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차례상은 우리 사회 여론의 각축장이다. ‘민족의 대이동’으로 전국의 민심이 소통하고 섞이는 자리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전국 각지로 흩어졌던 가족들이 만나 풀어내는 각양각색의 삶과 가치가 교통하면서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민심의 용광로 구실을 한다. 그래서 설과 추석 명절은 늘 주요 현안과 정국을 가름하는 분수령을 이뤘다. 과연 이번 설 ‘대화상’의 주제는 무엇인가. 서울과 지방, 지방 대 지방의 이해를 가르며 우리 사회를 논쟁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세종시가 당연 첫손에 꼽힌다. 세종시 문제의 3대 쟁점을 짚어봤다.

지방분권은 시대적 흐름
■ 균형발전이냐, 행정효율이냐

세종시 논쟁은 ‘가치’의 충돌이 본질이다. 당초 행정중심도시 세종시를 추진한 서울·지방 간 ‘균형발전’의 가치와 빠른 정책 결정을 위해선 정부 부처를 집중해야 한다는 ‘행정효율’론의 충돌이다. 분산과 집중의 정반대 가치가 ‘국익’의 프리즘에서 경쟁 중인 것이다.

행정효율론은 정부 부처가 모여 있어야 효율적이란 기술적 효율론이 출발점이다. 이는 “지금 세계가 경제전쟁인데 경제부처가 전부 내려가 있으면 서울에서 대통령 혼자 어떻게 일하느냐”(이명박 대통령)는 ‘국가 경쟁력’ 주장으로 연결된다.

국가균형발전론은 행정부처 이전과 11개 광역지자체에 혁신도시를 건설하는 인위적 기능·재원 분산이 논리적 기반이다. 정부의 선도적 분산을 통해 자연스레 기업·대학·연구소 등 우리 사회 자원의 분산을 유도한다는 개념이다.

물론 각각에 대해선 반론이 제기된다. 행정효율론의 경우 과연 정책 결정의 속도가 공간적 거리로만 좌우되느냐는 반론이 크다. 지금도 과천과 광화문으로 나뉘어 있고, 이 중 과천의 7개를 이전하는 것이란 이유다. 시간적 거리도 기존 과천에 비해 10분 차이에 불과하다고 반문한다. 오히려 대전의 산하 외청들까지 세종시에 모으면 행정효율성이 커질 것이란 분석도 내놓는다. 또 수정안에는 심각한 수도권 과밀화 문제를 해소할 방안이 없다.

원안에 대해선 정부 부처가 가더라도 균형발전의 효과는 없고, 오히려 ‘유령도시’가 될 것이란 반박이 제기된다. 바로 “이제는 지역별로 똑같이 나눠 가지는 균형발전이 아니라, 지역마다 특성화된 발전을 시켜야 한다”(이 대통령)는 지적이다. 원안은 관 주도의 낡은 과거식 패러다임일 뿐이란 것이다. 그래서 행정도시보다는 기업·대학도시가 대안이란 주장이다.

문제는 이로 인한 ‘서울 대 지방’의 이해관계 충돌이다. 과거 ‘수도 공동화’론 등 서울·수도권의 정부 부처를 지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서울·수도권의 이해를 넘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이 수도권식 경쟁력의 논리인지, 지역 불균형 해소를 통한 공동체의 진전인지가 선택의 잣대다.


혁신·기업도시 존폐 기로
■ 인센티브인가, 특혜인가

정부는 수정안의 원형지 개발 등 인센티브(유인책)에 대해 자족기능 강화를 위해 필연적이라고 주장한다. 기존 세종시의 입지가 기업 유치에 적당하지 않다는 설명도 따라붙는다. 하지만 이로 인해 역차별 논란 등 특혜 시비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행정기능이란 근본적 유인책을 빼면서 더 강력한 유인책이 불가피해진 데 따른 ‘특혜 돌려막기’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다.

실제 인센티브 논란의 핵심은 ‘땅값’이다. 세종시 입주 예정 대기업·대학의 토지 공급가는 원형지 개발의 경우 평당(3.3㎡) 36만~40만원 선이다. 이는 인근 산업단지 등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국회 예산정책처 추산에 따르면 세종시 원형지 조성원가(평당 61만9000원)보다 40% 가까이 낮은 수준이다. 이 때문에 정부로선 5500여억원의 재원이 더 필요하게 됐고, 이는 그만큼 삼성·한화 등 입주 대기업들의 특혜로 이어지게 됐다.

문제는 이로 인한 지방의 ‘역차별’ 피해의식과 국토 난개발 우려다. 실제 세종시 인근 영·호남, 충청의 혁신·기업도시는 사실상 존폐의 기로에 섰다. 지방대학 공동화에 대한 우려도 크다. 이 때문에 정부는 이들 혁신도시에 대해서도 원형지 공급 허용 방침을 밝혔지만, 대부분 부지 개발이 끝나 이를 적용할 대상지역은 극히 한정된 형편이다. 정부 부처 이전 백지화를 위해 각종 특혜로 기업을 유인하고, 그로 인한 역차별 등 부작용은 또 다른 특혜 나눠주기로 막는 악순환인 셈이다. 또 원형지 개발은 사실상 대기업의 땅장사를 공인한 것이어서 기업의 이윤논리 속에 난개발과 부동산 투기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세종시를 기업의 땅 투기 공급기지로 만들고 있다”(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비판은 이 때문이다.

정부의 ‘차질없는 이전’ 다짐에도 불구하고 나타나는 한국가스공사 등 혁신도시 이전 대상 공공기관들의 저항도 여전한 문제점이다. 혁신도시 추진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전 대상 157개 공공기관 중 이전 재원 마련을 위해 기존 자산을 매각한 곳은 단 3곳에 불과하다.


‘신뢰’보다 ‘국익론’ 앞세워
■ 정치적 약속과 백년대계

정치권을 양분한 세종시 수정 논쟁의 정치적 요체는 ‘정치적 약속’의 무게와 정부가 주장하는 ‘백년대계’의 타당성으로 요약된다. 사회적·정치적 합의로 이뤄진 세종시를 정부가 무산시키는 데 따른 정부·여당의 신뢰 훼손 우려가 무겁고, 이를 “국가 백년대계”라는 국익론으로 포장하면서 찬·반 논쟁이 뜨거워진 데 따른 것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원안 추진은) 당의 존립 문제”라는 경고가 ‘약속·신뢰’의 영역이라면, 이 대통령의 “세종시 수정이 개인적으로는 많은 점에서 불리하지만 역사적 소명을 생각하면 해야 한다”는 언급은 이른바 ‘백년대계’의 영역이다.

이는 정부의 세종시 수정이 여론전 형태로 추진되면서 나타난 결과다. 정부가 약속을 깨트려야 하는 부담과 불리한 정치권의 지형을 넘기 위해 외곽 홍보·여론전을 통한 정치적 압박을 선택했고, 그 내용적 수단이 ‘국익론’이란 이야기다. “과거 약속에 정치적 복선이 내재돼 있다면 뒤늦게나마 바로잡는 것이 나라를 생각하는 지도자의 용기”(정운찬 총리)라는 식이다. 이는 국익에 비해 정치적 약속·합의는 작은 것이란 여론의 ‘프레임’을 만들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이에 대해선 정치적 오류이자 오만·독선이란 반론이 따갑다. 이 프레임대로라면 야당은 물론 여당내 친박계까지 원안의 균형발전을 주장하는 축을 국익을 도외시하는 ‘정치꾼’으로 규정한 비난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부 입장에서) 법치와 정치의 연속성에 대한 신뢰 확보가 더 중요한 국익”(명지대 신율 교수)이라는 ‘장기적 국익론’에 대한 요청도 제기된다.

동시에 내용적으로도 ‘행정 집중=국가 백년대계’식의 논리는 지방분권의 시대적 흐름과 맞지 않을뿐더러, ‘또다른 기업도시’ 격인 세종시는 국가 전체 관점에서 중복투자와 자원배분상 비효율의 문제도 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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