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전시실서 3일까지... 켄싱턴 호텔서 6월 1일부터 30일까지 전시

밝은 미소를 보이는 정명화 작가.
밝은 미소를 보이는 정명화 작가.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아도 가야 하는 곳이 집이라고 생각한다. 집이라는 것 자체가 내가 꿈꾸는 어떠한 것,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이런 생각..."

햇빛이 따뜻한 4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이미 손꼽을 수 없을 정도의 전시회를 한 정명화 작가를 만나러 서귀포시에 위치한 이중섭 창작 스튜디오로 향했다. 26세에 결혼을 해, 이미 22살의 아들을 둔 엄마이자,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라는 세상의 틀을 깨부수고 오로지 작품에만 매진한 정명화 작가. 그녀를 만났다. 그녀가 들려주는 자신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경험담,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 이라는 전시회 주제 등 다양한 생각들을 들어봤다.

다음은 작가와의 일문일답

기자 : 작품이 너무 따뜻하다. 오랜만에 전시를 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작가 : 원래 작품 쭉 해왔었는데 둘째가 띠동갑으로 툭 떨어져 나오는 바람에 작품을 끊다시피 하고 다시 작품을 했다.
애 덕분에 제주도에 오게 되었는데 잘 맞았다. 제주도 오기 전에도 둥지, 집 주제로 작업을 했었다. 물론 도시에도 나무도 있고 집도 있고 그런데 내가 자연의 빛을 제대로 보지 못했구나. 도시에 있는 것들은 늘 그 위치에 있는데 자연은 시시각각 변해가는 매력이 있다.

기자 : 제주에는 정착하실 계획인가?

작가 : 정착은 아니지만 신랑은 광주에서 주말마다 왔다갔다 한다.

기자 : 너무 로맨틱하다.

작가 : 여름되면 로맨틱이 깨질 것 같다. 비행기를 끊기가 어렵다.(웃음) 비행기가 좀 귀하다. 제주도는. 탐라국이다. 전시 할 때도 전라도 광주 사람인데 지인들도 못 오니까 계속 미안하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미안해 하지 말라고 늘 한다

기자 : 작가님은 제주에 어떤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시나?

작가 : 이전에 저는 섬, 제주 이런거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옛날 대학 때 지인이 귤 박물관 연구원으로 있을 때 우리가 모임을 해가지고 왔었는데 처음 제주도에 와보고 색다르다 이런 생각은 했다.
그 친구가 그리는 것도 다르고 그 전까지는 나무도 잘 알고 있고 풀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어느 시점에 나이가 되니까 자연에 눈이 떠지면서 내가 봤던게 정말 풀이 아니고 꽃도 아니구나. 남이 봤던 것을 내가 봤구나. 남이 꽃이라고 명명지었던 것을 내가 본 거다.

기자 : 사실 작가님 작품을 한 번 둘러봤다. 되게 마음이 편안하다. 제주도 같다. 작가님 성품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작가 : 저의 섬유작품은 한 땀 한 땀 그림을 꿰맨다. 많은 시간에 표현이 되는 거라 나의 성향이 드러나는 것 같다. 사실 그림이란게 그 사람이 반영되긴 하는 것 같다.

기자 : 집에 오는 길이라는 주제가 골목길처럼 사람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소재도 그렇고.

작가 : 우리 어릴 때 보면 뒷동산이 항상 다 있었다. 그 때 그런 곳에 가면 좋은 곳이고 뛰놀기 좋은 곳인데 요즘은 골목길 지나가거나 산에 가면 걱정부터 된다. 무섭다. 실상 산의 느낌이나 골목길 느낌보다는 두려움이 먼저 생긴다.

기자 : 적극적인 성품이신 것 같다. 그러한 성품이 제주에 오게 되신 데 큰 영향을 주신 것 같다.

작가 : 제가 약간 어렸을 때부터 소심하게 컸다.
중간에 낀 형제라 의미 없는 딸이었다. 소심하고 말도 못하고 자식 중에 제일 안 예쁘다. 못난이라 했다. 오빠랑 언니랑 여동생이 예쁘다. 내 눈에는 예쁘다. 자라면서 달라졌다. 서로 닮아가기도 하고. 그렇게 소심했었는데 크면서 내가 좋아하는 거 뭔가를 해 나가기 시작하면서 좋아하는 일 하게 되면서 용기를 내게 됐다.

기자 : 결혼하셨다고 들었는데 경력 단절없이 바로 이런 훌륭한 전시들을 하신건가?

작가 : 사실 저도 경력 단절자다. 결혼하기 전에 두 군데의 대기업에 원서를 냈다. 한 곳에 합격했는데 못 가게 예비 시어머니가 잡았다. 여기서 공부를 해라 하셨다. 사실 외지로 벗어나는게 두렵기도 했고 사귀고 있는 남자가 고등학교 졸업 후 부모님 몰래 미술을 했는데 그 때 만났던 처음 선생님이다. 바로 지금 내 남편이다.(웃음) 애를 빨리 낳고 공부를 시작해야지 하는 마음에 애를 낳고 18개월부터 대학원을 다니고 15년 정도 강의 나가면서 연구원에도 있고 했다. 그런데 둘째가 생기면서 모든 일을 놨다.

기자 : 그게 참 여성으로서 안타깝다.

작가 : 근데 나는 아이를 놓칠 수 없었다. 아깝거나 두렵진 않았다.

기자 : 새로운 시각이다.

작가 : 내 일은 언제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고 막상 나이가 나는 할 수 있는데 사회에서 나이가 많은 사람은 안 뽑더라. 예술가들은 작품이란게 있다. 취업을 하지 않고도 뭔가를 할 수 있는게 부모님 반대에 의해서 못했다가 몰래 시작한 거지만 잘했다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기자 : 저는 그 메세지가 좋다. 경단녀가 물론 사회적인 문제지만 사회에서 만든 틀 때문에... 여자가 결혼하는 건 축복이다. 그걸 단절이라 표현하는 것도 그렇고 사회적으로 좋은 틀이 마련이 안되니까... 참 악순환인 것 같다.

작가 : 제 주위에도 결혼을 안 하시고 교수님으로 60까지 되셨는데 농으로 이혼을 했더라도 결혼을 해서 애를 하나 낳았어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는 분도 계시고, 40넘어서 결혼 하셨는데 애를 못 가지셨다. 애를 낳는다는 건 사실 시기를 놓치면 더더욱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자 : 저는 그게 아까 말씀하셨던게 와 닿았다. 사회가 경단녀라는 말을 없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한 말이 아직도 사회에 있다는 게 마음이 아프다.

작가 : 미투운동도 마찬가지다. 남자들이 '이젠 여자들이랑은 밥도 안 먹어' 이런다.(웃음) 애한테 혼내 놓으니까 '앞으로 말 안 해' 이런 거랑 뭐가 다르냐. 이렇게 내 아들한테 흉봤다. 내 아들도 남자니까 속상해하더라.(웃음)

기자 : 작품이 한 땀 한 땀 정성이 느껴진다.

작가 : 그 안에 누군가는 내가 하면서 받았던 감정 같이 공감하는 것 같다. 그럴때마다 작업 하기를 잘했다.

작가는 울먹이며 얘기했다. 나는 손을 잡아줬다.

기자 : 사실 '집으로 가는 길' 글자만 봐도 눈물이 난다.

작가 :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아도 가야 하는 곳이 집이라고 생각한다. 집이라는 것 자체가 내가 꿈꾸는 어떠한 것,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제가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에 대한 공부를 더 많이 했다. 인간 대 인간으로 키워야 하니까. 그렇게 하면서 살다 보니까 충돌이 많이 줄기는 했다.

4월의 마지막 날, 월요일임에도 전시회는 북적였다. 이번 전시를 놓쳐도 다음 기회는 있다. 6월 1일부터 30일까지 켄싱턴 호텔에서 전시가 계속된다.

기자 : 인터뷰 감사했다.

작가 : 내가 감사했다. 내가 믿는 신이 인연을 주신 것 같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가는 길에 작가가 과자봉지를 노트북 가방에 넣어주셨다.
인터뷰 도중에도 연신 기자를 위해 물 한 잔을 주셨다. 물이 참 달았다.

한 땀 한 땀 작품을 꿰맨 작가의 섬세함과 따뜻함, 달달한 물 한 잔이 인터뷰가 끝난 후에도 계속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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