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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안허우꽈?] 57화, 새로운 제안차영민 역사장편소설
차영민  |  cym893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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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19  11:5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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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제주

파도를 머금은 바닷물은 금세 온몸 구석구석으로 파고들었다. 두 손으로 붙들고 있는 건, 파편이 아니라 화살을 맞아 쓰러진 다른 군사였다. 머리 위로 스치는 화살과 파편을 피해 조금씩 움직였다. 제자리를 크게 벗어나진 못 했으나 그나마 날아오는 것들은 가까스로 피했다.

조금 전까지 내가 있었던 배의 반쪽은 이미 바닷물에 잠겼고. 그나마 남은 반쪽도 불길에 휩싸였고. 겨우 매달린 군사들도 하나둘 바닷물로 맥없이 빠지고 있었다. 허우적거리며 자신에게 날아든 화살을 쳐내는 자들도 몇몇 보였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배가 완전히 침몰하면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질했던 모습들도 사라지고 말았다.

당장 주변에는 살아서 움직이는 자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화살 세례도 멈췄고 바람과 함께 거칠게 일어나는 물결도 점점 잠잠해졌다. 저들이 탄 배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양옆으로 바짝 붙은 군함들은 뱃머리를 왔던 곳으로 서서히 돌리고 있었다. 그사이 난 물에 퉁퉁 불은 나무 파편을 겨우 끌어안고 두 발은 오리처럼 발버둥했다. 군함들은 서서히 내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저들 중 누구도 내 쪽을 살펴보지 않았고, 오히려 싸늘하게 식어가는 시체들을 밀어내기 급급했다.

별 수 없었다. 소리를 내질렀다. 입술이 바짝 마르고, 목구멍에 거칠거칠한 것이 걸린 듯 소리도 제대로 나지 않았지만. 살려달라는 말과 그냥 아무런 의미 없는 고성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그러나 내 목소리는 잔잔하게 일어나는 바닷물결에 파도처럼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군함들은 오히려 더 빠르게 내 시야에서 멀어졌다.

피비린내와 탄내가 여전히 남은 바다 한가운데, 주변을 아무리 살펴봐도 나처럼 숨을 쉬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판자도 그나마 내가 붙들고 있는 게 가장 성한 것이었다. 어둠을 깊게 들이마신 바다는 찬 기운마저도 들이마시고 있었다.

나는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입술이 차갑게 식어갔고. 다리는 이미 감각을 상실한지 좀 된 상태였다. 두 팔도 그저 걸치고만 있을 뿐, 언제든 판자가 빠지면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지금 난, 무얼하고 있단 말인가?

내 몸 구석구석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을 때, 눈꺼풀은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 이를 막아볼 힘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더 멀리, 어스름하게 떠 있는 달빛에 마지막 인사를 나눠야 할지, 속으로 혼잣말을 되뇌었을 뿐.

저승의 길은 어째서 내게 쉬이 열어주지 않는단 말인가. 무겁게 내려앉은 눈을 서서히 뜨자, 보이는 건 바로 파랗게 물든 높은 하늘이었다. 구름 한 점 없고, 따사로운 햇살이 내 얼굴을 내리쬐고 있었다. 발에서부터 목까지 까끌까끌한 것이 덮여 있었는데, 짚단을 펼쳐놓은 것이었다. 바닥은 물기가 흥건한 나무였고. 두 팔을 벌리면 닿고도 남는 좁은 간격이었다. 내 머리 위로는 낯선 그림자가 노를 젓고 있었다. 두 사람이었는데 삐쩍 마른 몸에 여기저기 찢어진 옷을 그저 걸친 수준이었다. 팔다리는 깡말랐지만, 힘을 줄 때마다 드러나는 근육은 제법 탄탄해보였다.

 “살암신게.”

그중 한 사람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머리카락은 하얗게 셌고, 수염도 마찬가지였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시커먼 편이었으나, 눈동자만큼은 맑았다. 주름이 얼굴 곳곳에 굵게 자리를 잡았고, 목 주변으로는 벌겋게 달아오른 상처도 보였다. 낯선 얼굴이었지만 탐라 사람의 억양이 목소리에서 드러났다. 함께 있는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이목구비는 거의 비슷했으나, 그는 목이 아니라 눈 밑으로 뻘건 칼자국이 선명했다. 이들은 누구란 말인가?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물어보았으나 딱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당장 알 수 있는 건, 아주 작은 고깃배에 나를 포함해 세 사람이 탔고, 저 멀리 땅이 보인다는 점. 저 너머 낯설지 않은 아주 큰 산도 함께 보였다.

바다 위에서 나랑 어떤 말도 섞지 않던 두 사람은, 포구에 정박하자마자 내리라며 손을 빠르게 내저었다. 여전히 온몸은 젖어있고 여태 덮고 있던 짚을 치우니, 한기가 몰려와서 나도 모르게 떨렸다. 포구에 발을 붙이자마자 숨부터 크게 들이마셨다. 정녕 이곳이 탐라 땅이 맞단 말인가? 산과 주변에 봉긋하게 솟아오른 오름들만 봐도 맞는 듯하나, 어딘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다시 물었다. 당신네들은 누구냐고. 이번에도 대답 대신 두 사람은 손가락으로 내 등 뒤를 먼저 가리켰다.

오름과 가까운 곳에 울타리로 둘린 군영이 먼저 보였다. 그러나 깃발은 고려군과 삼별초도 탐라 성주가 사용한 것들이 전혀 아니었다. 의문은 계속되었지만 두 사람과 함께 군영까지 향하는 동안 어떤 것도 미리 들을 수 없었다. 대신 군영에서 나온 군사들은 내게 깍듯하게 예를 먼저 올렸다.

 “먼 길, 고생이 많으셨사옵니다. 장군께서 친히 뵙고 싶어 하옵니다.”

그 자리에서 곧장 장군의 막사로 들어갔다. 내부에는 나만 혼자 들어갔는데, 기다리는 사람도 역시 혼자였다. 무장을 단단히 한 차림이었는데, 나를 보자마자 손에 닦던 칼부터 내려놓았다. 의자를 내어주더니 먼저 앉히면서 자신도 따라서 앉았다. 정면으로 마주 보자마자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분명 장군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러기에는 얼굴부터 몸집까지 너무 앳되 보였다. 아무리 살펴봐도 지슬과 거의 비슷한 나이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여긴 어디냐고 물었다.

 “하늘에서 정해준 땅이옵니다.”

하늘이 정해준 땅이라, 더 알 수 없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다시 묻기 전, 그가 이곳의 정체부터 먼저 밝혔다. 이곳은 고려군도 삼별초도 성주를 호위하는 군사도 아닌. 오로지 탐라 사람들만이 모인 군사들이었다. 고려군과 삼별초에 한 번씩은 동원된 자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를 따르는 군사들은 대부분 나이가 더 어렸다. 가만 생각해보니,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자들도 몸집만 그럴싸했지 얼굴들은 모두 앳된 모습을 감추지는 못 했다.

 “저희는 반드시 이 땅을 되찾고 싶사옵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그는 나를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고려 조정에서 내려온 것부터 시작해서 삼별초와 함께 움직여왔던 그 모든 것을. 그럼에도 나를 반기는 건, 단 하나. 그와 내가 함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지슬이었다. 지슬도 이들과 뜻을 함께해왔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소상하게 알려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동안 여기서 몰래 삼별초에 심어둔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계속 살펴보았다고.

그러나 내 한 몸 건사할 수 없어서 몇 번씩이나 죽을 뻔하였건만. 도대체 이들은 내게서 어떤 기대를 한단 말인가? 그 답은 생각보다 쉬운 곳에 있었다. 내가 바로 고려 조정에서 왔기 때문이었다. 삼별초에 빼앗긴 탐라를 자신들이 되찾는다면, 고려 조정 역시 이를 인정하고 자주권을 인정해달라는 것.

 “탐라는 탐라 사람들이 직접 꾸려나가야 하옵니다.”

글쎄, 과연 내가 저들의 요구를 들어줄 처지일까? 정녕 나를 제대로 알아보고 얘기하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탐라에서 삼별초는 몰아내고 나를 무사히 개경까지 데려다주겠다고 약조하였다. 그렇다, 반드시 나는 개경으로 돌아가야 하건만. 오히려 저들이 과연 그럴 힘이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든 내겐 선택할 답변이 없었다. 탐라를 벗어나려면 지나가는 물고기라도 붙잡고 애걸해도 모자랄 판이었으니까.

그와 대화를 마치고 막사 밖으로 나왔다. 군영에 있던 군사들이 모두 앞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을 살펴보니 한숨부터 나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장군이란 자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군복조차 없었고, 무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날이 부러진 칼에, 축 늘어진 활시위에,  끝이 뭉툭한 창까지. 도대체 저걸로 뭘 어찌 싸우고 되찾겠다는 건지.

깊은 한숨과 함께 이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모두 떨고 있었다. 장군 혼자만이 기세가 치솟았을 뿐, 나머지는 눈에 초점도 제대로 잡히지 않을 정도였다. 과연 이들이 어떻게 삼별초를 몰아낸단 말인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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