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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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직장생활 말년은 서울에서의 근무였다. 가족을 고향에 두고 혼자 올라가 생활하다 보니 퇴근 후에는 벗을 만나 한 잔 나누는 것이 일과처럼 되어 버렸다. 그 중에 홍익대학교 공과대학장인 이봉용 동문이 있었는데, 그와는 매주 한 차례씩 단 둘이서만 저녁을 먹고 반주를 나누었다. 나는 단 둘이 만나는 것보다는 친구 두세 명을 끼워 함께 어울리는 것이 좋지 않겠는냐고 제안했다.
그는 “여럿이 어울리는 것도 좋긴 한데요, 형님과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는데 다른 사람이 끼어들면 원치 않는 방향으로 대화가 흘러가기고 해서 제게는 분심이 듭니다. 형님과는 흉허물없이 모든 얘기를 털어 놓을 수 있고, 제 얘기를 늘 진지하게 들어 주시는 형님의 모습에 저는 늘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다른 친구들과의 합석은 제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들을 경계하게 된 데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습니다.”
라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실 그와 나는 초. 중 고교 모두 내가 1년 선배였다. 개인적으로 가까이 할 기회가 없었는데 내가 서울대 상대를 재수하여 들어가자, 서울대 공대에 합격한 그와 같은 해에 대학에 입학하게 되어 자주 만나게 되면서 친해졌다.
그는 서울공대 전기과 학생답게 철저한 엔지니어 정신의 소유자였고, 매우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그 시절에도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는 것을 모 봤다. 그러나 유난히 나와는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 그 시절에도 그는 나에게
“형님, 오현 중.고등학교 6년을 야간으로 졸업하고도 서울 상대에 합격하는 저력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말 존경합니다.”
하고 말해 주어 대학 입학동기이면서도 깍듯이 나에게 선배 예우를 해주었다. 대학졸업과 동시에 나는 은행으로, 그는 한전으로 취직하여 각자 생활전선으로 헤어지게 되어 직접 얼굴을 보는게 힘들어졌지만 연말에 연하장을 주고받는 정도로는 항상 소식을 전하며 지냈다.
한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그는 우리 나라 수력 발전개발 분야에서 크게 촉망받는 위치까지 승진했다. 그는 일본의 선진국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연수가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일본으로 건너가 연수받는 도중 초. 중. 고 동챙생이며 동경대학 출신인 고향친구 k를 만나 저녁을 먹으며 고향에서의 학창시절 추억담도 나누고 일본에 연수오게 된 동기도 말했다.
일본 연수를 끝내고 귀임한 그는 연수 결과보고서 작성 등 밀린 작업으로 정신이 없었는데, 어느 날 보안당국에서 들이닥쳐 불시에 연행되는 신세가 되었다. 연행 이유를 몰라 당황했는데 알고 보니 『간첩죄』였다. 일본에서 간첩 k를 만나 한국의 수력 발전계획을 북조선으로 넘겨주었다는 죄목이었다. k가 진짜 간첩인지 아닌지 몰라도 초. 중 고교 동창끼리 오랜만에 만나 밥 한 끼 먹으며 회포를 나눈 것뿐이고, 우리 나라 수력 발전계획을 넘겨준 바도 없는데 청천벽력이었다. k도 역시 일시 귀국했다가 구속되어 같이 재판을 받았다.
글로는 상황이 간단하지만, 그 당시의 수사기관의 관행을 상상해 볼 때 엄청난 고생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끝까지 혐의를 부인하여 무죄석방되었다. 직장인 한국전력에 대한 미련도 사려져 버렸고, 그 기회에 다시 학업에 정진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홍익대학교 교수로 새출발하였다.
그는 오히려 나에게
“이것을 두고 전화위복이라 하지 않겠습니까?”
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와는 매주 만남도 내가 정년퇴직하여 고향으로 돌아오게 됨에 따라 이상 이어지지 못했는데, 어느 해 연하장에
“암과의 투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저를 위해 가끔 생각해 주시고 기도해 주세요.”
라고 써 있어 깜짝 놀랐다.
아직 환갑도 되지 않았고, 교수 정년도 멀었는데 암투병이라니.......그때 끌려 갔을 때 골별들고 나온 것이 틀림없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위로의 편지를 써 보냈건만, 나는 결국 그의 부음을 받고야 말았다.
외국에서 고향친구를 만나 저녁 한 끼 먹은 것으로 간첩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긴 세월 마음고생이 심했던 그를 생각하며, 더 이상 사람들을 경계하지 않아도 되는 천국에서 행복하게 지내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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