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땐 기대는 게 진정한 용기”
“힘들 땐 기대는 게 진정한 용기”
  • 박길홍 기자
  • 승인 2017.02.18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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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 정신과 전문의(제주도교육청 학생건강증진센터)

제주도는 지난해 전국 17개 시·도 중 유일하게 학생 자살자 수 0명을 기록했다. 우리나라가 OECD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제주도교육청의 적극적인 정책 추진이다. 제주도교육청은 학생들의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혼디거념(함께 돌보다)팀을 구성하고 자살시도 학생에게 연중 사례관리를 실시하는 등 학교적응을 도왔다.

자살 취약시기에는 ‘자살예방 주의보’를 운영하는 등 자살예방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펼쳤고, 성과는 금방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속적으로 혼디거념팀을 운영한 결과 지난 2016년 한 해 동안 자살 학생 수는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제주도교육청 내 학생건강증진센터에 상주하고 있는 정신과 전문의 조성진(37)씨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학생건강증진센터에서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로 근무하고 있는 조성진 씨는 한양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한양대병원 정신과에서 임상강사로 근무하다 1년 전 학생건강증진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다음은 조성진 씨와의 일문일답.

   
▲ 조성진 정신과 전문의(제주도교육청 학생건강증진센터) ⓒ뉴스제주

■ 주요업무에 대해 설명해 달라

정신과 전문의가 교육청에 직접 채용돼 자살문제을 비롯한 학생정신건강과 관련한 업무만 보는 경우는 제주도교육청이 전국에서 유일하다. 2015년부터 제주도교육청 학생건강증진센터에는 2명의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가 근무하면서 직접 전도의 학교를 방문해 마음이 아픈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상담, 치료, 교육복지서비스 등 학생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지원을 연결하고 학생의 문제를 이해하며 돌볼 수 있도록 부모 교육도 시행하고 있다. 또 학교 선생님들에게는 학생의 문제에 따른 지도 방법에 대해 자문을 드리고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역할은 자살시도나 학생사망 같은 위기상황 시에는 위기확산을 막고 조기에 학교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응급심리 지원도 하고 있다. 그 외 정신건강 관련 연수, 교직원 심리치유 사업, 지역사회 협력 등 여러 가지 업무를 하고 있다.

■ 지난해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유일하게 학생 자살자 수 '0명'을 기록했다. 정신건강증진센터의 역할이 크다고 보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학교는 학생들의 주요한 발달과제가 이뤄지는 곳임과 동시에 정신건강 문제를 쉽게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학교에서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조기에 발견해 저희 센터로 의뢰해주시고 저희가 자문 드린 내용을 바탕으로 학생을 이해하고 지지해주신 일선 학교의 선생님들의 노고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점차 학생 의뢰 건수가 늘어나고 학교자문에 대해 협조적으로 변하게 된 건 학교의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정서적, 행동적 문제를 보이는 학생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도와야할지 막막했던 많은 선생님들께서 전문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교육청 내 부서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적지 않은 위안을 얻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 지난해 몇 명의 학생들과 상담을 진행했는지?

2016년 한 해 동안 500여 명의 학생들을 만났고 교사, 부모님까지 포함하면 1066명을 만났다. 상담건수는 학생 960건, 전체 1810건이다. 하루 평균 4명 정도의 학생을 만났고, 그 수만큼의 부모님과 선생님을 만났다. 그 외 학생 정서행동특성검사 관심군 학생들과 저희 학생상담사 분들이 만난 학생들까지 더하면 그 숫자는 더 많다.

■ 학생을 대상으로 상담할 때 가장 조심스런 부분은 무엇이며, 또 상담을 진행하는데 있어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따돌림, 폭력피해, 반복된 실패, 주변으로부터의 비난 등의 상처를 받은 학생들은 세상과 사람들이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으며 또 다시 나쁜 일이 생길 것 같다는 걱정과 두려움을 느끼다보니 사소한 자극에도 자신에 대한 공격이나 위협으로 받아들이면서 학생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당연한 반응으로 화를 내거나 회피하는 문제행동을 보인다.

그리고 이런 학생들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스스로 정상이 아니고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보니 누군가 나를 도와주길 바라면서도 동시에 도움 받기를 두려워하기도 한다. 학생들이 안정감을 느끼고 세상에 나에게 상처만 주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나를 걱정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도 있다는 신뢰감을 갖도록 만드는 과정이 어려우면서도 가장 치료적인 부분인 것 같다.

   
▲ 조성진 정신과 전문의(제주도교육청 학생건강증진센터) ⓒ뉴스제주

■ 학생들이 주로 안고 있는 고민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률은 OECD 평균에 비하면 아주 높은 수치는 아니지만 여학생의 경우엔 다른 나라에 비해 자살률이 유난히 높은 나라이고 행복지수도 최저수준이다. 자살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입시 또는 진학에서 오는 성적문제이다. 뒤이어 가정불화와 경제적 어려움 등이다. 이외에도 또래관계의 어려움, 학교폭력 피해, 게임 과몰입, 감정조절의 어려움 등이 많았다.

■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다면?

얼마전까지 아스퍼거 증후군이라고 불렸던 자폐증이 있는데, 아스퍼거 증후군은 자폐증 중에도 지능이 떨어지지 않고 기능수준이 양호한 경우를 말한다. 공부도 못하지 않고 전형적인 자폐증의 모습이 아니다보니 학교에서도 심지어 부모님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회성이 떨어지다 보니 친구사귀기가 어렵고 특이한 아이로 취급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보니 학교폭력 피해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은데 제가 만난 학생 한 명도 학창 시절 지속적인 따돌림과 소외감으로 늘 혼자였던 학생이었다.

그 학생은 여기저기 상담을 다녔지만 별다른 효과 없이 오히려 세상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고 상처를 혼자 끌어안으며 지냈더라. 하지만 저희 센터를 통해 부모님께서 학생에 대한 이해가 증진되고 치료비 지원으로 그 학생은 좀 더 적극적인 치료를 받게 됐다.

■ 학부모들의 반응은 어떤가?

우리 사회, 특히 제주사회가 정신과,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과 거부감이 심하기 때문에 정신과 전문의를 만나는 것에 대한 조심스러움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병원이 아닌 학교에서 만날 수 있고, 단순한 의학적 치료만이 아니라 복지, 학습지도, 가정환경 등 다양한 측면에서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들이 알려지면서 점차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다.

실제로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생을 옆에서 돌보는 부모님들의 심리적 스트레스도 굉장히 크다. 이런 부모님들의 어려움을 듣고 지지해 드리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을 드릴 수 있다.

■ 전국적으로 교육청이 직접 정신과 전문의를 채용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애초 우려와는 달리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계신 것 같은데 향후 목표 또는 계획이 있다면?

정신과 전문의 채용과 관련한 초기 지역사회의 많은 우려는 심리사나 상담사와는 차별되는 정신과 의사의 역할에 대한 부족한 인식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정신과 의사는 단순히 약물만 처방하거나 심리상담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한 개인이 타고나는 기질이나 뇌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생물학적 요인들뿐만 아니라 성격이나 심리적 특성, 그리고 개인을 둘러싼 사회환경적 스트레스의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한 사람을 이해하도록 훈련받은 사람들이다.

그렇다보니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통합적이고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제는 조금씩 정신과 전문의의 역할에 대해 지역사회가 긍정적으로 인식해가고 있는 것 같다.

올해는 좀 더 많은 학생과 부모님, 선생님들을 만날 계획이다. 특히 일선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선생님들께서 이런 학생들의 어려움을 좀 더 빨리 인식하고 교실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을 할 계획이다.

■ 마지막으로 고민을 안고 있는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마음이 힘든 순간들을 맞이한다. 위기를 맞거나 고민에 당면할 수도 있고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자존감이 낮아지기도 한다. 그리고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은 더욱 그런 고민과 두려움, 걱정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가 느끼는 이런 심리적 고통은 내 마음이 스스로에게 보내는 SOS 구조 신호이다. 내 마음의 에너지가 바닥이 나고 소진됐으니 대책을 마련해서 채워달라는 뜻이다. 그런 신호를 느낀다고 해서 결코 여러분이 미흡하거나 결점이 있거나 모자란 사람인 것은 아니다.

그 고통을 하루아침에 해결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을 수도 없을뿐더러 설령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여러분이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누구나 그렇듯이 내가 힘들 수 있고 그럴 때는 혼자 끌어안고 참는 것이 아니라 나를 걱정해주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주변 사람에게 기꺼이 힘들다고 털어놓는 것이 진정한 용기이고 지혜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길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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