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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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하게 돈만 쓰고, 생색도 내지 못하고 인정도 제대로 받지 못함을 뜻하는 제주 속담에 ‘고딩장 돈 쓰듯 한다’는 말이 있다.
1964년도 동경올림픽 때 있엇던 일이니 지금으로부터 꽤 오래 전 일이다.
그 당시 우리 나라는 지금처럼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이어서 우리가 해외여행을 가려면 해당국가로부터 초청장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마침 가까운 나라. 우리 동포가 맣이 살고 있는 일본 동경에서 올림픽을 개최하게 됨에 따라 일본 구경을 시켜드리려고 너도 나도 초청장을 보내왔고, 많은 사람들이 모처럼의 해외여행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올림픽이 끝나고 난 한참 뒤에 동경에 살고 있던 나의 고등학교 동창생이 고향에 다니러 온 김에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 기분 좋게 한 잔 나누던 그가 느닷없이
“우리 고향 속담에『고딩장 돈 쓰듯 한다』는 말이 있지?”
하고 빙그레 웃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아
“돈을 쓰고도 보람이 나지 않을 때 고장장 돈 쓰듯 한다는 말을 하긴 하는데 그 어원은 나도 잘 모르겠어.”
하고 내가 대답했다.
그 친구가 말해준 이야기인 즉, 올림픽 때 고향 동네 어르신 10여 명이 동경에 왔기에 동경에서 사업깨나 하며 어느 정도 산다는 입장에서 모른 체하고 그냥 넘길 수가 없어, 동경에서도 가장 유명한 복요리집으로 초청하여 저녁을 대접했다는 것이다.
원래 일본에서는 복요리가 최고급 오리로 인정받고 있었으므로 우리 나라 수준은 생가지 못하고 일본 수준에 맞추었던 것이다.
모처럼 큰 마음 먹고 복 회(사시미)에 따끈한 청주(정종)를 내놓았는데 어르신들이 종잇장처럼 얇게 썰어 내온 보사시미(회)를 한 웅큼씩 집어가 한 입에 먹어 버려서 금방 안주가 바닥이 났다는 것이다. 종잇장처럼 얇게 썬 복 회 한접시는 당시 한국 돈으로 무려 30만원 가량이었는데, 안주 모자라 술 못 마시는 꼴이 되므로 계속 연달아 안주를 부르다 보니 한 상에 세 접시씩, 무려 아홉 접시나 주문하게 되었고, 복요리의 마지막 코스인 복어 끓인 국물에 쑨 죽까지 정성스레 대접을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고향에 와서 소문을 들으니, 동경에서 잘 산다는 사람이 기껏 제주에서는 먹지도 않는 복쟁이 안주나 주고 밥도 아닌 죽으로 저녁 대접해서 실망했다고 흠잡는 소리를 듣게 되어 놀았다는 것이다.
지금은 우리 나라에서도 복요리가 최고로 인정받고 있지만 50여 년 전 우리 나라에서는 복을 천한 음식으로 여겼던 것이 사실이다.
그 당시 한국에서는 쇠고기 먹기가 어려운 때여서 소갈비나 불고기로 대접했으면 돈도 훨씬 덜 들이고 그들로부터 잘 대접받았다고 고마운 소리를 들었을 것인데, 그보다 몇 배나 비싼 복요리의 진수를 알지 못하는 시골 어르신들은 양이 차지 않아 음식 먹은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예전 제주에서는 복어를 『복쟁이』라고 부르며 천한 생선으로 간주하여 일반 사람들이 잘 먹지 않았기 때문에 어른신들의 불만을 더욱 복돋운 꼴이었다.
동는 돈대로 쓰고도 보람나지 않을 때 “고당장 돈 쓰듯 한다.”는 말은 이 경우에 딱 알맞은 것 같아 내 친구의 안타ᄁᆞ워하는 모습이 충분히 공감가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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