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영민 역사장편소설

   
▲ ⓒ뉴스제주

화살 하나가 바람을 가르더니 목덜미에 정확히 꽂히고 말았다. 피가 솟구치기도 전에, 대장군은 숨소리조차 내밀지 못 한 채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어디서 나온 화살인지는 당장 알 수가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최소한 나와 함께 온 사람들 중 누군가가 쏜 건 아니었다. 그걸 감히 잠시라도 의심할 새도 없이 주변 나무들 사이에서 화살이 쏟아지듯 나왔고, 순식간에 하나둘씩 쓰러지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김통정의 목에 닿았던 칼은 점점 힘을 잃어갔다. 오히려 나와 지슬의 주변으로 날을 바짝 세운 창칼이 에워싸는 형국이었다.

“아무래도 그 긴 목숨줄은 여기서 안녕을 고해야겠소이다.”

김통정은 목에 벌겋게 살짝 긁힌 칼자국을 손으로 슬쩍 털어내며 미소를 드러냈다. 우리는 분명 손에 칼을 쥐고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휘두를 엄두조차 내지 못 했다. 그저 조금씩 멀어져가는 김통정의 뒷모습만 닭 쫓던 개가 된 듯 바라만 볼 뿐이었다.

“이젠 좀 가거라, 우리 주군께선 네놈들 아니더라도 바쁜 몸이니라!”

창끝이 사방에서 밀려들어오려고 할 때, 지슬은 갑자기 몸을 비틀었다. 그가 꽉 쥐고 있던 칼이 손에서 떨어져 나왔다. 바람을 가르며 군사들 사이를 비껴나가며 닿은 곳은 다름 아닌, 김통정의 어깨였다. 완전히 꽂힌 건 아니었지만 스친 건 확실했다. 우리를 둘러싼 군사들은 갑자기 돌이 된 듯 멈추었고, 김통정도 마찬가지였다. 칼은 바닥에 힘없이 널브러졌지만, 주변의 시끄러운 소리들을 잠재우기에는 충분했다.

저 너머에서 김통정을 맞이할 군사들의 눈빛도 우리 쪽으로 향하였다. 아니, 주변의 모든 시선을 우리가 하나로 모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히려 움직임을 보인 건, 사방에 숨어서 화살을 쏘아대던 궁수들이었다. 그들은 활시위를 바짝 당긴 채, 조금씩 숲속에서 한 발자국씩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해봐야 열 명 남짓이었지만, 그들이 쓰러뜨린 자들만 해도 수십 명은 훌쩍 넘었다. 그중 한 명이 정확히 내 머리로 화살촉을 겨누었다.

“감히 이놈들이!”

화살이 점점 내 눈앞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를 분명 알았지만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저 화살이 내 몸을 관통해도 여기서 또다시 일어날 것. 그러나 내 예상은 금방 깨지고 말았다. 뒤에서 달려 나온 누군가가 칼로 화살을 쳐낸 것. 그리 누군가가 다름아닌 김통정이었다. 다시 한 번 주변의 시선이 집중되는 순간이었다. 나도 그렇고 지슬도 역시 그 자리에서 몸이 딱 굳고 말았다.

“아무래도 두 사람 모두 보내선 아니되겠군.”

김통정의 한마디에 나와 지슬을 감싼 건 창끝이 아니라 오랏줄이었다. 팔다리 심지어 목까지 숨만 겨우 내쉴 정도로 꽉 묶어두었다. 성주청까지 그대로 압송되었다. 두 사람뿐만 아니라 대장군도 같은 모양새였고 다른 사람들은 조금 전까지 있던 그 자리에 묻지도 못 한 채 그대로 둬야만 했다. 대신 우리 등 뒤로 까마귀들의 울음이 하늘을 찌를 뿐이었다.

다시 돌아온 성주청, 여기에 도착하자마자 그대로 아주 좁은 옥에 나와 지슬, 대장군까지 세 사람이 들어가고 말았다. 우린 서로 밤새도록 어떤 말도 나누지 않았다. 그저 점점 조여오는 듯한 줄에 겨우겨우 숨만 쉬었을 뿐. 제대로 눕지도 못 한 채, 점점 깊어가는 밤의 적막과 서서히 붉게 물드는 일출의 빛을 반쯤 뜬눈으로 보았다. 하루가 지나 이틀, 사나흘이 흐르도록 물 한 모금조차 제대로 먹지도 못 한 채 같은 자세에서 같은 바깥 풍경만 보았다. 간간이 관리하는 군사들이 우리들의 상태를 살펴보았으나, 그 역시 어떤 말도 걸지 않고 창대로 옆구리를 몇 번 찔러보고는 돌아가곤 했다. 메말라가는 입술, 점점 감각을 잃어가는 팔다리, 코끝을 스치는 썩은 내보다 더 내 숨통을 조이는 건. 좀처럼 깨지지 않은 침묵의 연속이었다. 거기다가 서로 머리카락 한 올 만큼 가까이 붙어 있었지만 시선조차도 나누지 않은 지금의 상태였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단 말인가, 도대체 이토록 허무하게 무너질 것이라면 대장군 저자는 선량한 탐라 백성들의 마음을 모았단 말인지. 묻고 싶은 말들이 무수했지만 내 입 밖으로는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다시 침묵으로 며칠밤을 더 지새웠고,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침조차도 말라버렸을 때. 옥문이 갑자기 열렸다. 군사들은 바가지에 담아온 누렇게 뜬 물을 얼굴로 뿌렸다. 이마저도 우리 세 사람은 본능적으로 혓바닥을 내밀어 한 방울이라도 적시려고 했다. 군사들은 별다른 말없이 바깥으로 끌어냈다. 휘청거리면서 계속 주저앉는 다리를 억지로 일으키며 어디론가 이끌었다.

금세 성주청 바깥으로 나왔다. 그 사이 잠깐잠깐 살펴봤는데, 성안에 백성들의 모습은 확연하게 줄어들어 있었다. 간간이 노인과 갓난아이까지는 보였지만. 좀처럼 젊은 사람들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곳곳에 빈집들만 가득했고 오히려 군사들이 더 많아 보였다. 어쩌다가 성안이 휑했는지 그 의문점은, 거의 반나절을 걸어서 도착한 이곳에서 서서히 풀려나갔다.

지슬의 고향 마을과 가까운 탐라 서쪽이었는데. 바닷가가 아니라 산과 조금은 가까운 지대였다. 여느 산보다 가파른 흙길을 오르고 또 오르다보니, 그 속에 너른 땅과 한쪽으로 밀어놓은 흙더미가 보였다. 그와 함께 온몸에 흙투성이인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 한 채, 각자 흙과 돌을 나르고 있었고 뒤에서 군사 몇몇이 지키는 중이었다.

“주군께서 네놈들의 혼까지 불사를 충정심의 기회를 주셨노라. 여기서는 허튼 수작은 조금이라도 보여선 안 될 것이야!”

팔다리, 목까지 꽉 조였던 오랏줄에서 완전히 풀려났다. 대신 발길질 한 번에 먼저 움직이고 있는 대열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이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낯선 사람이 건네주는 돌덩이를 받고 다른 사람에게 건네주었다. 지슬과 대장군은 나보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서는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따로 기구가 주어진 건 아니었다, 오로지 맨손뿐이었다. 거기서 이따금 괴성을 지르며 쓰러지면, 군사들의 가차 없는 발길질이 이어졌다.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대신 채우면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다시 흙더미는 높아만 갔다.

“빨리 움직여! 빨리, 빨리!”

내 뒤로 군사 한 명이 다가왔다. 느닷없이 채찍으로 등을 후려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몸을 웅크리자 채찍의 강도는 더 거세였고, 이를 보다 못한 양옆에 있는 사람이 서둘러 일으켜줄 정도였다. 다시 돌덩이를 건네받고 옮기기까지 반복했다.

해가 저물어도 군사들은 주변에 횃불을 피우면서까지 사람들에게 더 빠르게 움직이라고 채근했다. 여기서 누구도 입 밖으로 한마디 내뱉지 못하였다. 얼굴과 팔, 다리, 온몸 구석구석 상처로 가득했고 그중엔 그 상처가 시커멓게 변하는데도 아프다는 표현조차 못 하였다. 군사들이 원하는 만큼 움직이지 않으면 가치없이 채찍과 몽둥이, 발길질이 들어왔으니까.

밤이 더욱더 깊어지고 바람까지도 거세게 불어보자, 그제야 작업을 멈출 수 있었다. 딱히 따로 누울 처소가 마련된 건 아니었다. 여태까지 있었던 이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군사들이 어디선가 들고 온 바가지 몇 개를 앞에 던져놓으면. 하루 중 가장 치열하게 달려들었다. 그 바가지 속에는 먹을거리와 마실 물이 조금 있었다. 난 그조차도 움직일 힘이 남아나지 않아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먹읍써.”

눈을 겨우 붙이려고 할 때, 옆 사람이 어깨를 툭 건드렸다. 손끝에 묻은 감자를 입으로 건네주었다. 다른 손에도 감자를 그저 한가득 묻혀 놓을 뿐이었다. 나도 모르게 입이 저절로 향하였다. 입안에는 돌과 흙이 더 많이 씹혔지만 그 감자, 어찌나 달던지. 메마른 줄만 알았던 두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나왔다. 입안에서 조금씩 사라지는 감자를 천천히 우물거리며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도 입술을 조금 적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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