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영민 역사장편소설

   
▲ ⓒ뉴스제주

조금 전에 나갔던 군사들이 다시 안으로 들이닥쳤다. 분명 단검을 내려다보며 떨던 자들이었건만. 당장 밖으로 나오라며 칼부터 들이미는 게 아니었던가. 나랑 함께 있던 자도 별다른 수 없이 칼끝에 등 떠밀려 바깥으로 나왔다. 횃불을 든 군사들 한가운데에 방금 나를 부른, 김통정이 서 있었다. 뒷짐을 진 채 내 앞으로 바짝 다가오더니 함께 있던 자와 번갈아 쳐다보며 슬쩍 미소를 드러냈다.

“난 이런 자를 보낸 기억이 없소만.”

나를 바깥으로 끌어낸 군사의 눈빛에 살기가 품어져 나왔다. 나도 순간, 어떤 말도 내뱉을 수 없어서 그저 주변 사람들의 눈빛만 슬쩍 살피기에 여념 없었다. 김통정의 손이 내 멱살로 다가갈 때, 옆에 있던 그가 막아섰다.

“대장군, 어찌 이러시옵니까.”

“네이놈! 그 손 놓지 못 할까.”

우리를 둘러싼 군사들은 모두 무기부터 꺼내 들었다. 김통정은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지더니 갑자기 식은땀까지 흘리기 시작했다. 내 앞을 막아 세운 그가 붙잡은 손에서 좀처럼 떨어지질 않았다. 분명 가까이서 볼 때 두 사람은 온몸이 떨리면서까지 힘을 주고 있으나, 오히려 김통정이 기세가 꺾이는 추세였다.

“그분이 은밀히 보내셨사옵니다.”

“그분이라?”

‘그분’이란 말에 김통정과 그자는 한 발자국씩 물러났다. 달려들려던 군사들은 김통정의 손짓에 멈춰있었다. 끝까지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그는, 그분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으며 앞으로 은밀하게 진행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김통정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네놈의 그분이 내가 아는 그분이 확실하더냐?”

“그럼 누가 또 있겠사옵니까?”

“네놈은 끝까지 건방지구나!”

김통정은 헛기침을 내뱉더니, 주위에 둘러싼 군사들부터 물러나게끔 했다. 고개를 끄덕이자, 내 옆을 지키던 그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군사들은 그저 멀뚱하게 뒷모습만 바라보더니 깊은 한숨부터 내뱉었다. 다시 모든 시선은 내게로 돌아왔다. 김통정은 조금 전 붙들린 팔목을 다른 손으로 매만지며 내 앞에 다가왔다. 

“뭔가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오. 그런데 한 가지 명심해두실 게 있소. 부디 수상쩍은 행동은 안 하시는 게 좋을 게요.”

굵은 가시가 있었다. 귓속을 파고드는 그의 한마디는.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은 묻지 않고 물러났지만, 당장 다음날부터 내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나를 수행하는 군사 한 명이 따로 생긴 것. 말이 좋아서 내 밑으로 직속 부하를 붙여준 것일뿐. 정말 그는 내가 시키거나 부탁하는 어떤 일도 들은 척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하루 종일 방에 있으면 그 바깥을 아무런 말도 없이 지켰고. 어쩌다가 나랑 마주치는 사람이라면 그게 누구라도, 무조건 기록에 남겨두었다. 그 내용은 내가 아무리 요청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고 달포가 가까워지자, 하루도 빠짐없이 내 곁을 지키는 그를 보기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처음 며칠은 그래도 인사를 하는 척이라도 했건만, 이제는 아예 본체만체하며 제 할 일에만 충실했다. 나와 어떤 말도 나누지 않았고, 행여 먼저 말을 걸면 아예 시선까지 다른 데로 돌려버렸다. 그러다가 처소 바깥으로 나가려 하면, 더 바짝 붙어서 어떤 일도 제대로 못 할 지경으로 만들어놓았다. 결국 참다못해 처소 바깥에 앉아있는 그를 발로 걷어찼다. 그러나 내 발이 민망하게, 그는 앉은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당장 김통정을 만나보아야겠다고 소리쳤으나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품에 있던 단검을 꺼내 목으로 겨누었다. 내 손은 떨렸지만 정작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코웃음까지 치면서 손등으로 자연스럽게 칼끝을 밀어냈다. 그렇다고 다시 그 목에 칼을 겨눌 엄두는 차마 낼 수가 없었다. 

다시 새로운 달포가 지날 때까지, 난 처소에서 거의 갇혀 지내다시피 하고 다른 군사들도 딱히 나를 찾아오는 발걸음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탐라가 돌아가는 소식도 알 방법이 없었다. 그저 훈련받는 군사들의 함성이 점점 더 커진다고 짐작이 갈 뿐.

난 다시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그가 대답을 하던 그렇지 않던 무조건 말을 건네기로 했다. 그가 글을 쓰고 있으면, 오히려 내가 시킨 것처럼 “그래, 얼른 쓰거라!”하고 한마디 툭 내던졌고. 그가 밥을 먹고 있으면 “그건 다 내 덕이니, 든든히 먹어두어라!”하고 역시 한마디 툭 던졌다. 나도 붓을 들고 그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적기 시작했다.

그래봐야 단순한 움직임 밖에 없었으나, 내가 쓰는 기록에는 무조건 나의 지시를 따라 움직인 것처럼 정리해두었다. 며칠이 지나고 나니, 그가 기침을 하는 횟수, 하품과 눈을 비비는 횟수 잠잘 때 내는 소리까지도 소상하게 기록할 수 있었다. 제법 내용이 채워졌을 때, 그에게 내밀었다. 김통정에게 갖다 줄 때 이것도 꼭 포함하라고. 명령이니 어긴다면 군법으로 엄히 다스린다는 말도 덧붙였다. 

“도대체 왜 그러십니까?”

군법이란 한 단어가 칼끝보다 더 무서웠던 건가. 드디어 나를 향한 대답이 돌아왔다. 며칠간 쓴 내용을 보더니 고개부터 내저었다. 다시 돌려주면서, 대뜸 무릎을 꿇는 게 아니던가?

“군감 어른도 소인이 왜 여기 있는지 알지 않으십니까?”

물론 모르진 않는다. 다만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는지 그저 의아할 뿐이었다. 다행인 것은, 막상 이렇게라도 말문이 트이고 나니 대화 자체가 가능해졌다. 잠시나마 끊겼던 이곳 소식을 몇몇 들었는데. 김통정은 그날, 나를 은밀하게 찾아온 자에 대한 행방을 지금도 찾는 중이란 것. 탐라 전역에 군사들을 보내어 수상한 자들은 모조리 잡아오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잡아오는 자들 대부분 그저 평범한 탐라 사람이었고. 그들에게서는 어떠한 단서도 못 잡은 상태라고 했다.

“제가 감히 고할 수 있는 건, 대장군은 이번만큼은 끝까지 포기 않을 겁니다.”

자신을 힘으로 단숨에 사로잡은 낯선 자를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으랴. 도대체 그들은 어디에 있는 건가, 달포를 두 번이나 넘긴 시간까지 흔적조차 못 찾았다니. 김통정보다 더 두려운 건, 그들의 행방이었다. 지금 이 순간도 내 상황을 모두 파악하고 있는 건지.

김통정이 내 처소로 직접 찾아온 건, 다시 달포가 지난 어스름한 밤이었다. 내 처소 주변에 있는 모든 군사를 물리더니. 갑자기 내게 자신이 가져온 술부터 권하였다. 사양하자, 그 술병을 입에 대고 몇 모금 마시고는 내려놓았다. 입가에 묻은 술을 손등으로 닦으면서 한숨부터 내쉬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왜 그때 말하지 않았소?”

무엇을 말인가, 그의 물음 자체를 선뜻 이해할 수 없었다. 일단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그가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더니 내 앞으로 밀어주었다. 지금 우리 두 사람 중 누구라도 거짓을 고한다면 칼에 먹이를 줘야겠다는 말과 함께. 내가 대답할 새도 없이, 그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때 나와 함께 있던 자가 개경에서 보낸 것을 알고 있노라고. 나도 모르는 일이라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가 품속에서 꺼낸 건 다름 아닌 서찰이었다. 그때 그자가 내게 보여줬던 바로 그것.

“여기서 내가 당신을 처단한다면, 이 땅에 더 많은 피바람이 불어올 것이오.”

더 이상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김통정은 꺼냈던 단검을 거두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어깨를 두 번 두드리고는 돌아갔다. 나는 밤새 그 자리에 앉아 먹구름이 뒤덮이는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 다음날부터 나의 수하라고 붙여줬던 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다시금 군사들이 성주청 바깥을 오갈 때 내게 들렀다 갔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소식들이 들어오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 내 귀를 사로잡은 게, 군함을 새로 건조했다는 얘기였다. 삼별초, 저들의 입장에서 빼앗긴 땅을 되찾으러 출정할 준비가 다 되었다고 한다. 머잖아 출정할 터인데 군사들은 내게도 따라갈 것이냐고 물었다. 드디어 그날이 온 것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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