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안허우꽈?] 62화, 새로운 수장
[펜안허우꽈?] 62화, 새로운 수장
  • 차영민 기자
  • 승인 2018.02.10 2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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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민 역사장편소설
차영민 역사장편소설 <펜안허우꽈>. ⓒ뉴스제주
차영민 역사장편소설 <펜안허우꽈>. ⓒ뉴스제주

감자가 참으로 달았다. 그래서일까, 끼니때마다 우리 앞으로 넘어오는 감자가 점점 줄어들 고 있었다. 이곳에서 늘어나는 건, 사람들 머릿수였다. 숨을 쉬든 그렇지 않든 시간이 흐르는만큼 낯선 얼굴들이 많아진 건 당연한 일상 중 하나로 자리를 잡아갔다. 

내 옆에서 흙과 돌을 건네주던 자들도 벌써 셋이나 바뀌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과 제대로 눈 인사조차 나눌 여유가 없었다. 팔다리와 허리가 쑤셔서 숨이라도 크게 고를까 싶으면 채찍과 발길질이 가차 없이 날아왔다. 그 힘으로 함께 돌을 날랐다면 토성이 벌써 완성되고도 남았을 터인데. 삼별초 군사들은 넘쳐나는 힘을 아끼지 않으려 무진 성의를 드러내주었다. 그 덕에 나도 등허리 쪽 옷가지가 남아나질 않았다. 찢어진 옷 사이로 예리하게 파고드는 찬바람이 어떨 땐 채찍보다 더 아리기도 했다.  

감자가 줄어들수록 사람들은 점차 이성을 잃어갔다. 분명히 눈빛과 몸짓이 거칠어졌지만, 그 분노가 향한 곳은 삼별초 군사들이 아니었다. 함께하는 사람들이었다. 어느 순간부턴가 사람들은 서로 보이지 않은 경계선을 치기 시작했다. 겉으로 웃다가도 곁에 있던 자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안색을 확 바꿔서 그의 주머니에 있던 감자부터 챙기기 바빴다. 게중엔 오히려 일부러 돌멩이를 떨어뜨리게끔 해서 군사들의 발길질을 유도하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바로 내 옆에도 있었다. 나보다는 연배가 조금 높아 보이는 사내였는데. 탐라 동쪽 어디 마을에서 왔노라고 스스로 밝혔다. 분명 몸짓이 날래고 힘도 좋은 자였건만, 유독 내가 건네주는 돌만 손에서 자주 놓치곤 했다. 처음 한두 번은 군사들도 그를 무자비하게 때려잡더니, 괜히 나까지도 끌어들였다. 일부러 힘들게 전달했다는 것. 분명 그런 건 아니라고 항의해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그들의 발길질만 더 부추길 뿐이었다. 오죽했으면 옆에 있는 그를 향해 제발 이러지 말자고 부탁까지 했다. 그러나.…….

“어떵 안 허여.”

도대체 이 대답은 무슨 뜻이란 말인가. 최소한 이후에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니 그가 내게 전혀 협력할 의향은 없다는 걸 알았다. 도저히 이대로는 참아낼 기력조차 끌어올릴 수 없었다. 결국 난 바닥에 드러눕고야 말았다. 놀란 그가 얼른 일어나라고 다그쳤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우리를 지켜보던 군사들이 다가오더니 역시나 발길질부터 쏟아 부었다. 채찍들도 계속 휘둘렀지만 이것도 계속 맞다보니, 숨을 못 쉴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점점 얼굴이 붉어지는 건, 군사들이었다.

“장군께서 네놈은 특별히 대해주라 일렀거늘. 어찌 이리 방종할 수 있단 말이냐!”

그중 군사 한 명이 눈에 불을 피웠다. 그가 가장 나를 많이 찾아왔고 그만큼 온몸 구석구석 흔적이 역력했다. 그래서였을까, 그가 아무리 나를 밟아도 감각이 무뎠다. 물론 이 순간만큼은 쉽사리 멈추지는 않을 기미였다. 내 양옆에 있는 자들이 괜히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는데. 저 멀리 토성 쪽에서 큰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멈춰있는지, 빨리 해결하라는 내용이었다. 군사들을 나를 빙 둘러싸더니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들 중 한 명이 손에는 단검이 들려 있었다. 

“진작 가줬어야 할 몸인데, 장군 때문에 기다려준 거요.”

어찌 보면 그들은 입으로는 친절한 구석이 있었다. 오히려 그 덕분에 난 아주 짧게 드러난 빈틈을 발견하였다. 내 가슴팍으로 단검의 끝이 재빠르게 내려올 때, 주먹에 꽉 쥐고 있던 흙을 흩뿌렸다. 순식간이었지만, 그 효과는 생각보다 컸다. 단검은 내 가슴팍 위로 힘 없이 떨어졌고. 군사는 악다구니를 쓰며 뒤로 나동그라졌다. 다른 군사들도 순간 멈칫하고 있을 때, 단검을 얼른 손에 쥐였다. 얼굴 옆에 있는 다른 군사의 발목을 단검으로 그었다. 이를 꽉 깨물고, 얼른 몸을 일으키자마자 가장 많이 발길질 했단 그에게 달려들었다. 먼저 머리로 그의 얼굴을 들이받았고, 단검으로 옆구리를 찔렀다. 분명 온몸에 힘이 다 빠진 줄 알았건만, 이 상황에서는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새로운 힘이 솟아났다. 순식간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모여들었다. 정작 나를 둘러쌌던 군사들이 자기 자리에서 머뭇거리더니, 각자 무기를 꺼내들었다. 

“당장 그 칼, 내려놓지 못 할까!”

분명 내게 소리를 질렀지만, 오히려 손을 떨고 있었다. 그건 비단 내 손에 들린 단검 때문만은 아니었다. 주변을 에워싼 공기가 점점 무거워지더니, 분명 조금 전까지 한 줄로 서서 흙과 돌을 나르고 있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멀리 토성 쪽에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고, 빨리 움직이라는 목소리는 어느새 살려달라는 괴성으로 바뀌었다. 물론 이곳에 함께 있던 군사들도 가만히 보고만 있진 않았다. 각자 무기를 꺼내들고 위협하면서 당장 멈추라고 했으나. 주변을 슬쩍만 살펴보니, 지금 여기에 있는 군사들의 숫자만으로 그리 위협이 되진 않았다. 탐라 사람들에게는 칼과 창, 화살은 없었지만. 각자 묵직한 돌들은 한두 개씩은 쥐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혼까지도 빼놓은 물건이었지만. 지금은 여기까지 끌고 온 군사들과 맞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로 변해 있었다.

“뭣들 햄시, 고마이 배리기만 헐 거라?”

탐라 사람 중 목소리를 크게 틔웠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탐라 사람들은 손에 있던 돌을 내던지거나, 돌을 꽉 쥐고 온몸으로 돌진하였다. 물론 군사들도 그에 맞섰고 탐라 사람들이 우수수 쓰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걸로는 탐라 사람들을 멈추게 할 순 없었다. 오히려 쓰러진 사람들에 더 흥분하여 앞뒤 가릴 것 없이 더 거세게 달려드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내 곁에 있던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바로 내 옆에서 돌을 설렁설렁 받았던 그자가 제일 앞장섰고, 내 손에 들린 단검을 낚아채더니. 조금 전에 옆구리를 찔렀던 군사의 목을 순식간에 베고 말았다. 다른 군사들이 그에게 달려들었지만, 너무나도 가볍게 걷어차는 게 아니었던가. 그의 모습에 탐라 사람들은 더욱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어느새 큰 나무 한 그루를 경계로 삼별초와 탐라 사람들이 따로 나뉘었다. 모아두고 살펴보니 확실히, 우리를 지키던 삼별초의 수가 적었다. 잠시 이어진 난투에 온몸이 피투성인 건 물론이고 모두 지쳐 있었다. 탐라 쪽도 마찬가지였지만, 그가 자연스럽게 앞장서서 수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삼별초 군사들에게 당장 여기서 내려가기를 요구하였다.

“이 사태를 어찌 감당하려고 그러시나?”

군사들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왔다. 토성에서 직접 군사들과 사람들을 통솔하던 자였다. 탐라 사람들은 여기서 당장 저놈들부터 밟아버리자고 했으나, 우리의 수장 노릇을 자처하던 그가 고개를 내저었다. 대신 단검을 그들에게 내비치며, 당장 내려가라고 소리쳤다. 잠시 머뭇거리던 군사들은 정말 물러나기 시작했다. 탐라 사람들은 가파른 언덕 아래로 삼별초 군사들이 내려가고 성안을 향해 천천히 사라지는 모습까지 직접 보고서야 일제히 환호하였다. 

“영 이실 시간이 어수다!”

그것도 잠시, 수장을 자처하는 자가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그리고는 다시 토성을 쌓아야한다고 얘기했다. 탐라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자 다시 사람들에게 말했다. 곧 삼별초가 본진 병력과 함께 여기로 올 터이니, 그동안 최대한 빨리 이곳을 누구도 못 들어올 요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그렇다, 분명 김통정은 이곳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몇몇 군사들이 우리 앞에서 싸늘하게 식어가지 않았던가. 아예 여기서 멀리 도망가자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빠르게 도망친다손 치더라도 기마를 따돌리긴 만무했다. 당장 어디로 갈 곳도 마땅하지 않은 터. 그 덕분인가, 수장을 자처하던 그의 말에 상당한 설득력이 담겨 있었다. 사람들은 다시 줄을 맞춰 서기 시작했다.

그중 몇몇은 입구와 몇몇 중요한 지점에 보초를 서기도 했다. 난 줄을 선 사람들 중 하나였다. 다시 같은 자리에서 돌과 흙을 옮기기 시작했다. 분명한 건, 사람들의 움직임이 아주 빨라졌다는 것. 누가 뒤에서 채근하지 않아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분명 며칠 정도는 해야 쌓을 양이 반나절도 안 되어 올라갈 정도였다. 나도 고픈 배를 움켜잡고 부지런히 돌을 옮기고 있었는데, 옆으로 그가 다가왔다. (계속)

소설가 차영민. ⓒ뉴스제주
소설가 차영민. ⓒ뉴스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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