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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안허우꽈] 42화, 선봉차영민 연재 역사장편소설
차영민  |  cym893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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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18  11: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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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제주

결국, 아이는 지슬의 품에서 숨을 멈추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를 포함해 이문경과 삼별초조차도 몰랐다. 그 아이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의 시작에 불과했음을.

해가 중천에 떠오르자, 군영 앞으로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물론 식량을 얻으려는 자들도 있었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지슬의 품에서 죽은 아이를 바깥으로 내보내는 모습을 하필 탐라 사람들이 보았고 그때부터 말이 돌기 시작했다. 처음엔 삼별초가 애먼 일로 아이를 데려가서 죽게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가, 자신의 부모를 찾으러 왔던 아이가 내부 첩자에게 당했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이에 삼별초가 대대적인 토벌 작전을 꾸미고 있다고. 어디서 나온 소문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나도 데령가 줍써.”

그 소문이 성안에 돌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얼굴을 드러냈다. 고려군과 성주 측 군사들 토벌에 함께하겠다고 자청하였다. 이문경은 이미 따로 부대로 편성한 탐라 사람들이 있었던 터라, 난색을 드러냈다. 아직 선택받지 않은 자들은 너무 어리거나 늙거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디 하나 성하지 않은 곳이 있었다. 몸은 성할지언정, 정확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자들이었다. 이문경도 나와 생각이 비슷했다. 여기서는 누구도 선뜻 믿을 수 없다고.

이문경은 며칠간 계속 몰려드는 사람들을 단호하게 돌려보냈다. 마침 그들 중에서 진짜 첩자를 발견하고 생포한 일이 벌어졌다. 밤새 고신 끝에 고려군과 성주측은 이미 접촉했고 그리 멀지 않은 데서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결국 그 여파로, 성안 사람들 중 수상한 자들은 무조건 잡아들여 첩자 여부를 가리기도 했다. 그러나 첩자는 더 이상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잡아들인 자 중에서 한 명이 갑작스럽게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자세한 건, 나도 직접 본 게 아니지만 수하 중 하나가 머리를 내리친 게 결정적이었다.

“이것 참!”

이문경의 얼굴에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숨을 거둔 자는 마당 한가운데서 다음 날까지 그대로 방치되었다. 손끝 하나 건드리지 말라는 명 때문이었다. 결국은 직접 손으로 눈을 감겨준 이문경은, 자청하는 사람들을 모두 군영 안으로 불러들였다. 눈대중으로 오십여 명이 모였는데, 대부분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벅찬 노인들이었다. 아니면 사지에 문제가 있었고. 그중엔 대여섯 살 정도 되는 아이들도 몇몇 있었으나 결국 돌려보내기로 했다. 그러나 딱 한 소년이 내보내려는 군사들의 손짓에도 오히려 주저앉아 버티고 있었다.

“난 물애기 아니우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악다구니까지 쓰는 소년, 짧았지만 강력한 기세에 누구도 선뜻 다가가지 못 했다. 오히려 주변에 있는 탐라 사람들이 한마디씩 건넸으나 소년의 목소리를 더 높이기만 했다. 조용히 지켜보던 지슬이 천천히 다가갔다. 격한 발버둥에 흙도 마구잡이로 뿌리는 소년에게 지슬은 묵묵히 앞으로 다가가 쪼그려 앉아 머리를 쓰다듬었다. 잠시 둘만의 이야기를 나누더니 소년을 일으켜 세우고는 이문경 앞에 세웠다.

“야이도 가게 해줍써.”

지슬이 소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처음 여기로 찾아왔던 아이의 형이란 얘기에 이문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고 탐라 사람들도 더 이상 말을 내뱉지 못 했다.

“쓸모가 있겠지.”

혼잣말처럼 한마디 내뱉은 이문경은 새롭게 모인 자들 앞에 섰다. 이들을 한 명 한 명 찬찬히 살펴보더니 한숨부터 깊게 내쉬었다. 그의 심정,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았다. 칼은커녕 숟가락 하나 못 드는 자들에게 무슨 기대를 할 수 있으랴. 그러나 이문경은 이내 눈에 힘을 주고 다시 모인 자들을 쳐다보았다.

“여기에 모인 이유가 무엇인가. 진정 궁금하여 묻느니라.”

잠시 눈치를 보던 사람들은 하나둘 입을 열었다. 분명 시작은 그 아이의 죽음부터였다. 그러나 이들은 각자 이유가 있었다. 가장 먼저 성주에게 불만이 많은 자들이 많았다.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공납, 성주와 그 신하들은 백성들의 사정을 전혀 봐 줄 기미가 없었다고 한다.

거기다가 탐라 부사가 보낸 관리들도 성주와 별개로 공납을 거두어 가기도 했다니. 지방의 사정이야, 듣는 귀가 있어서 전혀 모르는 건 아니다만. 탐라는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하였다. 공납을 오랫동안 하지 못 한 자들은 관아로 끌려갔는데, 그나마 가족들이 어디서든 구해보면 풀려났다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때는 소리소문없이 사라져 버리곤 했다. 소식을 묻는다면, 공납 대신 다른 지방에 노역으로 갔다는 대답만이 전부였다고. 그들 중 단 한 명도 제대로 돌아오지 않은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이뿐만 아니었다. 성주는 기존 탐라 부사를 은밀히 몰아내고, 조정에서 보낸 관리들까지 처리할 때조차 같은 방법을 사용하였던 터. 마침 김수가 이끄는 고려군이 당도하여 탐라를 장악할 때, 누구도 대놓고 내색하지 않았으나 반기는 마음은 대부분 하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성주 측 세력이 피신한 이후 고려군은 적극적으로 잔당까지 몰아내지 않았고. 오히려 성 외곽에 있는 탐라 사람들은 밤이나 새벽에 수시로 들이닥쳐서 약탈하는 잔당 세력에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최근에는 성안까지 몰래 들어와서 들쑤셔 놓았으나 고려군은 이조차도 제대로 파악 못 한 상태였다.

이런 내용을 들으며 정리해보니,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 나름대로 탐라를 잘 살펴보았다고 여겼으나, 정작 이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 한 게 아니던가. 삼별초는 지금 모인 자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인 걸까.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이문경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입가는 미소까지 머금었다. 대뜸 자신과 가장 가까이 있던 노인을 두 팔로 끌어안았다. 살짝 눈가에 눈물을 맺히기도 했다.

“고맙소이다. 여러분이 잘 보았습니다. 우린 이곳을 오랑캐와 역당들로부터 해방시키러 왔소. 힘을 모아준다면야, 어찌 마다할 수 있겠소이까.”

탐라 사람들은 두 팔을 번쩍 들고 환호했으나 나의 고개는 옆으로 기울었다. 분명, 이들을 하나도 믿지 못 하겠고. 설령 믿더라도 군사적으로 전혀 효용이 없다고 자신의 직접 말하지 않았던가. 그를 멀리서 바라보는 지슬도 나와 표정이 다르지 않았다.

그날 밤, 이문경은 자신의 처소에 지슬을 따로 불렀다. 마침 나도 그 자리에 먼저 와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슬이 자리에 앉자마자 이문경은 손을 불쑥 내밀었다.

“다시 말하지만, 자네를 그동안 오해한 모양일세. 그래서 말인데.”

지슬의 팔목을 살포시 잡은 이문경은 잠시 머뭇거렸다. 조심스럽게 꺼낸 얘기는, 새롭게 모인 자들은 별동대로 구성할 텐데 이들의 대장을 맡아달라는 것. 누구보다 그들을 잘 이해하고 통솔할 수 있으리란 판단이라던데, 이문경과 지슬을 번갈아보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지슬은 전문적인 군사 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은 그저 소년일 뿐이다. 더구나 모인 자들도 마찬가지로 군인들과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지슬은 선뜻 대답을 못 했고, 보다못한 내가 이건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그동안 들었던 얘기와 달리 병법을 너무 모르는 게 아니오?”

이문경은 이마와 미간에 주름을 굵게 잡고 나를 흘겨보았다. 오히려 그런 이유로 더 적합하다는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당장 나로서는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직접 전투로 투입하진 않을 것이나 상황에 따라 성주측 사람들을 직접 처단할 기회도 주겠다고 하니, 지슬은 바로 그리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사내답군. 아주 듬직한 사내일세!”

이문경은 밤이 깊을 때까지 지슬과 함께 술잔을 기울였고. 난 중간에 조용히 자리를 떴다.

며칠 뒤, 이문경이 성 밖으로 보낸 척후들이 돌아왔다. 성주 측과 고려군이 손을 잡았다는 게 사실이란 점과 그들의 숨은 위치까지 정확히 파악되었다. 이문경은 곧장 군사를 모두 소집하였다. 지슬은 두꺼운 갑옷을 입은 채, 부장들과 나란히 섰다. 그를 따르기로 한 사람들은 군복 대신 멀끔한 옷을 갖춰 입었고 손에는 굵고 기다란 막대기만 쥐고 있었다. 이문경은 이들을 별동대로 칭하였으나 자세한 임무는 밝히지 않았다.

“드디어 오늘이다, 역당을 모조리 몰아내자!”

이문경이 목청껏 호령하자 군사들은 곧장 함성을 내질렀다. 군영 바깥에 모여든 탐라 사람들도 어느새 목소리를 보탰다.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했으나 여기 모인 자들의 기세를 가라앉히기엔 역부족이었다. 출정 직전, 이문경이 지슬을 자신의 곁으로 부르더니 한 발자국 앞장 세웠다.

“이번 전투의 선봉을 맡을 자다.”

그의 한마디에 모든 시선이 한곳으로 몰렸다. 눈빛이 흔들리는 건, 지슬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이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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