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범의 ‘화산도’가 말하는 제주4·3과 정치적 상상력
고명철 교수 “근대 내셔널리즘과 다른 제주의 정치체(政治體)와 밀접”

▲ 제주 4.3의 아픔을 다룬 소설 '화산도(火山島)'의 재일 조선인 작가 김석범(金石範, 92)씨는 2015년 난생 처음으로 제주 4.3 추념식에 참석해 눈물을 흘렸다.제1회 제주4.3 평화상을 수상한 김석범 작가는 그해 10월 화산도 출판기념식 참석차 서울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한국정부의 입국거부로 무산됐다. 그는 해방 후 남과 북으로 분단된 현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줄곧 '조선'이라는 실체가 없는 국적사용을 고수했다. 김석범 작가는 법적으로 '무국적자'로 간주되면서 국내 입국이 여러 차례 좌절됐다. 10여년 전 취재차 일본 오사카 자택에서 만난 본 기자에게 "살아 생전 고향에 가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던 그였다. 정부가 90세 노인의 입국을 거부한 것은 사실상 이념 논쟁 때문이다. 그는 해방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 친일파와 민족반역자 세력이 역사의 왜곡과 거짓에 맞서면서 전국적으로 치열한 반대 운동이 일어났고 그 동일선상에서 일어난 것이 제주 4.3이라고 술회했다. ⓒ뉴스제주

“제주문학의 꽃, '4·3문학'의 정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재일조선인 김석범 선생의 대하소설 '화산도'는 근대 내셔널리즘으로 구축된 국민국가와 다른 정치적 상상력을 함의한, 바로 오랜시간 삶으로 구축돼온 제주의 지역공동체의 또다른 ‘정치체(政治體)’와 어떤 밀접성을 갖고 있는가?”

고명철 교수(광운대 국문학과)는 “해방정국 혼돈과 새로운 이상사회를 꿈꿨던 시기, 제주4·3무장봉기가 벌어졌다”며 “김석범 선생의 ‘조선적인 것’의 문학적 진실과 정치적 상상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 내셔널리즘에 기반한 ‘국가공동체’와 관련한 것, 말하자면 재일조선인으로서 조국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차원으로만 수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육지사는 제주사름(대표 박찬식)이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내년 ‘제주4·3항쟁 70주년 기념위원회’ 추진에 맞춰 11일 서울시의회 의원회관에서 마련한 초청강연에서 이같이 말했다.

고 교수는 특히 “작가의 이같은 면모는 화산도에서 제주공동체의 독특한 풍속문화인 제사의례를 통해 해방공간에 대한 정치적 은유의 상징형식으로 작동된다”며 “이를 통해 제주공동체를 폭력으로 압살하는데 전위에 서 있던 서북청년단의 실체가 드러날 분 아니라 그것에 조금도 굴복하지 않고 비타협하는 작가의 정치적 상상력이 부각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 교수는 “혁명의 기치속에서 해방이 정념을 북돋우며 부르는 맷돌노래, 방아노래, 해녀노래, 항쟁노래는 제주의 구술연행이 혁명과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증명해준다”며 “오히려 4·3무장봉기는 제주민중의 새로운 사회건설을 위한 정치적 염원이 자연스레 동반되는 노동요와 항쟁노래의 구슬연행으로 한층 실감을 얻는다”고 강조했다.

이와함께 고 교수는 “이같은 김석범의 ‘조선적인 것’은 제주가 지닌 정치적 상상력과 밀접히 연동된 것으로 밀항하는 도정에서 이방근이란 인물을 통해 식민주의 청산과 반혁명분자의 배신행위를 응징한 것은 신생을 향해 떠나는 밀항선의 정치적 상상력을 배가시켜준다”고 덧붙이며 ‘제주4·3’을 ‘항쟁’이라고 한계를 그어선 안됨을 작가의 정치적 상상력은 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 교수는 오사카에서 태어나 조선적이었으나 60년대 총련에서 탈퇴한 김석범과 4·3을 직접 겪고 일본으로 도항한 김시종이 살아온 궤적, 두 거목의 나눴던 대화는 제주4·3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한 새로운 물음을 던져준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박찬식 육지사는 제주사름 대표는 내년 ‘제주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 발족과 관련 “정부의 공식사과라는 성과도 있었지만 4·3특별법과 그에 따른 조치를 압축하면 ‘정의없는 명예회복’이었다”며 “4·3의 정명과 전국화·세계화를 통한 평화와 통일, 인권의 메시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70주년 범국민위의 △진상조사보고서 7대 건의 중 미완 과제 완전해결 △배·보상의 공론화와 제도화 △미국의 책임문제 제기 △수형인 문제 해결 △주요책임자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와 기록 △트라우마센터 건립 등의 과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오는 20일 국회에서는 제주지역 강창일·오영훈·위성곤 국회의원과 70주년기념사업회가 공동으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를 주제로 토론회가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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