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호텔 1층 비아아트에서 이진아 작가의 <스미다>가 전시 중이다. 전시에서는 2005년부터 털실을 가지고 작업한 작품과 제주에서 구한 재료로 만든 설치 작품 및 사진 작업을 볼 수 있다. 

작가의 이번 전시에서 하나의 맥락을 찾는다면 ‘소통’일 수 있다. 털실, 그 따뜻하고 부드러운 소재로 표현하는 ‘소통’은 우리들 경험 안에서는 냉정할 때가 더 많은 것이다. 언뜻, 소통이라고 하는 답답한 말보단 차라리 ‘불화’라고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 하지만 작가는 이것을 극복한다. 관람하는 이들은 작가의 작품이 ‘감싸다’에서 ‘스미다’까지 넘어 온 것처럼, 언젠가 '벗어난다'를 내다보는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뜨개질은 어떻게 반영되어 의미를 만들어 낼까. 질문하고 극복하는 여행자, 이진아 작가의 설명을 듣고 왔다. 

  

▲ 작가의 초반 작업, '목도리 일기' 중 일부다. ⓒ뉴스제주

#1. 정직한 작업, '목도리 일기' 

이진아 작가는 국내 일러스트레이터 1세대로, 30년 간 일러스트를 그렸다. 일을 하다 보니,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마흔이었다. 어디서부터 해야 할까 생각하다 2005년에 시작한 게 '목도리 일기'다. 무엇보다 친숙한 소재가 털실이었고, 일단 정직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게 목도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만들 때마다 일기를 썼다.” 

코바늘로 목도리를 짜다 보면 드는 생각이다. 엮여서 전체가 하나이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각자의 코로 나뉘어 여럿이기도 하다. 그렇게 낱개이자 전체인 것이, 그 촉감이 좋았다고 한다. “손수건 작업도 했다.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계속 뜨개질을 하는 거다. 도안을 정해 놓고 하지 않는다. 손수건이란 게 손을 닦기도 하지만, 눈물도 닦는 것 아닌가. 나는 눈물을 닦는 것처럼, 손에 닿는 느낌과 작업으로 비극적인 심정을 추스려 위로를 받으려고 했다.” 

  

▲ 제주에서 물신을 모아 만든 작품, '물신'. 작가는 '실프다'는 것도 제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뉴스제주

#2. '물신' 또는 '실푸다' 

지하에 설치한 작품 ‘물신’이 눈에 띈다.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아 가까이 다가가면, 비로소 물신 여러 켤레가 보인다. 작가는 작품과 연관해 ‘실푸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줬다. 

이진아 작가의 아버지는 제주도가 고향이다. 아버지는 딱 한 번, 죽기 전에 제주도를 떠나 온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버지가 그 이야길 들려준 건 일생에 한 번 뿐이었다. 그동안 쌓이고, 꽉 덮고 있는 상태였겠지. 스스로 감싸고 있는 상태, 뒤집어 쓰고 있는 상태. ‘실프다’는 그런 거 같았다. 그때 아버지가 해준 그 어려운 이야기처럼, 그냥 더 묻지 않는 거다. 애써 물어보지 않는 것. ‘실프다’는 말의 의미를 들었을 때, 아버지가 생각났고, 그게 무엇인지 잘 알 것 같았다. 작품 ‘물신’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것도 의도한 것이다. 어찌 보면 ‘실프다’가 타이틀이 될 수도 있는 작품이다.” 

사용된 물신은 제주에 머물면서 사 모았다. 버스를 타고 다니다 보면,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란 게 생겨난다. 작가는 동네 신발 가게를 다니면서 가장 작은 크기의 물신을 샀다. 물신을 덮은 차양은 마늘 주머니다. “모슬포 시장에 갔을 때, 마늘망을 처음 봤다. 직조된 것에 관심이 있다보니, 자연히 눈에 들어왔다. 물어보니, 대정읍에 가야 한다고 했다. 대정읍 농협에서 농가에 나눠주는 거였다. 원단을 사고 싶었는데, 시기가 맞지 않아 구하지 못했고, 작은 것 여러 개를 엮어 만들었다. 제주 아닌 곳에서 이것을 차에 싣고 다니면, 아무도 이것의 용도를 모르는 게 재미있었다. 제주에서는 누구나 다 이것을 알지 않나.” 

버스 정류장에서 수상하게도 마늘 주머니를 수십개 지니고 있는 작가는 동네 주민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물건을 매개로 ‘이어져있다’는 느낌. 작업을 생각하면, 작가의 여행과 수집은 허투루가 없다. 

 

▲ 전시장 내부, 오른쪽에 보이는 바구니는 호치민에서 만든 설치 작품 '크리스마스 트리'다. 제주에서는 분해해 설치했다. ⓒ뉴스제주

#3. 호치민과 제주, 여행자이자 관찰자 

호치민에는 눈이 오지 않는다. 크리스마스였는데, 누군가가 “눈 쌓인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초록색 바구니들을 사 모았다. 호치민 가정과 노점 등에서 사용하는 가장 흔한 생활 용품, 플라스틱 바구니다. 이것들을 크기별로 모아서 뒤집어 쌓으면 크리스마스 트리가 된다. 쌓인 눈은 뜨개질로 만들었다. “그때 생각했다. 가장 쓰임새가 많은 것인 가장 많은 디자인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무심히도 예쁘다. 각개의 바구니는 사람 손을 필요로한다. 기계로 구멍을 뚫어도, 그것의 마무리는 사람이 한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복잡한 문양이 사라지고, 단순해졌나 싶었다.” 여행자, 관찰자로서의 호치민 작품은 앞서 소개한 제주 ‘물신’으로 이어진다. 

▲ 뜨개질로 감싸고, 감싸인 작품들이다. 작가는 예쁜 기물에서 점차 일상적인 기물을 오브제로 사용했다고 전했다. ⓒ뉴스제주

작가가 ‘크리스마스 트리’를 전시했을 때, 현지 여성이 “설치 작품을 처음 본다”고 말했다. 그 솔직한 감상과 그녀의 감동이 전해져서 좋았다고. 제주에서도 지나는 동네 주민이 한참 사진을 바라보면서 “인도 사람 같지 않아요?”라고 작가에게 반문하던 일, “사진 좋은데, 참 외로워 보인다”던 어느 할아버지 일화가 있다. 작가는 오가듯 들러 둘러보는 이곳 전시장이 좋다고 했다.   

#4. 이제 어디로 갈까

▲ 규슈에서 구입한 장갑을 이용해 만든 작품 '규슈'. ⓒ뉴스제주

‘감싸다’에서 ‘감싸이다’가 됐다고 한다. 예쁜 기물을 골라 감싸다가 평범한 기물로 옮겨오는 과정이 있었다고 했다. '물신'의 경우에는 ‘뒤집어쓰다’라고 할 수 있다. 답답하지만 스스로 갇혀 발설하지 않는 상태. 지금 전시는 이들이 모여 ‘스미다’가 되었고, 이 다음에는 '벗겨내는' 작업을 할 것 같다고 했다. 뒤집어 쓴 것을 스스로 벗는 단계인 것이다. 그리고 다음 전시 이후에는 아예 다른 작업을 할 수도 있다. 그녀의 소재이자 맥락과도 같은 ‘털실’을 벗어날 수도 있다고 한다.  

“작업을 늦게 시작했다고 하는 건, 젊은 작가들이 좋아하는 지점은 있는 거 같다. 예를들어, 5년, 10년 뒤에도 작업을 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는데, 나는 늦게 시작해서도 계속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흔히 볼 수 있는 경우가 아닌 만큼, '혼자인 느낌'도 존재한다. 할까, 말까를 오가던 이번 전시는 무난히 잘 이루어졌지만, 늦게 시작했다고 해서 무조건 안정적인 것은 아니다. 작가 말처럼, "누구에게나 오늘 하루는 처음"인 것이다. 

작가의 고민 너머로 "너덜너덜하지만 친절하게 해"라고 친구가 조언했다고 한다. 스스로는 "나이 먹은 대학교 1학년" 같다고 한다. 자기 부정의 연속인 작업 안에서 그녀에게도 관람자에게도 새로운 오늘이다. 흔들리고, 보듬고, 입을 닫아버리기도 하고, 스스로 깨치기도 하는 과정이 전시 안에 있다. 

지금 눈을 마주치고 있지 않아도 연결되어 있는 것. 어쩌다 가끔 같은 생각을 하게 될 지도 모르는 곳이다. 이진아 작가의 <스미다> 전시는 7월 20일부터 8월 28일까지 비아아트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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