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영민 역사장편소설

   
▲ ⓒ뉴스제주

김통정, 그를 올려다보는 이문경의 낯빛은 점점 어둡게 물들었다. 곁을 지키던 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나같이 김통정과 그 일행에게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처음 배를 봤을 때 반기던 모습과 다른 기운이었다. 그들에겐 아군이건만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그들을 멀찍이서 살펴보았다. 김통정의 수하들은 행동이 예사롭지는 않았다. 자신의 머리보다 더 큰 칼을 허공에 휘둘렀고, 그중 몇몇은 혓바닥으로 칼날을 핥는 시늉까지 선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팔에 칼로 베더니 거기서 나온 피를 쪽쪽 소리 나게 빨기도 했다. 검붉은 피로 가득한 사슴 머리를 어깨에 멘 자도 있었고, 말의 다리 하나를 들고 뜯어 먹는 자도 있었다.

“뭣들 하느냐, 뱃가죽이 들러붙겠구나!”

김통정을 바로 옆에 있던 군사가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자 그의 수하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더니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의 멱살부터 붙잡았다. 주머니나 따로 들고 있던 먹을거리는 종류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빼앗았다. 아무것도 없는 자들은 가차 없이 주먹질과 발길질을 쏟아부었다.
이문경의 수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오히려 알아서 갖다 주기도 했고, 함께 탐라 사람들에게서 빼앗아 오기도 했다. 이문경은 그 자리에 서서 주먹을 꽉 쥔 채 움직일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서 있던 탐라 사람들 중 몇몇이 도망을 쳤으나, 그들의 발걸음이 워낙 날렵하여 모두 붙잡혀 오고 말았다. 도망치려던 자들은 한가운데에 모아서 더 거침없는 발길질을 퍼부었다.

“미개한 놈들, 어찌 대장군을 제대로 모시지 않는단 말이냐!”

김통정의 곁을 지키던 군사가 이문경 앞으로 다가갔다. 그를 내려다보더니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주먹으로 뺨을 한 대 후려치려고 하자, 뒷짐을 지고 서 있던 김통정이 손짓으로 막아냈다. 한가운데 모아뒀던 탐라 사람들도 원래 자리로 되돌아가게 하였다.

“이제 함께 살아갈 운명인데, 서로 나쁜 인상은 남기지 맙시다. 다만 우리는 너무 멀고 험한 항해로 제대로 먹은 게 없소이다. 부족하더라도 당장 허기라도 달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오.”

김통정은 자신의 발 앞에 떨어진 감자 하나를 주워서 한입 물었다. 가만히 서 있던 이문경이 바로 몸을 돌리더니 당장 남은 군량부터 풀라고 명하였다. 그의 수하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함께 움직이려고 했으나 이문경과 눈이 마주쳤다. 자신에게 오라고 손짓하였다. 내 오른쪽 어깨를 꽉 붙든 이문경은 김통정 앞으로 다가갔다.

“혹시 이 자를 아시옵니까?”

남은 감자를 입안에 꾸역꾸역 넣던 김통정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살펴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곁을 지키던 군사도 표정이 마찬가지였다. 눈꼬리를 바짝 세운 채 빤히 쳐다보더니 고개가 옆으로 기울어졌다.

“글쎄, 낯이 있었던 거 같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어찌 물으시오?”“이 자가 조정에서 보낸 문관이라 하옵니다.”

이문경은 손아귀에 힘을 더 주었다. 몸의 중심이 흐트러지자 종아리를 발로 차더니 무릎을 바닥에 붙였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흙먼지보다 숨을 턱턱 막히게 한 건, 사방에서 내려다보는 따가운 시선이었다. 김통정의 수하들이 모여 수군덕거리더니 그중 한 명은 내 목에 칼을 슬쩍 겨누는 시늉까지 하였다. 이들 중 누구도 나를 안다고 하는 자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나도 그들 중 단 한 사람도 안면이 없었다.

“난 진작 네놈이 수상쩍었다. 진짜 정체는 무엇이냐!”

이문경이 내 뒷덜미를 꽉 붙들고 거칠게 흔들었다. 그사이 그들 중 한 사람의 발바닥이 배를 묵직하게 파고들었다. 양쪽 뺨에는 주먹이 한 번씩 스쳤고. 이문경은 어깨를 발로 걷어차면서 손으로 얼굴을 땅에 확 눌렀다. 곱게 죽고 싶다면 당장 바른대로 정체를 밝히라고 소리쳤다.

“보아하니, 저쪽에서 보낸 쥐새끼 같은데. 이런 놈들은 말로 해서 안 되지!”
김통정의 곁을 지키는 군사가 도끼로 바닥을 내리쳤다. 아슬아슬하게 내 손끝 앞에 박힌 도끼를 보니 목구멍이 조였다. 의지와 상관없이 입을 열었으나 어떤 말도 선뜻 내뱉을 수가 없었다. 그저 점점 빨라지는 호흡을 입으로만 겨우 내뱉을 뿐이었다. 

“됐소이다. 이런 자에게 힘을 뺄 여력이 없으니, 어서 처리하시지요.”

김통정은 한숨과 함께 이문경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그 자리에서 발을 뗐다. 그의 그림자가 점점 멀어질수록 눈앞에서 점점 올라가는 도끼의 날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번엔 오금부터 손끝, 발끝까지 온몸이 저렸고 땀마저도 갑자기 메말랐다. 침도 삼킬 수 없을 지경이었다. 도끼는 그 사이 내 시야에서 사라졌고, 기합이 머리 위에서 짧고 굵게 울려 퍼질 때 나도 모르게 괴성부터 내질렀다. 하늘을 빙빙 돌던 까마귀부터 주변의 모든 사람들까지 멈추게 하였다. 그것도 머리 위에서 내려오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 순간, 난 이름부터 외쳤고. 조정에서 보냈다는 사실도 밝히고 말았다.

“멈추어라!”

김통정의 그림자가 내게 향하면서, 도끼는 다시 내 손끝 바로 앞으로 떨어졌다. 이문경이 뒷덜미를 잡아당겨서 반쯤 일으켜 세웠다. 쪼그려 앉은 김통정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그는 다시 내 이름과 소속을 물었다. 한 글자씩 또박또박 이름과 소속을 밝히자, 김통정이 직접 내 어깨를 붙잡고 완전히 일으켜 세웠다. 이문경을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게 한 뒤 다시 나를 빤히 노려보았다.

“네놈이 정녕 개경에서 왔느냐?”

나를 붙든 그의 손은 심한 떨림이 살아나 있었다. 그의 곁을 지키던 자들도 눈이 시뻘게지더니 당장 사지를 찢어야겠다고 소리쳤다. 바닥에 박힌 도끼가 다시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나 김통정은 손짓 하나로 그들의 목소리를 잠재웠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심호흡으로 차분히 가라앉힌 뒤 어찌 여기까지 온 거냐고 물었다. 그 답은 군영으로 돌아가서 듣자는 말도 바로 덧붙였다.

이문경이 머물렀던 처소가 김통정으로 바뀌었다. 여전히 가득한 자신의 물건들은 이문경이 수하들과 함께 서둘러 바깥으로 옮겼다. 김통정과 나는 탁상을 가운데 두고 마주앉았다. 낯빛은 진작부터 차분해졌지만 말할 때마다 거칠게 내쉬는 호흡은 여전했다. 자신이 차고 있던 칼을 수하에게 넘겨주며, 최소한 여기선 피를 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내가 거짓을 고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여기까지 온 마당에 더 이상 숨길 것도 없었다. 이 땅은 이미 저들의 손에 완전히 넘어간 게 아니던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여기서 나를 구출할 아군은 없었다. 오히려 아군이 살아남았다면 더 위험했으면 위험했지. 여기 내려온 연유와 그동안 있었던 일들, 내가 본 그대로 상세하게 털어놓았다. 어둠이 점점 주변을 짙게 덮으며, 바깥에 횃불이 더 붉게 타오를 때까지 난 말을 멈추지 않았다. 김통정과 그 뒤에 서 있는 이문경은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묵묵하게 다 들었다. 표정은 물론이고 오히려 너무나도 덤덤한 낯빛에 눈동자가 흔들리는 건, 바로 나였다. 도대체 이들은 내 얘기를 제대로 듣기는 듣는 건지.

“모두 사실인가. 그러면 이제 어쩔 셈인가? 물론 여기서 살아서 나간다면 말이지.”

얘기를 끝까지 들은 김통정이 뒤로 몸을 젖혔다. 글쎄, 당장은 미처 거기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하루하루 살아났으니 그저 버티듯 살아온 게 도대체 얼마나 지났단 말인가. 어떤 대답도 선뜻 내뱉을 수 없었다. 그러자 김통정은 여기까지 온 자신의 사연을 상세히 알려주었다. 진도에서 왕과 조정을 세운 것까지는, 이미 알고 내려온 터. 그 이후를 모르고 있었는데 결국 조정과 몽골의 연합군에게 대패하여, 그들이 세운 왕과 대장군까지 모두 전사한 상태였다. 함께 있던 왕족과 신하들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지금 여기에 온 건, 끝까지 맞서다가 겨우 탈출했던 셈. 그와 함께한 일행 중엔 왕족도 없고 신하도 없고 그저 따르던 수하들이 전부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한 가지 확실히 밝힌 건, 조정과 몽골에 끝까지 맞서 싸울 의지를 꺾을 생각이 없다는 것. 이제부터 탐라는 조정과 몽골에 맞서 싸울 최후의 땅이라는 얘기도 보탰다. 얘기를 듣던 이문경은 그들의 왕과 대장군을 입 밖으로 내뱉으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김통정도 역시 말하면서 목이 점점 멨지만, 다시 차가운 기운을 담은 눈빛으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대뜸 내 손등을 꽉 붙잡았다. 그것도 두 손으로.
“자네, 우리와 함께 합세.” (계속)

   
▲ 소설가 차영민. ⓒ뉴스제주
저작권자 © 뉴스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