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임종 칼럼]보고 듣고 느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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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학시절이 되어 수능시험과 관련하여 수험생들에게 주의사항을 알려주는 방송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옛일이 있다. 시험 전날 소집하여 여러 가지 주의 사항을 전달하는데, 특히 명심할 점은 시험장소를 사전에 알아두는 것이다.
내가 서울 상애에 응시했을 때 같은 고등학교 출시 K에게 시험 전날 소집에 같이 나가자고 했더니, K는 ‘다 아는데 그럴 필요가 뭐가 있냐?’ 며 함께 가지 않았다. K는 고등학교 성적이 매우 우수하여 서울 상대에 합격할 것으로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모두가 기대하는 학생이었다.
시험당일 K는 누이동생을 데리고 시험장에 나타나 우리들과 어울려 서루 격려하며 얘기를 나누다가, 시작종이 울리자 각자 시험장으로 입실했다.
첫 시간이 끝나고 운동장에 나와 보니 K의 누이동생이 발을 동동 구르며 큰일 났다고 울고 있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K의 시험장소는 서울 상대가 아니라 종암국민학교였고, 그 곳은 서울 상대에서는 1Km 정도 떨어진 거리였기 때문에, 결국 제 시간 안에 시험장에 입실할 수 없어 시험조차 차를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서울상대는 지원자가 많으므로 해마다 종암국민학교를 빌려서 인원을 분사하여 시험을 치르고 있었다. 시험 전 날 소집에 참여하지 않은 사소한 실수로 인하여 시험장소를 잘못 파악하는 바람에 시험조차 보지 못하는 크나큰 사태로 이어진 것은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와 비슷한 낭패를 보게 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는 길도 물어가라』,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 하는 옛 어른들의 말을 명심 또 명심할 일이다.
1988년 추석 전날이었다. 서울에서 근무하던 내가 제주로 내려오려고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다. 추석 전날이라 비행기 좌석은 만원이었다. 그런데 티켓 발권에 문제가 생겼는지 두 사람의 좌석이 없어서 승무원들이 분주히 오가며 좌석표를 확인하고 있었다. 결국 마지막에 들어온 두 사람을 내리게 하고 비행기는 활주로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출발 활주로에 접어들었는데 내 옆자리의 신사분 내외가 나에게 물었다.
“이거, 어디 가는 비행기죠?”
뚱딴지같은 질문에 어이없다고 생각했지만
“제주도 가는 거죠.”
라고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 순간 두 분은
“우리는 부산가는 길인데, 이게 잘못 탔습니다.”
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 순간 비행기는 활주로에서 방금 이륙한 참인데, 신사분 내외는 내려달라고 아우성 쳤고, 승무원들은 제주에서 부산으로 연결시켜 주겠다고 통사정을 하여 간신히 진정시켜 자리에 앉도록 했다.
이를 지켜보는 나로서는 승무원들이 통사정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쩔쩔매는 것을 보고, 손님을 왕으로 모시라는 사훈 때문인 것 같아 안타까웠다. 정작 비행기를 잘못 타는 실수를 한 그 신사분 부부는 제주로 오는 내내 자기 잘못을 느끼지 못한 채 불만만 늘어놓고 있었다. 자기 잘못도 인정할 줄 알아야 진정 신사이거늘.....
그런데 이 부부 때문에 마직막에 내려야 했던 두 분은 아무 저항없이 조용히 내렸을까? 생각해 보니 그 분들은 이 부부 때문에 오히려 피해를 보았는데, 잘못 탄 이 두사람이 되려 흥분할 일이 아닌 것이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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