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안허우꽈?] 60화, 미완의 항복
[펜안허우꽈?] 60화, 미완의 항복
  • 뉴스제주
  • 승인 2018.01.07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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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민 역사장편소설
   
▲ ⓒ뉴스제주

김통정, 바로 그였다. 대장군과 함께 있었던 군사들은 그의 앞에 피범벅으로 쓰러져 있거나, 두 팔이 꽉 묶인 채 무릎을 꿇은 상태였다. 대장군은 무장이 풀리고 빈손 차림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옆에 서 있었다. 분명 출정할 때만 해도, 탐라를 넘어 고려, 저 멀리 몽골까지도 나갈 수 있을 기세였지만.
머리카락까지 헝클어진 채 온몸을 떨고 있는 모습은, 그저 초상날을 앞둔 쇠약한 노인에 그치지 않았다. 아직 살아있는 그의 수하들은 하나같이 악다구니를 아끼지 않았다. 귀신에 씌어 잠시 정신이 나갔다는 자부터 시작해서, 온갖 고문과 협박으로 어쩔 수 없이 있었다는 자도 있었다. 거기다가 삼별초에 몰래 정보를 내주려고 잠입했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한 자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는 오래 흘러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몰래 잠입했다고 주장하던 그들의 머리가 먼저 바닥을 뒹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그리한 자들은 바로 김통정의 뒤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귓속말로 건너건너 사로잡은 자들에 대해 이야기를 내놓았고, 김통정의 귀까지 닿으면 오래지않아 목이 날아갔다.
그 와중에 대장군은 가만히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던 그가 잠시 고개를 든 건, 김통정이 우리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먼 길 오시느라 노고가 참 많았구려!”

김통정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닿았을 땐 이미 사방에 매복한 삼별초 군사들의 낌새를 알아차린 상태였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아는 척은 하지 않았다. 나방이 불 속으로 뛰어들 듯 조금씩 조금씩,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들의 앞으로 다가갔다.
조금 전까지도 무릎을 꿇고 있던 자들이 모두 쓰러지고서야 우리는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그때 김통정과 나의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갑자기 입가에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곁을 지키던 몇몇이 급히 따라 웃는 시늉은 보였으나, 그들의 눈빛은 주변에 피어오르는 불길을 한 번에 확 사로잡을 정도로 싸늘했다.

“군감께서 어찌 거기 계십니까?”

김통정이 나를 위아래로 찬찬히 훑어보았다.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시선도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순식간에 내게서 한 발자국씩 떨어져 자리를 잡기도 했다. 별 수 없이, 나 혼자 김통정을 향해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그러자 삼별초 군사들이 바로 나오려고 했으나, 김통정은 손을 올리며 제지했다. 대신 자신도 혼자 앞으로 나오더니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발에 걸린 조금 전 쓰러진 자의 머리는 내 발 앞까지 굴러서 멈추었다. 여전히 온기가 느껴지는 사람 머리에 나도 모르고 속이 울렁거리고 말았다. 그것도 잠시, 삼별초와 우리 중간 사이쯤에 선 김통정이 앞으로 더 다가오라며 손짓했다.
어느새 양쪽 진영의 한가운데에 김통정과 내가 마주섰다. 김통정은 다시금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러면서 손수 내 어깨를 털어주기도 했다.

“말로만 들었을 땐 참 믿기 어려웠는데. 정녕 목숨 줄이 참 질기십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여태껏 그랬다. 굳이 이 말을 꺼낸 건, 설마 여기가 마지막이란 뜻인걸까? 그의 눈을 살펴보았다, 살기가 깊이 느껴지진 않았다. 어쩌면 그마저도 교묘하게 숨길 수도 있었겠지만. 대장군은 어찌할 거냐고 물었다. 지금으로선 딱히 다른 말도 떠오르진 않았다.

“이미 죽은 자를 두고 무슨 말을 하는 게요?”

돌아온 대답에 김통정의 뒤를 살펴보았다. 여전히 그 자리에 동상처럼 꼿꼿하게 서 있건만.
심지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선 내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땅만 내려다보며 한숨만 간간히 내쉴 뿐이었다. 그 곁에 있던 군사들은 웃음을 은근히 드러내며 대장군을 흘겨보기 바빴다.

“무인으로서 수하들을 포기하면, 어찌 살아있다 할 수 있겠소?”

그 말을 선뜻 이해할 수 없었다. 자세히 대장군의 뒤를 살펴보니, 함께 움직였던 군사들도 제법 보이긴 했다. 물론 그만큼 내 주위에 쓰러진 군사들도 많았지만. 하나의 공통점이라면 고려군과 함께했던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간간이 어쩌다가 합류한 탐라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살아있는 자들도 삼별초 군사들 곁에 제법 보였다.

“자네를 볼 때마다 느끼네만. 질긴 목숨줄만 믿고 무모한 게요, 아니면 정녕 아무 것도 제대로 몰라서 목숨만 겨우 부지하는 게요? 참으로 알 수 없단 말이지.”

김통정은 말하면서 계속 웃음을 드러냈다. 얼굴이 시뻘게지는 건 바로 나였다. 그저 말만 들었을 뿐인데, 발끝에서부터 올라오는 떨림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등 뒤에서 내게 향하는 따가운 시선에 식은땀까지 이마를 잔뜩 적시고 있었다. 이제 어찌할 작정인지, 김통정에게 물었다.

“우리의 연은 여기서 마쳐야하지 않겠소?”

선택은 둘 같은 하나였다. 저들과 싸우다가 죽던지, 그저 목숨을 구걸하면서 죽어가던지. 굳이 대답을 마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김통정과 그를 따르는 군사들의 눈빛이 모든 걸 드러냈으니. 김통정은 대답과 동시에 칼자루를 매만졌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삼별초 군사들도 갑자기 자세를 바꾸었다. 내가 칼자루를 꽉 쥐려던 순간!

“뭣들 햄시냐, 재게 무릎부터 꿇라!”

대장군이 갑자기 앞으로 몇 발자국 나와서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고는 김통정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으로 바짝 붙였다. 자신이 죽어도 좋으니, 아무런 죄가 없는 수하들은 살려달라며 두 손으로 빌기도 했다. 이에 나와 함께왔던 군사들도 모두 무기를 내려놓고 대장군처럼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누구 하나 망설이는 기색이 없었다. 김통정은 나와 함께왔던 자들을 번갈아보더니, 낯빛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말았다. 그가 쥔 칼끝은 어느새 대장군의 목덜미를 향하였다.

“정녕 저들을 살리고 싶은 게냐?”

김통정은 똑같은 질문을 거듭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자신을 죽여도 좋으니, 부디 나머지 수하들이라도 살려달라는 것. 그 모습에 함께 얼굴빛이 어두워지는 자들이 있었으니 조금 전까지 귓속말로 주고받던 그들이었다. 한순간에 양쪽 진영으로부터 쏟아지는 시선을 받은 김통정은, 잠시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입술이 점점 메마르면서 마른침까지 삼키면서 더욱더 짙어지는 낯빛을 숨기지 못 하였다. 결국 칼을 거두었다, 대신.

“네놈들을 위해 목숨까지도 내놓겠다고 한다. 내 어찌 직접 이 목숨을 거두겠느냐. 누구든 거기서 한 사람이라도 나오너라. 직접 목을 베면, 나머지 사람들도 목숨만큼은 살려주도록 하지. 해보겠느냐?”

김통정의 제안에 양쪽 모두 술렁였다. 오히려 삼별초 진영에서는 괜한 짓하지 말라는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 나와 함께 왔던 자들도 술렁였는데, 머뭇거림이 아니었다. 오히려 누가 먼저 나올지 눈치를 보고 있었다. 결국 한 사람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나왔다. 바닥에서 주운 자신의 창을 꽉 쥐더니, 대장군의 등으로 내리꽂으려 했으나. 곧장 뒤따라 뛰쳐나온 이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지슬이었다. 분명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함께 있지 않았건만, 언제 저기에 있었던 건지. 먼저 나온 이의 창끝이 대장군에게 닿기도 전에, 지슬이 먼저 칼을 휘둘렀다. 창을 들었던 자는 그 자리에서 곧장 쓰러졌고, 그 칼은 김통정의 얼굴로 향하였다. 양쪽에서 웅성거렸지만 누구도 선뜻 움직이진 않았다. 나도 칼을 빼들고 김통정의 목에 갖다 붙였다. 지슬과 내 눈이 마주친 순간, 김통정이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암, 이래야지. 무인이라면 구차하게 목숨만 구걸해서 아니 될 일이야.”

그의 목소리와 눈빛에는 전혀 떨림 자체가 새어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발아래 머리를 조아린 대장군이 비에 홀딱 젖은 들쥐처럼 벌벌 떨면서 옴짝달싹도 못 하고 있었다.

“제발 그만두라게, 그만둬…….”

지슬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 어차피 여기서 목숨을 구걸할 바에야 삼별초의 수장을 처단하는 게 더 낫지 않겠던가. 그러나 대장군은 세 사람 사이에서 계속 그만 멈추라고 같은 말만 반복하였다. 김통정은 그저 웃기만 하여 오히려 빈손으로 양팔을 들고 빨리 뭐든 해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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