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기억공간 리본(re:born)‘ 지킴이 황용운 씨

“푸른 바다의 길이 하늘의 길이 된 그날, 세상의 모든 수평선이 사라지고 바다의 모든 물고기들이 통곡하고 세상의 모든 등대가 사라져도 나는 그대가 걸어가던 수평선의 아름다움이 되어 그대가 밝히던 등대의 밝은 불빛이 되어 오늘도 그대를 만나러 간다”

 

정호승 시인이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쓴 추모시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의 한 구절이다.

   
▲‘기억공간 리본re:born’(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3982). ⓒ뉴스제주

세월호가 침몰한 지 어느덧 3년이 훌쩍 지났지만 9명의 실종자들은 여전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진상규명 또한 이뤄지지 않았다.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는 아직도 우리에게는 ‘진행형’이다. 지워서도 안 되고 잊어서는 더욱 안 되는 이유다.

최근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아 제주 곳곳에서는 추모 공간이 마련됐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자 대부분 사라졌다. 임시 공간이 아닌 언제든 방문해 희생자들을 추모할 수 있는 상시 공간은 안타깝게도 제주지역에는 거의 전무한 편이다.

세월호가 향했던 목적지가 제주였음을 상기한다면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기억공간 리본re:born’(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3982)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기억공간 리본’은 매주 화요일만 제외하면 언제든 방문해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자리한 ‘기억공간 리본(re:born)’. ⓒ뉴스제주

‘기억공간 리본’이 처음 문을 연 건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은 지난 2015년 4월 16일. 벌써 2년이나 흘렀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 동안 적지 않은 이들이 이곳을 찾았다. 

‘기억공간 리본’의 지킴이 황용운(37) 씨의 말을 빌자면 누군가에게 제주도는 꿈에 부푼 수학여행지였고, 또 누군가에겐 달콤한 신혼여행지였으며, 또 다른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이었을...이 곳에 끝내 발을 딛지 못한 채 하늘로 간 그들을 추모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이곳을 다녀갔다.

   
▲‘기억공간 리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우측 벽면을 가득 메운 접착식 메모지였다. ⓒ뉴스제주

‘기억공간 리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우측 벽면을 가득 메운 접착식 메모지였다. 여기에는 “아파하지 마세요. 기억할게요”, “박근혜를 탄핵시키고 다시 왔어! 실종된 언니, 오빠들 우리 곧 보자!”,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게” 등 희생자 및 미수습자들을 향한 애잔한 글귀가 적혀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고래 인형들이 유영하듯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고래 인형은 천장뿐만 아니라 사방에 그득했다. ⓒ뉴스제주

안으로 들어서자 고래 인형들이 유영하듯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고래 인형은 천장뿐만 아니라 사방에 그득했다. 고래 인형들이 셀 수 없이 많다는 것에 필자는 숙연해졌다. 고래 인형은 모두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304명의 희생자들을 형상화 한 것이기 때문이다.  

304개의 고래 인형은 제주학생문화원 평생교육 감천염색 동아리 ‘감쪽애’ 회원들과 중고등학생들이 함께 세월호 희생자를 기억하며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회원들의 말을 빌자면 이 고래들은 당초 목적지였던 제주도에 기억의 유영으로 헤엄쳐 온 것이다. 

   
▲‘기억공간 리본’의 내부. ⓒ뉴스제주

# 활동가에서 ‘리본’의 지킴이가 되기까지

‘기억공간 리본’의 지킴이 황용운 씨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필자를 맞았다. 그 넉살 좋은 웃음에 왠지 모를 친근감 마저 들었다. 

황 씨의 고향은 제주가 아니다. 서울 태생인 그가 아무 연고도 없는 제주에 내려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제주에 둥지를 틀기 전 황 씨는 아름다운 가게에서 활동가로 일했다. 그러던 중 TV를 통해 세월호 침몰 소식을 접했고,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광화문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난 뒤 그해 5월 18일, 황 씨는 광화문에서 세월호 집회에 참석했다가 경찰에 연행됐고 그 시기가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그는 경찰에 연행된 당시를 회고하며 “사실 처음 겪는 경험이기도 했고,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 때 생각했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어떻게 하면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끝에 물리적인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다”고 털어놨다.

황 씨는 “그 이유는 공간이 있으면 사람들의 마음이 모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하겠다’ ‘잊지 않겠다’는 마음이 단순히 선언적으로 끝나지 않게 하려면 어떤 형태로든 뭔가 만들어야 되는데 그게 결국은 세월호의 도착지였던 제주를 택한 것이다”

2014년 12월 31일. 황 씨는 아름다운 가게를 나와 이듬해인 2015년 2월 제주로 내려왔고, 그해 4월 16일 ‘기억공간 리본’의 문을 열었다. ‘기억공간 리본‘은 제주에서 한평생 살아오신 이문자(89) 할머니가 내 준 공간이었다. 이곳은 원래 이문자 할머니가 소를 기르던 외양간이었다.

황 씨는 “할머니가 창고를 빌려주시면서 만나게 됐고, 할머니 덕분에 시작할 수 있었다” 

   
▲‘기억공간 리본’의 지킴이 황용운(37)씨와 이문자(89) 할머니. ⓒ뉴스제주

필자는 이들이 실제 혈연관계로 맺어진 조손(祖孫) 사이가 아니란 걸 알았을 때 매우 놀랐다. 스스럼없이 서로를 대하는 모습을 보며 당연히 할머니와 손주 사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황 씨는 “할머니의 도움이 가장 컸다. 이 장소는 원래 할머니가 소를 키우던 공간이었다. 우연치 않게도 304명의 세월호 희생자 중 250명의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소띠(1997년생)다. 그래서 더욱 의미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제주도는 이제 제2의 고향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지척에 있는 바람도서관의 범준이형, 아리의 신치호 대표, 신 대표는 전 아름다운 가게 직장 동료였다. 대표이긴 하지만 형이라고 부른다. 치호형이 범준이형을 소개시켜 줬고, 범준이형이 할머니의 아들을 소개해줘서 이렇게 할머니와 연이 맺어진 거다. 너무 고맙고, 다 고맙다. 그 중 할머니가 1번으로 고맙다”

‘언제까지 이곳을 운영하실 생각이신지?’라는 다소 상투적인 물음에 황 씨는 “진상규명과 책임자가 처벌될 때까지 운영할 생각이다. 사실 제주4.3 같은 경우에도 내년이면 70주년을 앞두고 있지만 다 밝혀지지 않았다. 세월호 역시 진상이 규명되는 과정이 지난할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그래도 끝까지 할 생각이다. 현재 4차 ‘고래의 꿈’을 전시 중이고, 5월에는 5차 전시를 앞두고 있다. 이게 끝나면 6차 전시를 준비할 계획이다”

끝으로 황 씨는 할머니에 대한 애정 어린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무엇보다 저희 할머니가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며 할머니를 바스라지게 꼭 껴안았다. [박길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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