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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안허우꽈?] 56화, 조용한 파도차영민 역사장편소설
차영민  |  cym893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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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05  11: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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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제주

그날은 바람처럼 빠르게 다가왔다. 한동안 군사들이 성주청보다 성 밖 해안을 자주 오가더니 금세 군함 한 척이 완성됐다고 했다. 한 척이 완성되자 두 척, 세 척까지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열 척을 넘길 때쯤, 어느덧 삼별초와 뜻을 함께하는 군사들의 수가 곱절 이상으로 늘어난 상태였다. 도대체 이들은 탐라 어디에서부터 온 것인지.

김통정과 삼별초 수뇌부들은 그들의 출신을 그리 따져 묻지 않았다. 대부분 탐라 말을 사용하는 자들이었지만, 간혹 다른 지방이나 심지어 다른 나라에서 온 자들도 뒤섞여있었다. 그들은 나처럼 표류해서 이 땅에 닿은 것이라고는 하던데.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단 말인가. 한동안 그들의 행동 자체가 썩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딱히 물어볼 여력은 없었고 이를 확실히 대답할 자들도 마땅치 않았다.

성안에 있는 탐라 사람들은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매일 같이 식량을 얻으러 오는 사람들은 그 수가 줄어들었고, 가끔 성주청 바깥을 나가보면. 집들도 대부분 원상복구되었고 처음 봤을 때처럼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위태로운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개경에 있을 때보다 사람들의 모습은 평화로워 보일 정도였다. 누구도 김통정과 삼별초 군사들에 대해 작은 불만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원래 성주와 고려군들을 오랑캐보다 못한 족속이라며 공공연하게 떠드는 모습은 곳곳에서 보였다.

한 가지 의문스러움은 삼별초가 들어온 날부터 군사들도 그렇고 탐라 사람들에게 식량은 부족하지 않게 공급되었다는 것. 한 번씩 김통정이 직접 극소수의 군사들과 성 밖으로 다녀올 때마다 그 식량을 채워나갔다. 그동안 탐라 사람들에게 듣기를, 여기서는 그 식량들을 재배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나마 자주 보는 군사들에게 슬쩍 물어보니, 하나 같이 안색이 바뀌며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어느 날,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던 때에. 김통정은 필수 경계 병력을 제외하고 모든 군사들을 성주청 바깥으로 소집하였다. 바로 그곳에 그동안 건조한 군함들이 정박해 있었다. 비록 크기는 고려군이나 삼별초가 처음 내려왔을 때보다야 작은 편이었지만. 길게 쭉 뻗은 모양새와 나무를 얼기설기 붙여놓은 모습들이, 거친 바다에 맞설 준비에는 충분해 보였다.

김통정은 군복에 무기까지 완전하게 다 챙기고 나타났다. 나머지 군사들도 모두 장비를 다 갖춘 상태에서 대열을 맞춰 서 있었다. 나도 이들 중 한 사람으로 서 있었는데, 인원이 그동안 봤던 탐라 사람들보다도 많아 보일 정도였다.

 “때가 되었다. 저 바다 건너 우리를 기다리는 백성들이 있다. 오랑캐와 역적들의 손에 놔둘 셈인가, 당장 해방할 셈인가!”

그가 물었다. 특별한 대답은 필요하지 않았다. 모두 두 손을 들고 힘차게 환호하는 그 자체로 충분했다. 탐라에서 그동안 모은 군사들과 의지라면 개경까지 금방 탈환하고, 그걸 넘어 몽골군까지도 고려 땅에서 완전히 몰아낼 수 있겠다며 목청을 높였다. 이에 환호성은 하늘과 바다를 뒤흔들 만큼 높게 그리고 넓게 퍼져나갔다. 군사들 대열 뒤편으로 따라온 탐라 백성들도 마찬가지였다. 노인과 아이 할 것 없이 김통정을 향해 두 손 높이 늘고 만세를 외쳤다. 그들에게 김통정은 칼을 높이 들어 화답하였다.

 “모두 올라오시오! 많이 늦었소이다.”

군사들은 모두 각자 대열 앞에 있는 배로 올라갔다. 나도 오르려고 할 때, 한 군사가 팔로 막아섰다.

 “어찌 함께하시옵니까?”

다 모이라고 한 건, 언제고. 느닷없이 왜 따라 나왔냐고 따지는 건가? 그러나 이미 배 안에 들어간 부장급 군사가 시간이 없으니 얼른 들이라고 하였다. 나를 들여보내는 군사의 낯빛이 어둡게 물들었지만, 그 연유를 물어볼 새가 없었다. 내가 갑판까지 올라갈 때쯤, 배는 서서히 돛을 펼쳤고 바닥에서 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 전 우리가 있던 자리까지 내려온 탐라 사람들은 두 팔을 벌려 환호하였다.

해가 중천일 때 출발한 배는 세차게 그리고 빠르게 거친 파도를 헤치고 나아갔다. 바람은 우리가 나갈 방향대로 알맞게 불고 있었다. 바다 한가운데 탐라의 어스름한 모습도 보이지 않을 때쯤, 하늘에 어둠이 흩뿌렸다. 낮과 달리 밤바다 별빛을 머금은 채 고요했고, 군함들도 물결에 따라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제야 군사들도 제대로 식량을 나눠 먹으며 각자 자리에서 쉬고 있었다.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일 때쯤, 뒤에서 낯선 그림자가 다가왔다. 내 어깨에 손을 올렸지만 고개는 돌리지 못 하게 했다.

“그간 잘 지내셨사옵니까?”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이 절로 커졌다. 내 처소에 은밀하게 들어왔던 바로 그였다. 손아귀 힘이 어찌나 매섭던지, 내 의지대로 몸을 돌릴 수 없었다. 그저 앞만 보고 가만히 서 있었다.

“지금이옵니다.”

지금이라니, 무슨 말인고 하니. 내가 탄 배에는 그와 뜻을 함께한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세히 곁눈질로 주변에 군사들을 살펴보니, 대부분 성주청 안에서 본 얼굴들은 아니었다. 배에 오르려던 나를 막아선 그 군사도 가만 생각해보니, 낯선 얼굴이었다. 어떻게 여기에 다 있냐고 물어봤더니, 탐라 외곽 방어에 필요한 인력으로 지원했더니 그리 따져 묻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자신들을 찾아내려고 성주청 병력들이 잠시 외곽으로 나왔으나, 결국 자신들이 자신들을 찾는 모양새로 며칠 정도만 샅샅이 뒤지는 시늉만 하고 마쳤다고.

이 배에서는 부장과 몇몇만 빼면 모두 고려군 쪽 사람이라던데. 이대로 갔다가는 고려군들이 곧장 피해를 볼 것이니, 대책이 필요하다고 작은 소리로 내뱉었다. 그래서 뭘 어쩔 셈이냐고 물었더니, 뱃머리 쪽에 나가있는 부장 쪽으로 눈길을 뒀다.

 “여기서 결판을 내야겠습니다. 괜찮사옵니까?”

그의 물음은 정녕 내 대답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이미 주변에 있는 군사들이 은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난 여전히 같은 자세에서 그들의 모습만 살펴볼 수밖에 없었다. 부장과 함께 있던 몇몇 군사들은 그저 바다만 바라보고 있을 뿐, 특별한 움직임이 없었다. 그 사이 그들에게 다가가는 군사들은 각자 무기를 들고 있었다. 그림자의 방향도 그들과 반대 방향이었고, 발소리조차 내지 않은 자들은 더 빠르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부장의 곁에 있던 횃불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람이나 배가 흔들린 탓은 아니었다. 부장과 함께 있던 군사들이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횃불대부터 걷어찼다. 불길이 치솟았고 그 사이로 단검이 서너 개 날아들었다. 이를 피하지 못한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나머지 사람들도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으나, 정작 나를 붙들고 있는 사람은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침착하시오, 아무래도 눈치를 챈 모양입니다.”

글쎄, 단순히 이상한 낌새만 눈치를 챈 걸까? 양옆으로 다른 군함도 갑자기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간격은 점점 좁아지더니, 갑자기 뱃머리에 있던 부장과 군사들이 바다로 뛰어내리는 게 아니던가? 그와 동시에 양옆 다른 군함에서 화살이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불화살로 일부러 뱃머리부터 향하더니, 불길이 더 크게 치솟아 오르자 다시 간격을 넓히기 시작했다. 이게 과연 조금 전 그 상황만 눈치를 채고 한 행동이란 말인가? 오히려 당황한 건, 나와 같은 배에 있는 군사들이었다. 애써 자리를 지키며 날아드는 화살에 맞섰지만, 하나둘씩 쓰러지고 있었다. 나를 붙들던 그도 손을 떼더니 몸부터 피했다. 나 역시 아슬아슬하게 스치는 화살 사이에서 몸을 최대한 숙였다. 그러나 뱃머리에서 시작한 불길은 금세 갑판을 뒤덮기 시작했다. 간격이 벌어진 사이로 다른 군함이 뱃머리로 중심부를 파고들었다.

순식간이었다. 화살은 멈췄지만 배는 갈라지더니 점점 바다로 가라앉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막아보려던 자들은, 먼저 바다에 뛰어들거나 어떻게든 쓰러지지 않으려 뭐라도 붙잡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왼손에 잡히는 난간을 꽉 붙들었으나, 점점 몸의 중심이 바다로 향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서서히 바람이 파도를 일으켜 세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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