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차 제주 달리도서관에 온 김소연 시인을 만났다

달리도서관 초청으로 제주에 강연 온 김소연 시인을 만났다. 시인은 제주에 싸들고 온 세 권의 책을 한 줄도 읽지 않았단다. 책장을 덮고 숲을 걷고, 그러다 뱀을 만나고, 벌레를 봤다고 한다. 세상에 눈요기 할 것이 너무나 많다면서, 어째서 책을 읽으라고만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걸 알게 하는 것이 문학이 아닐까. 하지만 책이 아니어도 알 수 있으면 좋다. 평생 한 명만 보고 사랑하며 살아도 인생을 배울 수 있듯이 말이다. 
 
▲ 지난 22일 달리도서관에 초청 강연 김소연 시인 ⓒ뉴스제주
 
 
■ 시는 내밀한 것 아닌가. 오프라인에서 시와 시인을 만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누군가 불러주면 반가워하며 간다. '나를 어떻게 알고 불러주나' 싶어 고마워서. 시 자체는 읽는 것이 더 좋은 것이다. 하지만 만난다는 것은 삶의 경험 중에서도 중요한 것 아닌가. 어떤 체험이지 않나. 시인을 만나서 실망하게 된다면, 실망 또한 좋은 경험이다. 나는 낭독하는 것을 좋아한다. 육성으로 듣는 것이 좋지 않나. 나의 시가 이상한 생명을 얻어 공간을 타고 또 다른 느낌이 된다. 그것을 공유하는 것이 좋다. 
 
■ 시라는 것은 오해하기 쉽다. '감상적이다'라는 것도 흔한 오해 아닐까.
 
- 후배 시인 하나가 시와 거리가 먼 사람을 아는데, 그가 시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했다. 시인이 시를 읽고 있는 것을 보고 "시 읽나? 바람난데이!"라고 했다나. 감상적이어서 일깨워지는 것, 어떤 경우엔 삶에 흔들림이 생기는 것이다. 비판적인 말로 ‘감상적’이라는 말을 사용하곤 하지만, 잠자고 있는 것을 깨워주는 것은 정말 좋은 것이다. 헛된 지혜를 흔들고 고정관념, 굳은살도 벗겨낸다. 마치 맨살로 이 세상을 대하라고 하는 것만 같다. 감성, 어떤 감각에 동원되는 것. 시인에게는 중요한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 때로는 일선에서 목소리를 대변해줄 때도 있다. 시와 시인의 존재는 본디 그런 모습일까.  
 
- 시와 시인은 '인간이 인간으로 대우받는 것'에 대한 방법에 골몰하고 주장하는 사람보다는 인간이 인간으로 대우받는 것에, '인간은 본디 그러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다. 그것을 몸살하며 드러내는 사람. 목소리를 내려는 것보다 어디선가 찾아주니 가는 것이다. 어떤 사회문제 현장에서 시인의 목소리가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훌륭하다고 본다. 
 
■ 책을 읽지 않는다고들 한다. 그런데 책을 읽어야지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다. 
 
- 최근에 한강 <채식주의자>가 큰 상을 받았다. 그 상을 받으면서 책이 베스트셀러로 오르면서 신기록을 세웠다. 사람들이 그걸 읽고 어떤 생각을 할까 나는 궁금했다. 문학을 읽지 않던 이가 읽었을 수도 있다. 그런 경우 읽다 만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때론 배신감을 느낀 이도 있었을 거다. 충격적이라고 느낀 사람도 있을 거다. 그런데 대부분의 문학은 충격을 안고 있다. 흔든다고 할까. 그런 게 없으면 읽지 않을 것이다. 흔들림은 생에 필수다. 그 흔들림에 합의를 보는 것은 창작자가 할 일은 아니다. 헌데, 나는 세상이 왜 책을 읽으라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책 말고도 좋은 경험은 너무나 많다. 제주에 오면서 세 권을 싸들고 왔는데 한줄도 읽지 않았다. 숲을 걷고 뱀도 만나고 벌레도 보고. 세상 눈요기 하는 것만으로도 멋진 날이었다.
 
▲ 달리도서관 초청으로 제주에 온 김소연 시인은 이날 낭독 및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뉴스제주
일산에서 10년 어린이도서관을 했었다. 한날, 어린이들을 앉혀 놓고 식물도감을 보여주며 설명해주고 있었다. 한참 말하다보니 아이들이 지루해하고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책을 들고 아이들과 밖으로 나왔다. 골목마다 피어 있는 풀들을 가리키며 그게 어떤 풀인지 알려주며 걸었다. 아이들이 즐거워했다. 책이란 건 그런 게 아닐까. 
 
문학은 인간이 기록할 수 없는 어떤 미묘한 것을 기록한다. 그 미묘를 무시하면 인간을 다 알 수 없다. 이걸 알기 위해 하는 것이 문학이다. 그러나 책이 아니어도 이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며 보고 살아도 인생을 배울 수 있듯이 말이다. 
 
■ 젊은 시인들의 협동조합형 잡지, ‘눈치우기’를 하고 있다.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 눈치우기는 주류, 문단으로 요약될만한 장 밖에서 다양한 글, 이상한 글쓰기를 모색하려 했던 것이다. 눈치우기는 실패했다. 실패했지만 값졌다. 독특한 실패랄까. 실패는 쓰라리고 외로운 것인데, 여럿이 함께 실패해서 재미도 있었다. 더 실패할 용기도 낼 수 있을 거 같다. 
 
■ 시는 요즘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기여를 하게 될까.
 
- 세상을 사는 우리에겐 언어가 있다. 특별히 언어를 가진 게 인간이다. 참으로 복된 수단이다. 만물의 영장이면서 죄의 원천이기도 한. 가장 큰 원죄일지도 모르겠다. 언어는 인간과 더불어 망가질 만큼 망가져있고 유리될 만큼 유리되는 것이다. 요즘은 대화를 SNS로 하지 않나. 그만큼 언어는 가난해졌다. 사람의 말에 대한 해석도 욕 아니면 칭찬인 것이 되었다. 찌그러진 언어가 생각을 찌그러뜨린다. 그러나 언어를 포기하지 않고 기억하려고 하는 것, 말하자면 그것이 시의 역할이다. 
 
■ 집필을 위해 제주에 자주 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장소는 시를 씨는 것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 제주여서가 아니라 낯선 장소인 것이 영향을 미친다. <수학자의 아침>을 쓸 때 제주에 있었다. 한라산이 보이는 창문도 그렇고 낯선 풍경이었다. 시를 쓰다 해질녘에 잠깐 산책을 다녀오고 나면 책상 위에 있는 그 시가 너무 답답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래서 밤새 수정하곤 했다. 시를 대하는 시선은 새로워야 한다. 낯설어져야 찾아오는 것이다. 제주는 어떤 낯선 것, 아득한 것을 독대하는 느낌을 가져다주곤 한다. 
 
 
 

 

▲ 김소연 시인 최근작,<수학자의 아침> ⓒ뉴스제주
 
 
 
 
 
 
 
 
 
김소연 시인은 1993년 ‘현대시사상’으로 등단, <눈물이라는 뼈> <극에 달하다>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기나> 시집과 <마음사전> <시옷의 세계> 에세이를 썼다. 가장 최근작은 네 번째 시집 <수학자의 아침>이다. 
 

 

 

▲ 매달 초청 강연 및 공연 등을 기획 운영하는 달리도서관 ⓒ뉴스제주

▲ 제주 도심 '달빛 아래 책 읽는 소리', 달리도서관

토토, 어리, 짱가라는 예명을 가진 달리지기 셋이 의기투합해 7년째 운영하고 있다. 책방이자, 게스트하우스이기도 하고, 사랑방이다. 매달 초청강연을 하고 있으며, 그간 여성학자 정희진, 산악인 김영미, 김형훈 작가 등이 다녀갔다. 콘서트를 열기도 하고, 대외적으로는 공연 및 문화 기획도 진행한다.

달리에는 달리만의 감수성이 있다. 이를 좋아하는 이들이 기부한 책으로 책장은 채워진다. 실용서와 자기계발서를 제외한 어떤 책이든 기증 받는다. 책을 마음껏 읽고 싶다면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면 좋다. 7년 동안 2만원 가격을 고수하고 있다.  

현재 책 축제를 기획 중이고, 한림 옹포리에 위치한 달리도서관 2호 외 북카페도 준비 중이다. 

- 위치 : 제주시 신성로12길 21-2 
- 홈페이지 : http://cafe.daum.net/dallibook
- 문의 : 064-702-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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