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영민 역사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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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부사 앞으로 다가온 지슬,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 한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 있었던 곳에서 탐라 사람들은 원성을 크게 드러냈다. 특히 노인들은 그의 이름을 거듭 강조해서 불렀고,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아내기까지 했다.

“느가 어떵 겅헐 수 이시냐!”

쏟아지는 삿대질에, 지슬은 주먹을 꽉 쥐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영암부사의 군사들이 탐라사람들에게 달려들어 발길질과 몽둥이질을 쏟아내고서야, 잠잠해졌다. 수문장은 그사이 무릎을 바닥에 파묻고 누렇게 뜬 뒷덜미를 여실히 드러냈다.

“장군께서 명만 내려주시면, 목숨까지도 바치겠나이다.”

두 손으로 영암부사의 발목을 붙잡은 수문장, 그의 수하들도 이마를 바닥에 바짝 붙이기에 급급했다. 그들을 곁눈질로 흘겨보던 영암부사는 허리춤에서 칼을 조용히 뽑았다. 가만히 서 있던 지슬의 손에 칼자루를 쥐여 주더니 자신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나와 약조한 걸 잊지 않았다면, 보여 주거라. 네놈의 마음을 알고 싶구나.”

영암부사의 눈동자가 아래로 향했다. 순식간에 나를 포함해 모든 사람의 시선이 지슬에게로 향했다. 그는 두 손으로 칼자루를 꽉 움켜쥔 채, 수문장의 뒷목을 내려다보며 마른침만 연신 힘겹게 삼켰다. 수문장은 전혀 위를 올려다볼 기미도 없이 그저 온몸을 떨고만 있었다.

“기꺼이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게냐?”

영암부사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수문장은 “예, 장군. 저를 거둬주신다면 충성을 다하겠나이다”며 이마를 한 번 바닥에 찧었다. 그의 수하들도 “충성하겠나이다!”며 손바닥을 하늘에 올린 채 비벼 댔다.

탐라 사람들은 엎드린 채로, 지슬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를 의식이라도 한 걸까, 지슬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았고 두 눈을 칼날에 모았다. 칼끝을 스친 바람에 온몸까지 떨던 그는, 점점 숨을 내뱉으며 눈에 힘을 줬다. 난 그에게 다가가려고 했으나, 영암부사의 손바닥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무어라 말을 내뱉기도 전에, 칼끝이 하늘로 향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도 주지 않고 바닥이 붉게 물들었다. 땅바닥에 칼보다 먼저 떨어진 건, 수문장의 얼굴이었다. 곧이어 그를 따랐던 수하들은 영암부사의 손짓에 목이 달아나고 말았다.

“네놈의 마음이 이랬단 말이더냐!”

입가에 웃음기를 애써 숨기지 않은 영암부사는 칼을 주워들었다. 미처 발목을 놓지 못한 수문장의 두 팔은 칼로 밀어서 떼어냈다. 지슬의 어깨에 팔을 걸친 그는, 귓속말로 무어라 한참 남기더니 갑자기 고개를 들고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그의 웃음은 하늘 위를 떼지어 날아다니는 까마귀 울음보다 더 높았다. 그와 지슬에게서 눈을 떼지 않던 탐라 사람들의 눈빛은 내 코끝을 베고 스쳐간 바람보다 더 날카롭고 차가웠다. 그것도 잠시, 부장의 손짓에 군사들이 탐라 사람들을 모조리 포박하기 시작했다.

“역당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사로잡아라!”

탐라 사람들의 눈이 동그래졌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허둥거렸다. 예닐곱살 정도 된 어린아이를 줄로 묶으려던 군사에게 한 여인이 온몸으로 달려들었다가 넘어졌다. 곧이어 군사 한 명의 다리를 붙잡으며 부디 아이만큼은 잡아가지 말라고 눈물을 쏟아냈다. 머리카락도 거의 남지 않았고 팔다리에 뼈가 앙상하게 드러났지만, 군사들의 다리를 붙든 팔은 절대 놓치지 않았다. 아이의 울음이 커질수록 여인은 더욱더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다른 사람들을 포박하던 군사들이 합세해도 달라진 건 없었다. 발목을 붙들린 군사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옷이 다 찢기고 흙과 돌이 뒤섞인 여인의 몸은 점차 붉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여인에게 발길질하던 군사들의 움직임이 점차 더뎌지더니, 눈길을 계속 영암부사에게 돌렸다. 내 옆에 서 있던 부장도 뒤통수만 연신 매만지며 슬쩍 눈치를 살폈다.

“장군, 아무래도 군사들의 사기가 걱정되옵니다.”
영암부사도 이마에 땀이 맺히더니 낯빛에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나도 그에게 고개를 내저으며 한마디하려던 참이었는데, 지슬이 갑자기 주먹을 꽉 쥐더니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디뎠다. 군사들을 손짓으로 물러나게 한 그는, 직접 여인을 일으켜 세웠다. 바닥에 떨어진 줄을 줍더니 직접 여인의 팔에 감기 시작했다. 여전히 울음을 멈추지 않는 아이의 뒷덜미를 잡아당기더니 같은 줄에 오른손을 묶어 버렸다. 군사에게 그 줄을 넘겨주며 고개를 살짝 들어올렸다. 찰나에 드러난 눈빛은 괜히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야이가 몬딱 죽이젠햄서!”

이미 줄에 묶여서 무릎을 꿇고 있던 노인이 소리쳤으나, 지슬은 전혀 멈칫하지 않고 영암부사 곁으로 다가갔다. 군사들은 부장의 호령에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포박하여 영암부사 앞에 데려다 놓았다. 조금 전 노인처럼 소리를 내지르면 가차 없이 군사들이 따로 명이 없어도 발길질로 대답을 대신하였고, 여기서 자신을 죽이라고 괴성까지 내지른 사내에겐 칼로 종아리를 깊숙하게 찔러버렸다. 영암부사는 지슬과 탐라 사람들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다시 한 번 더 웃음을 감추지 않고 곧바로 터뜨렸다.

“역시, 대장부답구나!”

지슬의 어깨를 토닥거리던 손은 금세 부장에게 향했다. 오른쪽 뺨을 두 손으로 붙들고 휘청거리던 부장은 고개를 거듭 조아렸다. 정강이에는 영암부사의 발이 스쳤다.

“나와 하루이틀 함께 했더냐, 어찌 경솔한지고.”
“장군, 소인이 미처 뜻을 잘못 헤아렸나이다.”

영암부사는 한숨과 함께 다시 지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타고 온 말에 오르지 않은 채, 함께 막사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부장은 그들의 뒷모습을 잠시 쳐다보더니 서둘러 군사들을 이끌고 뒤따랐다. 나도 그들과 함께 발을 맞추었다.

수문장과 수하들의 주검을 직접 확인한 고여림 장군은 얼굴이 시퍼렇게 질리고 말았다. 그 곁에 서서 어깨를 토닥이던 영암부사는 눈물을 닦아내는 시늉까지 드러냈다. 고여림 장군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눈물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혼잣말로 내뱉는 내용을 자세히 들어보니, 수문장은 처음 무관이 될 때부터 인연으로 몽골과 전쟁에서 생사를 여럿 함께했고, 그의 누이와 혼인한 사이였다. 고여림 장군이 쏟아내는 눈물에는 핏기가 서려있었고 고성을 내지를 때마다 주먹으로 바닥을 수차례 내리쳤다.

“대체 누가 이리한 겁니까?”

온몸을 떨고 있는 그를, 영암부사가 두 손으로 어깨를 매만지며 의자에 앉혔다. 자신도 마주 앉으며 손가락으로 탐라 사람들을 가리켰을 때, 나도 모르게 ‘억’하고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 물론 사람들은 모두 듣지 못 한 건지, 누구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지만.

“역당들을 만만히 봐서는 아니 되겠소.”

영암부사는 고여림 장군의 손을 살포시 잡고 지그시 바라보았다. 전후 사정을 차분하게 꺼냈는데,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수문장과 수하들은 지슬과 자신의 수하들이 아닌 성주가 긴밀히 보낸 군사들과 전투를 치렀다고 했다. 탐라 사람들이 작당하여 성문이 열리게끔 도왔고, 전투도 참여하여 수문장이 전사하도록 일조했다는 것. 마침 자신이 직접 군사들을 대동하여 사찰하던 중 발견했기 망정이지, 여기도 기습당할 뻔하였다며 한숨까지 내쉬었다. 고여림 장군은 이 얘기를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곁에 서 있던 수하들은 당장에라도 탐라 사람들을 처형하자며 무기까지 뽑았다.

탐라 사람들은 몸부림하였으나 모두 입에 재갈이 물린 상태였다. 영암부사의 군사들은 무표정하게 앞만 보고 있었고 부장도 마찬가지였다. 나 역시도 한마디 내뱉고 싶었으나 선뜻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괜히 지슬에게 향했던 영암부사의 미소만이 눈앞에 선할 뿐이었다. 땅바닥에 대고 고성을 내지르던 고여림 장군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부하로부터 몽둥이를 건네받았다.

“개돼지만도 못 한 놈들아!”

탐라 사람들에게 한달음으로 달려간 그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내를 쓰러뜨렸다. 고성이 커질수록 몽둥이에 힘이 더 들어갔고, 발버둥을 치던 자는 점점 싸늘히 식어갔다. 고여림 장군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또 한 사람의 머리채를 잡아끌었는데 바로 그 여인이었다. 아이는 옆에서 눈물도 채 삼키지 못 하고, 고여림 장군을 올려다보았다. 여인은 팔을 축 늘어뜨린 채, 입을 아주 자그마하게 열었다.

“뭐라는 거야!”

결국, 여인은 말을 내뱉지 못 한 채 쓰러지고 말았다. 두 눈을 끝내 감지 못 하고 온몸에 푸른빛으로 뒤덮였다. 그제야 영암부사의 수하들이 곁눈질하며 주춤거렸다. 갑작스럽게 터진 아이의 울음에 고여림 장군은 얼굴을 아래로 내리더니 몽둥이를 바닥에 놓았다. 바닥에 주저앉은 그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며 소리를 내질렀다. 이를 조용히 지켜보던 영암부사의 입가엔 미소가 아주 엷게 스며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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