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망인과 유배인

조선왕조가 들어서면서 제주도에는 큰 사회적 변화가 일어난다. 그것은 고려의 유신을 비롯하여 정치적 피난민들이 대거 도래하는 사실이다. 이들을 흔히 유망인(流亡人) 또는 유민(流民)이라고 부르고 있다.

제주인의 계보를 살펴보면 고․양․부 세 씨족처럼 이미 고대 때 도래하여 일찍 토착한 씨족들이 있지만 그들은 전체 인구로 보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중세 때도 일부 도래한 씨족들이 있지만 그들도 10여 성에 지나지 않으며 한 두 성을 제외하면 벌족을 이루지도 못하고 있다.

제주인의 주류를 형성한 성씨는 거의가 조선시대 이후에 들어온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들이 들어온 연대를 보면 조선이 개국한 직후인 15세기 초부터 16세기에 걸쳐 대거 입도 하고 있다. 이들이 곧 벌족을 이루고 주류를 형성한 제주인의 입도 조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입도 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새 왕조에 출사(出仕)를 거부한 고려유신을 비롯하여 당쟁이나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었던 사람, 권력과 불의에 반항했던 사람, 관직이나 관료사회에 회의를 느낀 사람, 유배되었다가 그대로 정착해 버린 사람 등 거의가 정치적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유망인과 함께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유배인(流配人)들의 도래라고 할 것이다. 제주도를 유형지(流刑地)로 삼은 것은 따지고 보면 그 시초가 원(元)나라였다고 할 수 있고 명(明)나라와 고려가 그를 답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도배지로 정착시켜 우리나라의 「유형 1번지」로 만든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오고 나서였다고 할 것이다.

조선시대에 제주도에 유배되었던 사람들을 보면 14년 동안 왕위에 있었던 광해군(光海君)을 비롯하여 해원군(海原君․李健)․해안군(海安君)․해평군(海平君)․경선군(慶善君)․경완군(慶完君)․경안군(慶安君)․임창근(臨昌君)․임성군(臨城君)․여천군(驪川君)․은언군(恩彦君)․은신군(恩信君)․이명혁(李明爀)․이하전(李夏銓) 등 왕족과, 민무구(閔無咎)․민무질(閔無疾)․인목대비(仁穆大

이경여(李敬輿)․송시열(宋時烈)․이건명(李健命)․서지수(徐志修)․ 등을 비롯한 재상 대신들이 많았으며, 홍유손(洪裕孫)․김정(金埩)․유희춘(柳希春)․정온(鄭薀)․신명규(申命圭)․송시열(宋時烈)․김진구(金鎭龜)․김춘택(金春澤)․임징하(任徵夏)․조관빈(趙觀彬)․김성탁(金聖鐸)․조정철(趙貞喆)․김정희(金正喜)․최익현(崔益鉉)․김윤식(金允植) 등 석학과 문인들, 보우(普雨)․정난주(丁蘭珠)․이승훈(李昇薰) 등 종교인들, 그밖에 각 분야에서 한 시대를 움직이던 역사적 인물들이 많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유망인과 유배인 들이 들어오면서 제주문화는 이들에 의해서 형성 발전돼왔다고 할 것이다. 제주인 대부분이 이들 유망인 들의 후예로 그 뼈대 높은 혈통을 이어 받았으며 이들 유배인 들에 의해서 교육을 받고 그 영향을 받아들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 제주도의 문화․사상․정신을 규명하자면 이 같은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그 본질을 캐낼 수 없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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