔미 백산하여 도망쳐 버렸고, 목사도 놀ㄹ서 눔난 두리번거렸다. 강 이방이 그제야 앞으로 나서 말씀드렸다.
“여기는 전라감영이 있는 곳이고, 제주목사는 부임 시 이곳에 들러 전라감사에게 예를 갖추고 지나가는 게 관례이옵니다.”
경험이 많은 강 이방이 목사을 위기에서 구하고 전라감영으로 모시고 가 예를 갖추게 해 드린 것이다. 신임목사는 강 이방에게 홀딱 반하여 “도대체 군졸들은 왜 도망을 갔을까요?” 하고 물었다.
강 이방은 목사에게 이것저것 목사의 직무와 갖추어야 할 예절을 조목조목 설명해 드렸다.
“제주모사에게는 선참후결권이 있어. 목사기 이에도 어사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사기는 제주도 안에서만 유효한 것으로 전라도 땅에서는 써 먹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까처럼 군졸들이 행패를 부릴 때면 당하고만 있을 수 없어 , 어사기를 올리라고 소리치자 군졸들은 암행어서 행렬인 줄 알고 도망쳐 버린 것입니다. 군졸들은 전라감사에게 예도 갖추ㄱ지 않고 이곳을 지나가는 우리 일행을 괘씸하게 본 것이지요.“
또한 선참후결권이 부여되는 있다 하더라도 이를 함부로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단단히 목사에게 각인시켰다고 한다.
신임목사는 강 이방의 설명을 듣고서야 감탄하며 외모만 보고 판단하려 했던 자신을 깊이 뉘우치고 휘회하였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제주목사 겸 어사』직책의 본뜻을 알게 되었고, 『선참후결권』도 가지고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과거에 합격하고 제주목사로 임명되어 눈에 뵈는 게 없어 제멋대로 행동하다가 한 대 얻어맞은 것이다. 그 뒤로 목사는 모든 일을 강 이방과 상의하며 선정을 베풀어 휼륭한 목사가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오늘날 제주특별자치도가 자율권에 행사하게 되었다고 하여 방만하게 도정을 운영하여서는 안 될 것이라는 교휸 또한 우리가 새겨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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