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료

▲ ⓒ뉴스제주
 

지금 농협의 전신으로 금융조합이 있었다. 우리 나라가 해방된 지 얼마 안되는 시기였다. 제주에는 제주, 서귀포 두 개의 조합이 있었고, 제주조합에는 강 모씨가, 서귀포조합에는 고 모씨가 전무이사로 있엇다. 이들은 금융조합 연합회 회의가 있을 때마다 같이 상경하여 같은 여관, 같은 방에 같이 머물곤 하는 친한 사이였다.
연합회는 긱 도에 3명씩 대의원을 두기로 되었으나 제주는 작은 도여서 1명만 대의원 자리를 배정하고 있었다. 대의원 선거는 각 도별로 전무들끼리 무기명 비밀투표로 선출하게 되었으므로 제주도는 두 명이 투표하여 1명을 대의원으로 선출하게 되어 있었다.
두 명이 각자 자기 이름을 써 넣으면 1:1 동점이 되고, 이렇게 되면 연장자인 서귀포조합 고 모씨가 늘 대의원으로 선출되곤 했다. 한번도 대의원에 선출 되어 본 일이 없는 제주조합의 강 모이사가 서귀포조합 고 모 전무이사에게 제안을 했다.
“형님!우리 이번 선거부터는 제가 형님 이름을 쓸 테니까 형님은 제 이름을 쓰는 게 어떻습니까? 저 자신이 제 이름을 쓰자니 어색해서 마씸.(말입니다.) 일대일 동점이면 연장자이신 형님이 당선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그렇게 합시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서귀포조합 고 모 전무이사도
“그게 좋겠네. 나도 나냥으로(나 스스로)내 이름을 쓰자니 어색하기는 해.”
하고 두 분이 합의했다.
투표결과 개표해 보니 2:0으로 제주조합 강 모 전무이사가 당선되고 말았다. 제주조합 강 모 전무가 서귀포조합 고 모 전무에게
“형님. 미안허우다.(미안합니다.)이렇게라도 아니하면 난(나는) 한 번도 대의원이 될 수 없을 것 같아 잔꾀를 부려 보아십주.(써 보았습니다.) 양해해 주십서.(주세요.)”
하고 사과했다.
서귀포조합 고 모 전무도 말하기를
“그럼, 당선 사례부터 하게나. 내가 자네 당선을 축하하겠네.”
하고 한바탕 웃으며 두분은 사이좋게 대폿집으로 향했다고 한다.
제주도 교육위원을 제주도의회에서 선거하던 때가 있었다. 내가 잘 아는 분이 입후보했다. 학력으로 보나 경력으로 보아서도 충분히 교육위원 자격이 있는 분이어서 우연히 만나 기회에 선거 전망을 물어 보았다.
“제주도의원들을 모주 찾아 뵙고 부탁했더니 반응이 좋아 걱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고 당선을 낙관하고 있었다.
그러나 선거결과, 한 표도 나오지 않았으니 어떻게 위로를 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런던 차에 우연히 그를 만날 기회가 있어 위로의 인사를 드렸더니
“저. 아주 홀가분합니다. 단 한 표라도 나왔으면 어느 분이 찍어 주었는지 몰라, 도의원 모두에게 고마운 인사를 해야 될 판인데, 하 표도 안 나왔으니 고마운 인사할 대상이 한 명도 없지 않습니까? 말로는 찍어주겠다고 해 놓고서 못찍어준데다가 그런 사실이 모두 들통나 버렸으니, 도의원들의 마음도 편치는 않을 것입니다.”
하고 웃었다.
정말 고마운 인사드릴 대상이 없었으니 마음만은 편했으리라 생각되었다.
 
저작권자 © 뉴스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