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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안허우꽈] 43화, 기습차영민 연재 역사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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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08  11: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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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제주

성문이 열렸다. 군영에서 성 밖으로 나갈 때까지, 성안에 있던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이들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양팔을 높이 들면서 환호하였다. 특히 가장 앞장선 지슬에게 향한 눈빛과 함성은 여느 때보다 뜨거웠다. 그들 중 아무리 자세히 살펴보아도 지슬의 어머니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 백주에, 병력 대부분을 움직이는데 어째서 사람들은 환호한단 말인가. 이처럼 드러내놓고 움직여도 되는 걸까? 

“제아무리 그놈들이 힘을 합쳐도 우리한테는 못 당하지.” 

어깨에 한껏 힘을 실은 이문경, 그리 자신 있다면 어찌 지슬과 무기도 제대로 못 갖춘 탐라 사람들을 앞세우는 건 무엇으로 설명할 텐가. 물론 입 밖으로는 직접 묻진 않았다. 그저 눈을 살짝 흘겼을 뿐.

성에서 나와서 진군하는 동안 귀가 간지러웠다. 탐라사람들이 진정으로 두 손까지 번쩍 들고 환호한 건, 삼별초의 존재가 아니라. 그보다 앞서나가는 별동대의 모습 때문일까, 머릿속으로 질문을 던지자 통증으로 돌아왔다. 당장 세 치 혀로 아무 것도 못 하는 신세이건만, 누구보다 목숨에 구걸하는 건 바로 내가 아니던가. 이문경의 곁에서 특별한 의미로 가장 많이 떠는 건 바로 나인 걸.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시오?”

갑자기 툭 던지는 그의 질문에 어찌 이토록 온몸이 저릿하단 말인가. 식은땀은 이미 등골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는 정녕 내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 했단 말인가. 잘 생각해 보니, 그를 만나서 입성하고 지금 여기에 온 순간까지. 곁을 떠나지 않게 한 건 맞다. 역시, 그는 눈치를 챈 건가 확신은 못 하는 건가? 그와 함께 하는 동안 속에서 쌓인 의문은 멈추지 않았다.

옆에서 계속 무어라 내뱉은 그의 말은 하나도 제대로 듣지 못하였다. 그 사이, 탐라성은 내 시야에서 아득하게 남았다. 주변은 넓게 편 평지와 파도가 휘몰아치는 바다, 저 멀리 민둥산처럼 보이는 몇몇 언덕이 눈에 들어왔다. 중간중간 민가가 보였으나 집기들이 마당과 담장 밖으로 난잡하게 널브러진 모습 외에 인적 자체는 전혀 없었다. 뱀과 노루, 이름 모를 낯선 동물들의 사체가 갈기갈기 찢겨 길바닥에 내버려진 상태였다. 그 주변은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여 코가 간지럽고 속이 매슥거렸다. 내 뒤로 따라오던 군사들 중에서 토악질도 하기도 했다.

“나약해빠져서는!”

이문경은 토악질하거나 상태가 영 좋지 않은 군사들을 자신의 앞으로 불러내었다. 직접 상태를 살피며 진군하더니 지슬의 별동대에 밀어 넣었다. 한사코 고개를 내젓는 군사도 있었지만 이문경은 한 번 뱉은 말을 거두진 않았다. 오히려 칼을 빼 드는 시늉으로 자신에게 뒤돌아보지 못 하게 할 뿐.

지슬과 별동대의 발걸음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속도가 붙었다. 지슬과 양옆에 있는 두 사람을 제외하면 말을 타지 않았음에도, 거의 달리는 수준으로 나아갔다. 길은 평지가 많았으나 바닥에 돌이 많았고 곳곳은 움푹 패여 말들조차 휘청거릴 정도였다. 오히려 삼별초 군사들이 넘어지고 그중 몇은 다쳐서 낙오되기도 하였다. 해가 중천에서 많이 기울어지자 먹구름이 바람과 함께 하늘을 뒤덮기 시작했다. 이미 언덕 하나의 허리까지 올랐으나, 드높은 파도가 바닷물을 우리 발아래까지 뿌렸다.

“대장, 대장!”

언덕의 정상을 갓 넘어서자, 따로 앞서 보낸 척후가 돌아왔다. 그제야 진군은 잠시 중단되었다. 척후는 시뻘게진 얼굴로 어떤 말도 못 뱉은 채 한참 숨만 골랐다. 이문경은 헛기침과 함께 손에 턱을 괴고 있었다. 정작 난 사방으로 몰아치는 바람에 고삐를 꽉 붙들고 있었다. 군사들도 바람에 맞서 각자 자리를 겨우 지키는 중이었고.

“적들이 바로 앞에 있사옵니다!”

긴 숨을 내뱉은 척후가 소리쳤다. 그가 뻗은 손가락 끝에는 물줄기가 길게 나 있었다. 별동대 중 한 사람이 다가와서 이르기를, 지금 물줄기가 흐르는 하천은 비가 내릴 때 범람할 정도로 물이 차오른다고 알려줬다. 주변 마을 사람들의 주요한 식수원 중 하나지만 가물 때는 물 한 방울도 볼 수 없는 곳이라고. 지금은 비가 내려서 물줄기만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큰 바위가 곳곳에 놓여 있다고 한다. 즉, 먼저 저곳을 선점했다면 전술적으로 빼앗기 어려울 것이란 의견도 덧붙였다.

“어찌 그리 잘 아는가?”

이문경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별동대에 거의 마지막으로 합류했다던 그는, 오랫동안 탐라군으로 복무하였다고 밝혔다. 이에 주변이 갑자기 술렁였다. 특히 삼별초보다는 탐라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첩자가 아니냐고 고성이 나오더니 몽둥이를 치켜들고 달려든 이도 있었다. 삼별초 군사들이 중간에서 가로막았고, 이문경은 그를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왕자를 내 손으로 모사불 거우다!”

그는 자신의 몽둥이를 바닥에 내리찧었다. 돌과 풀이 뒤섞인 땅바닥에 딱 몽둥이의 둘레만큼 깊숙하게 패였다. 손등에 핏줄을 드러내며 떠는 모습은, 이문경이 절로 웃음이 터지게 했다.

“내가 사람을 제대로 못 알아봤구먼!”

말에서 내려온 이문경은 그의 손을 잡으며 웃었다. 만약 그를 못 믿거나 해할 생각이면 반역으로 처단하겠다고 차분하게 내뱉었다. 얼굴을 붉히며 몰려들었던 탐라 사람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 지슬은 그저 뒤에서 조용히 지켜만 볼 뿐이었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그자의 손에는 몽둥이 대신 칼이 쥐여져 있었다. 지슬과 함께 선봉장의 기세를 보여주라고 하였다.

다시 진군이 시작되자, 그가 가장 앞서서 걸음을 재촉하였다. 정작 이문경과 삼별초는 점점 속도를 늦추더니 언덕에서 완전히 내려오고 조금 나가다가 갑자기 멈추었다. 물론 여기서도 충분히 물줄기는 볼 수 있었으나 그 너머는 내리막길이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척후의 보고와 달리 군사들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없었다. 결국 멈춘 곳에서 임시 군영을 꾸렸다. 

사방이 훤히 트인 곳이라 괜찮겠냐고 물었더니 오히려 그렇기에 더 안전하다는 이문경의 답이 돌아왔다. 군영을 꾸리면서 삼별초 군사들이 지나가는 말로 흘리기를, 이문경은 본래 무모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친다고 했다. 특히 전투를 앞둘 땐, 적이 먼저 움직이도록 도발을 아끼지 않는다고 하니. 부하들로서는 전투 때마다 살얼음판이라, 이미 많은 얘기가 나오는 중이었다.

해가 저물자, 주변을 감싼 공기는 찬바람에 섞여 스산함이 한껏 감돌았다. 오히려 이문경은 술과 고기를 내오라 명하더니, 군영 한가운데서 자신이 먼저 술병에 입을 댔다. 삼별초 군사들은 잠시 멈칫하며 서로 눈치를 보더니 금방 고기와 술병을 들었다. 탐라 사람들은 뒤늦게 합류했지만 우물쭈물하더니 결국 지슬과 함께 주변을 정찰하겠다며 자리를 떠났다.

“본래 전투를 앞두고는 힘을 비축해야 되오. 같이 드시게.”

이문경이 내게 술병을 건넸다. 그러나 손사래하며 뒤로 물러났다. 갑자기 배가 아프다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군영은 금세 떠들썩한 소리로 뒤덮었다. 주변을 제대로 경계하는 건, 별동대뿐이었다.

“자이네 무사 정 햄신고.”

마침 내 곁을 지나치던 한 사람이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군영 바깥으로 조금 벗어났다. 비바람은 그쳤지만 여전히 차가운 바람에 주변의 짙은 적막함이 온몸을 감쌌다. 풀벌레 소리조차 심상찮은 이곳, 바로 앞에 있는 물줄기가 아직도 고요하지만 그 자체가 영 미심쩍었다. 그보다 군영 전체를 둘러서 걷던 중 더 심상찮은 모습에 발걸음이 멈췄다. 

분명 별동대는 이 주변을 정찰하고 경계하러 자리를 벗어났다. 조금 전 혼잣말을 하던 그 사람을 빼면 별동대의 모습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분명 횃불과 함께 움직이는 뒷모습을 보았건만. 급히 군영으로 몸을 돌린 순간, 내 주변에 낯선 그림자가 재빠르게 달라붙었다. 목은 차갑고 예리한 검에 붙들리고 말았다. 누구인지 살펴보려고 했으나 뒤에 붙은 자가 천으로 눈까지 가리고 말았다.

“누구냐!”

왁자지껄했던 군영 쪽에서 비명과 괴성이 섞여 울려 퍼졌다. 움직이려고 하자, 목에 닿은 칼이 더 바짝 붙었다. 내 두 무릎부터 땅에 붙었고 이마도 금세 따라왔다. 양옆으로 흙을 밝고 움직이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이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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