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영민 역사장편소설

   
▲ ⓒ뉴스제주

사방엔 온통 산으로 뒤덮인 이곳. 군영이란 이름은 붙여놨지만. 글쎄, 어디를 봐도 막사 하나 성한 구석이 없었다. 장군이란 자는 가장 일찍 일어나서 가장 늦게 잠들었지만. 세상사, 어찌 눈만 뜨고 부지런만 떤다 하여 뜻대로 되겠는가.

장군은 여기서 하루종일 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수하 몇몇과 산속에 들어가더니 짐승과 열매 등등 먹을거리를 챙겨왔고. 나무들을 베어 와서 손수 화살 하나라도 만들었다. 군영 전체를 두를 울타리도 역시 그의 손길을 거치고 있었다. 이 와중에 군사들 몇 명만 도와주는 시늉만 했을뿐, 사실상 그가 혼자 일을 다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도 그였지만, 군사들의 행동이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 종일 훈련을 한다고 모여 있었지만, 나무 막대기로 휘두르는 시늉 정도였다. 그마저도 오래지않아 몸이 쑤신다거나, 허기가 진다며 내려놓기 일쑤였다. 그나마 하루 중 가장 열심히 하는 건, 장군이 구해 온 산짐승을 다듬고 굽거나 끓여서 각자 배를 채우는 정도였다. 그때만큼은 새삼스럽게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나를 부르면서 같이 먹자며 인심까지 썼다.

“아멩해도 어떵될 지 모를 일이라, 배때지라도 채워사주.”

그 중 한 사람이 살점을 뜯으며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그는 탐라군사였다가 고려군과 삼별초까지 거쳐서 여기로 온 자였다. 어떻게 여태 살아있는지 물어봤더니, 그 이유가 참 간단했다. 지금처럼 적당히 묻어 있다가, 적당할 때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 이러나저러나 누군가의 화살받이나 될 운명. 굳이 열심을 다할 필요가 없다는 그의 얘기를, 다른 군사들도 동감했다. 얘기를 조금 더 나눠보니, 정작 군사들이 따르는 건 장군이 아니었다. 여태까지 꿋꿋하게 살아남은 이자였다. 체격은 여느 장군 못지않게 다부졌고, 제법 젊기도 했지만. 평소에 움직임이 느긋느긋한 편이었다.

장군은 진작부터 이자와 따로 만나서 많은 얘기를 나눠봤다고 하지만. 달라진 건, 오히려 그를 따르는 자들만 더 늘어났다는 것. 정작 장군을 보좌하며 직접 군사들을 이끄는 건 싫다고 한다. 말로는 그저 장군이 시키면 바다에라도 뛰어들겠다고 했으나. 그 목소리에는 하나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래도 탐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소이다. 그때가 되면, 분명 보여줄 겁니다. 그리 믿고 때를 기다리고 있소이다.”

장군은 따로 나를 불러서 이리 얘기해줬으나. 군사들이 내뱉은 말과 행동만 봐서는 썩 와 닿진 않았다. 이럴 거면 어찌 찬바람이 짙어지는 이곳에 모여 있단 말인가.
그런데 모여 있다는 그 생각도,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착각이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보였던 몇몇 군사들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 자리에 낯선 얼굴들이 채웠다. 장군에게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냐고 오히려 내가 물으러 갈 정도였다.

“우리는 가는 사람 안 붙잡고 오는 사람 막지 않소이다. 마음이 있어야 함께 할 수 있지 않겠소이까? 너무 염려하지 마시지요.”

과연 진정 병법 한 줄이라도 살펴본 장군이 맞단 말인가. 누가 오던지, 가던지 이처럼 무심할 수 있는 건지. 이것도 알고 보니, 그자가 은밀하게 결정을 했던 모양이었다. 자신의 마음이 든다면 슬쩍 들여오고, 마음에 들지 않은 몇몇은 어느 날 갑자기 늦은 밤에 아무도 모르게 내쫓아낸다는 것.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그자를 따르는 군사들이 많아졌고.

어느 날부터는 그를 부르는 호칭이 ‘우리들의 장군’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와중에도 장군은 너무나도 태연하게 매일 하던 일에만 집중하였다.
이와 더불어 이곳도 언젠가 삼별초에 발각될 것이 염려스러웠는데. 마침 장군이 깊은 밤 중에 나를 따로 자신의 막사로 불러들였다. 대뜸 내게 대뜸 서찰 하나를 건네주는 게 아니던가? 그 옆에는 칼도 한 자루 있었다.

“여길 나가는 순간부터 뒤도 돌아봐서 안 됩니다. 바깥에 제몸과 같은 수하가 있습니다. 함께 떠나시지요.”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얼른 움직이라고 채근하는 터라, 그 연유도 제대로 물을 수 없었다. 막사를 빠져나오자마자 기다리던 자와 군영 바깥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런데 우리 앞을 가로막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그들이었다. ‘우리들의 장군’을 가장 가까이서 따르는 군사들.

“어디감서?”

그들의 눈빛은 내 손에 들린 서찰로 향하였다. 내 옆을 지키는 군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칼을 뽑았다. 순식간에 이들을 쓰러뜨리더니 얼른 가자고 손짓했다. 서둘러 움직이려고 할 때, 내 발목을 붙잡은 손이 있었으니. 방금 어디 가냐고 물었던 자였다.

“육짓것들은 역시…….”

손을 걷어차고 군영 바깥으로 나서자마자 갑자기 괴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아주 잠시 고개를 돌렸을 때, 군영 한가운데에서 아주 큰 불길이 치솟는 게 아니던가. 어렴풋한 모습이지만 군사들은 양쪽으로 나뉘어 대치하고 있었다.

“몽캐지맙써!”

어깨를 툭 치는 손길에 다시 앞만 보고 달렸다. 금세 숲속으로 들어갔으나 고성은 오히려 등 뒤까지 바짝 붙은 듯 너무나도 생생하였다.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은 숲길에서 몇 번씩 넘어졌지만 함께한 자의 도움으로 겨우 일어나서 뛰고 또 뛰었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지만 고를 틈도 주지 않았다. 가슴을 움켜쥐면서 오르고 내리고 또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였다. 사방은 온통 캄캄했고 바닥은 축축해서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속력을 내지 못 하자, 그가 내 어깨를 붙잡고 뒤에서 밀기 시작했다. 한참을 더 나아가자, 저 멀리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까워질수록 드러난 모습은 전혀 낯선 모습의 군영이었다.

“누게꽈?”

우리는 입구를 지키는 군사 앞에 다가가서야 멈출 수 있었다. 숨도 제대로 고르기 전에 군사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분명 저쪽에서 함께 있었으나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자가 아니던가? 그도 나를 알아본 듯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내 손에 쥔 서찰을 살펴보더니 별말 없이 군영 안으로 들여보냈다.
더 놀랄 수밖에 없는 건, 막사와 군영 내부시설들이 잘 갖춰진 것도 있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군사들이 모여 여기에 있었다는 것. 전과 달리 군복도 제대로 갖춰 입었고 훈련도 아주 제대로 진행 중이었다.
군영 한가운데 가장 큰 막사로 들어서자, 백발이 성성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탁자에는 지도를 펼쳐놓았고, 무기도 제대로 갖춘 모양이 삼별초보다 더 탄탄해보일 지경이었다.

“얘기는 많이 들었소이다.”

그는 내게서 서찰을 건네받으면서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까무스름한 얼굴은 마르긴 했으나 그만큼 더 날이 살아있었다. 짙은 눈썹으로 움씰거리며 서찰을 살펴보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기도 했다. 나와 함께 온 군사는 그를 대장군이라 불렀다.

“결국 일이 그리 되었구먼.”

무슨 사정인지 들어보니, 그곳에 있는 장군은 여기서 보낸 사람이었다. 탐라 전역에서 뿔뿔이 흩어진 군사들을 모으긴 했는데. 여전히 삼별초나 고려군이 심어놓은 사람들도 많았다는 것. 모두 탐라 사람이라 걸러낼 방법을 고민하다가, 결국 가짜 군영까지 만들어놓은 것.
탐라 성주와 상관없이 오로지 탐라 사람들만이 모인 정예군이란 얘기도 덧붙였다. 그 장군이 내게 얘기했듯, 대장군이란 자도 같은 요구를 슬쩍 꺼냈다. 그러나 차마 난 그럴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 감히 조정을 대신하여 약조까지 할 수 없는 노릇. 이런 사정을 말했더니.

“알고 있소, 그대가 본 것만 그대로 전달만 해주시오. 그거만 충분하오.”

그리고 품에서 서책을 꺼내더니 내게 건네주었다.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건 내가 탐라에 내려와서 기록했던 그 서책이 아니던가? 이걸 어떻게 구해왔단 말인가?
그에게 물어보려던 순간, 갑자기 막사 안으로 한 사람이 급히 달려왔다. 그는 바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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