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미 상원 외교위원회의 '이라크 추가파병 반대 결의안'에서 공화당 의원으로는 유일하게 찬성표를 던진 척 헤이글 상원의원(네브라스카주).

그가 공화당 대선후보 경쟁에 도전장을 내밀 것을 저울질하면서 2008년 미국 대선이 '이라크전을 반대하는 공화당 후보와 찬성했던 민주당 후보의 대결'이라는 기이한 구도가 될 수도 있다는 흥미로운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끈다.

미국의 정치전문 인터넷신문 <카운터펀치>는 29일 공화당내 지지도 1%에 그치고 있는 헤이글 의원이 당내 대선후보 경선과 본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소개했다.

당내 경선에서 승산이 있는 첫 번째 이유는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공화당원들이 점차 늘어간다는 사실.

이같은 경향은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과 함께 당내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이라크 증파를 찬성하면서 정치적으로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과 맞물려 헤이글에 대한 지지도를 높일 수 있다.

물론 전쟁중인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금기시 하는 미국 보수주의자들에게 점수를 잃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최대 보수단체인 미국보수연합(American Conservative Union)이 매기고 있는 정치인 '보수성 지수'에서 헤이글은 매케인을 16%포인트 앞서는 등 공화당원들이 원하는 '보수성'에 있어서도 뒤지지 않는 경력을 갖고 있어 그같은 비판은 설 자리를 잃을 공산이 크다.

"공화당원들이 영리하다면…"

그에 더해 조지 부시 현 대통령의 전쟁정책 실책으로부터 공화당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후보라는 논리도 공화당원들의 표심을 돌릴 요소가 될 수 있다.

게다가 '해외의 분쟁'에 연루되는 것을 꺼려하는 공화당원들의 고립주의 전통이 되살아난다면 공화당의 '틈새시장'을 공략할 수도 있다는 게 이 신문의 분석이다. 특히 헤이글이 온건파인 마이클 블룸버그 현 뉴욕시장과 러닝메이트로 출마할 경우 다양한 지지층을 흡수할 수도 있다.

헤이글 의원이 본선에 나가고 선거 쟁점이 이라크전으로 모아질 경우 전쟁을 반대하는 중도적인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나아가 민주당의 유력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 맞붙을 경우에는 전쟁을 비판하는 민주당원들의 표까지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클린턴 의원은 이라크전 개전에 찬성한 이후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며 민주당원들의 민심을 잃어 왔다.

이같은 여론을 반영하듯 의 칼럼니스트인 로버트 쉬어는 최근 한 웹사이트에 "대선이 이라크 전쟁에 대해 입장을 바꿀 용기가 없는 민주당 주자와 헤이글의 대결로 압축될 경우 나는 헤이글을 찍을 것이다. 힐러리가 이라크 점령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밝힐 수 없고 밝히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다수 유권자들에 대한 모독이다"고 비난했다.

'반전 대선 후보'가 되기까지

헤이글 의원의 이라크전 비판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지난 8월 이라크 주둔 미군을 6개월 내에 철수시켜야 한다며 이라크전은 베트남전 이후 최악의 외교적 실패라고 주장했다.

2005년 8월에도 그는 이라크가 "점점 더 베트남과 닮아간다"며 "어떻게 이라크에서 빠져나와야 할지를 궁리해야 한다. 우리의 개입으로 중동은 더 불안해졌고 주둔기간을 늘릴수록 혼란은 더 심해진다"고 주장했다.

헤이글의 이같은 반전 주장은 이념이 아닌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동생 톰 헤이글과 함께 1967~68년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그는 동생과 함께 두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전쟁의 참상을 체득했다.

베트남에서 돌아온 후에도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은 옳았다고 믿던 헤이글은 그러나 정신적인 충격을 이기지 못해 네브라스카 주 오마하의 변두리 작은 집에 살며 일체의 사회활동을 접었다.

그러면서 인도차이나·프랑스·베트남의 역사와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공부를 시작한 그는 마침내 베트남전에 대한 미국 정부의 거짓말을 깨닫게 됐다.

특히 베트남전의 전선을 확장했던 린든 존슨 대통령의 태도에 환멸을 느낀 그는 최근 지역구 신문 오마하월드헤럴드에 "베트남으로 젊은이들을 보내면서 꼭 해야 했던 질문을 하지 않았다. 우리가 당선시킨 정치인들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라는. 우리는 베트남전 11년동안 5만8000명의 젊은이들을 잃었다. 나는 이라크에서만은 그런 일이 되풀이돼서는 안 되길 원한다"고 말했다.

미 보훈청 부청장으로 연방정부 공직을 시작한 헤이글은 그 후에도 각종 보훈 관련 조직에서 활약하며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사는 이들을 도왔고 그같은 이력을 쌓은 후 1996년 상원의원이 됐다.

그렇다고 해서 헤이글 의원이 시종일관 반전 입장만을 보인 것은 아니다. 공직생활에서 군과 관련한 업무에 종사했던 그는 그 누구보다 충실한 미 국방부의 지지자였고, 상원의회에서도 가장 친(親) 국방부적인 의정활동을 편 의원으로 비판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헤이글은 자신의 경험에 비춰 볼 때 잘못이 명백한 공화당 대통령의 전쟁 정책에 반기를 치켜듦으로써 미국 반전세력의 희망이 됐고 당의 경계를 뛰어넘어 '반전 대선 후보'라는 입지를 만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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