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영민 연재 역사장편소설

   
▲ ⓒ뉴스제주

이문경, 그의 눈빛에는 핏기가 감돌았다. 입가에 머금은 미소는 거두지 않은 채 지슬을 내려다보았다. 이를 꽉 깨문 지슬은 바닥에 닿은 무릎을 비틀었다. 이문경은 그의 정수리에 힘껏 손을 얹었다. 두 사람을 바라보는 내 입술에 물기가 메말랐다. 그러나 단순히 두 사람의 기운 때문은 아니었다. 처소라고 들어온 이곳은, 다름 아닌 영암부사가 사용했던 막사였다. 침소와 탁상은 그대로였고 촛농과 그 밖에 작은 집기들은 자리를 잃은 채 바닥을 뒹굴었다. 내가 그와 함께 앉아있었던 의자도 그대로였다. 어찌 이곳을 처소로 잡았단 말인가.

“내가 어찌 네놈을 따로 데려왔는지 알겠는가?”

이문경은 지슬의 칼집으로 턱을 올렸다. 눈을 마주 본 두 사람은 호흡만 조용히 내뱉고 있었다. 손을 내밀려는 나를 이문경이 잠깐의 곁눈질로 걷어냈다. 지슬은 입술에 피를 머금고 계속 몸을 비틀거리고 있었다. 나도 궁금했다. 도대체 이문경은 어찌 지슬을 따로 데려왔는지. 부하들은 모두 물리고 나만 들어오게 한 것도.

“네놈 눈빛을 읽었니라. 누굴 죽이고 싶은 게냐, 혹여 나인가?”

이문경을 향한 지슬의 눈빛은 바닥으로 내려갔다. 이마를 바닥에 붙인 지슬은 갑자기 괴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한 발자국 물러나서 이를 바라보던 이문경은 코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도대체 지금 무얼 하고 있단 말인가, 난 물었다. 지슬을 따로 부른 연유가 무엇이냐고.

“난 사람을 믿지 않지.”

그가 내뱉은 말은 뜻밖이었다. 무관이 되기 전부터 여기까지 오면서, 누구도 믿지 않았기에 목숨을 부지했다는 그. 자신조차도 믿지 못 하여, 하루에 몇 번씩 얼굴을 만져본다고 한다. 못 믿겠는데 그의 입장에서 완전히 적군인 지슬을 따로 불렀단 말인가.

“대신 눈빛은 믿지. 짙게 서린 광기라던가, 선명한 살기라던가.”

이문경은 코웃음과 함께 지슬의 팔다리를 묶었던 줄을 직접 풀어주었다. 자신의 허리춤에 있던 단검을 빼더니 지슬의 오른쪽 손바닥 위로 올려놓았다. 죽이고 싶다면 지금이 기회라며 목을 들이밀기까지. 지슬은 단검을 곧바로 꽉 움켜쥐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손을 부르르 떨더니 결국 단검은 바닥에 떨어졌다. 자신의 머리를 바닥에 대고 악을 썼다. 그의 뒷덜미를 붙들고 똑바로 일으켜 세운 이문경은 호탕하게 세 번 웃어보였다.

“네놈의 마음을 알겠니라. 말해보아라, 누구를 죽이고 싶은지.”

흰자위만 드러낸 지슬의 눈에 서서히 초점이 돌아왔다. 붉게 물들어가는 눈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괜찮으냐는 나의 물음보다 괜찮다는 이문경의 말에 지슬은 더 크게 소리 내어 울음을 터뜨렸다. 두 사람을 번갈아보던 나는 그저 마른 입술에 침만 조심스럽게 묻혔다.

다음 날, 동이 틀 때쯤 까마귀 떼가 성주청 주변을 가득 뒤덮었다. 사방엔 온통 피비린내로 진동했고 삼별초 군사들은 달려드는 까마귀 떼를 상대하느라 우왕좌왕이었다.

이문경과 지슬은 새벽이 깊을 때까지 대화를 나누었다. 난 중간에서 조금이라도 제대로 뜻을 전달해주는 역할에 충실했다. 울음으로 시작했던 대화는 고성을 주고받다가 이따금씩 웃음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지슬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잘 풀어냈다. 나와 이야기했던 부분도 마찬가지고, 영암부사와 협력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도 밝혔다. 새로운 사실은, 지슬이 최소한 자신의 목숨에 큰 미련이 없다는 점과 하루하루 정신없었지만 어머니를 챙기고 있었다는 것. 자신에게 돌아갈 식량과 의복 정도를 인편을 통해 전달한 수준이었지만, 그마저도 여태까지 상황을 돌아보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와 어머니의 소식을 전달하는 사람은 끝내 나와 이문경에게 밝히지 않았다. 이 부분에서 이문경이 얼굴을 붉히고 고성까지 내질렀으나 지슬은 눈도 깜박거리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이문경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만큼은 지슬이 진실된 사내라는 확신이 생겼다나. 그건 나도 동의하는 바다. 여태까지 지켜 본 지슬은 침묵할지언정 거짓을 내뱉지 않았다. 그 때문에 목숨이 수차례 위태로웠고 반대로 살아날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한잔하시게.”

차 한 잔으로 대화는 마무리되었고, 두 사람은 침소에 등을 살짝만 기댄 채 잠이 들었다. 나는 잠시 막사 밖으로 나와서 까마귀 떼가 배를 불리고 돌아갈 때까지 가만있었다. 이제는 한숨조차 나오지 않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하루하루에서 난 무얼 하고 있는 걸까? 내가 어쩌다 삼별초와 한패가 된 건지, 이문경은 정녕 내 정체를 파악 못 한 건지, 도무지 어디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지,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머리 통증이 눈가에 자리 잡으려던 졸음을 몰아냈다. 이와 함께 기지개도 켜려는데 저 멀리서 조그마한 그림자 하나가 눈에 보였다. 점점 내 쪽으로 다가오던 그림자는 보초를 서던 군사 둘에게 가로막혔다.

 막사 안으로 들어가려고 몸을 돌린 그때, 자지러지게 우는 목소리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림자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니, 대여섯 살쯤 되는 어린아이가 땅바닥에 드러누워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군사 둘은 허리를 반쯤 숙인 채, 손만 어정쩡하게 뻗었다. 아이는 얼굴부터 발끝까지 흙과 시커먼 때로 가득했고, 특히 오른쪽 눈밑으로 시뻘건 멍자국이 선명했다. 입술은 허옇게 부르텄고 갈라진 사이로 핏기가 말라서 꺼멓게 변하고 있었다. 입은 옷은 군데군데 찢겨서 겨우 걸친 수준이었다. 발바닥은 이미 굳은살이 피와 섞여서 우둘투둘했다. 천천히 쪼그려 앉아 손을 대려고하니 더 자지러지게 우는 게 아닌가. 군사들은 멀리 내던지자고 얘기했으나 내가 손을 내저었다. 대신 아이에 “무사”하고 말을 건넸다. 내가 탐라에서 처음 배운 말이 아니던가. 진짜 무사의 자녀일 수도. 거짓말처럼 아이는 울음을 뚝 그치고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나더니 품에 안기기까지 했다. 아이는 혼잣말처럼 중얼중얼했으나 울음과 달리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두 손으로 들고 막사에 돌아갔다. 군사들이 말렸으나 팔다리에 뼈가 보이는 아이를 도무지 내칠 수가 없었다.

“이 아이는 누구인가?”

이미 잠에서 깬 이문경은 단검을 매만지고 있었다. 곧이어 일어난 지슬은 반쯤 풀린 눈으로 나를 멀뚱하게 쳐다보기만 하였다. 아이는 내 부축으로 침소에 앉는 순간까지 온몸을 떨었다. 이문경이 똑바로 내려다보자 다시 울음을 터뜨리려하였다. 그에게 뒤로 물러나라 손짓했고 대신 지슬이 아이 앞으로 다가갔다.
 
“전란이라지만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아이와 지슬이 대화를 들은 이문경의 미간에 주름을 굵게 잡았다. 아이는 단순히 배가 고파서 찾아온 게 아니었다. 부모는 고려군과 탐라군이 전투할 때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였고, 자신과 같은 처지인 아이들이 성안에 많다고 한다. 대부분 어려서 굶주림과 추위 속에 하나둘 쓰러졌다고 한다. 고려군이 장악할 때쯤, 야심한 밤에 한 사내가 아이들을 일일이 찾아갔다고 한다. 이 아이도 그때 그 사내를 처음 만났고. 성안 구석진 곳에 따로 거처가 있었는데 거기서 아이들이 한 명 한 명 모여들었다. 처음엔 먹을 것을 나눠주고 옷과 잠잘 자리까지 마련해줬으나, 며칠도 되지 않아 하루에 몇 명씩 아이들의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 사내와 함께 성 밖으로 나가면 다시 얼굴을 보이지 않는 건 확실했다. 날이 갈수록 나눠주는 식량은 줄어들었고 사라진 아이들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부모와 함께 있는 아이들도 곳곳에서 데려왔고, 말을 안 들으면 혹독한 매질까지 서슴지 않았다. 만약 지금 이 아이가 여기로 오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그 사내와 성 밖에 있을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자가 누군지 알겠소?”

이문경이 나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성을 곳곳을 둘러보았어도, 아이들까지 세심하게 살펴본 적은 없었다. 어른과 다름없이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는 여러 사람 중 한 명으로는 수차례 보았다. 다만 성 밖으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은 것, 아이에게서 들은 그 사내의 생김새가 전혀 낯설지 않았다. 설마 그들은 아니겠지.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건, 성주 세력은 여전히 탐라 안에 존재하고 어디에 있는지 아직 파악하지 못 한 것. 고려군도 지난밤 전투로 큰 타격은 입었겠지만 여전히 존재하고 어디 있는지 모르는 건 마찬가지다. 나는 적들 사이에 또 다른 적을 걱정해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젠 섣불리 내 생각을 드러낼 수 없었다. 내가 탐라를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는 전제하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무엇보다 당장 드는 생각은 대여섯 살에 몸도 성치 않은 아이가 어떻게 여기까지 도망칠 수 있었을까? 물론 나조차도 여기까지 온 게 이해할 수 없지만, 이제는 탐라에서 모든 게 이해할 수 없을 지경이다.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지슬의 얼굴이 이상하게 눈에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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