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택훈 시인이 '시옷서점' 간판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현택훈 시인이 '시옷서점' 간판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게으르기를 좋아하는 부지런한 시인, 현택훈 시인을 만났다. 제주도 최초로 시집전문서점 '시옷서점'을 내고, 제 1회 4.3 평화문학상을 받은 시인. 최근 <기억에서 들리는 소리는 녹슬지 않는다>라는 산문집을 내기도 했고 <지구 레코드>, <남방 큰 돌고래>를 저술했다.

요즘 시 열풍이 일고 있다. 곳곳마다 시집전문서점이 생겨나고 있고, TV에서도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는 드라마가 방영되기도 했다.

김양희 감독의 <시인의 사랑>이라는 영화가 작년에 개봉했는데, 주인공 양익준의 캐릭터가 바로 현택훈 시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현재 퐁낭작은도서관 사서일을 하며, 일요일 아침마다 '라음문학동인회'를 이끌고 있다. '시인의 사랑'이라는 영화의 캐릭터로 유명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제주에서 꾸준히 작업을 해 온 시인이다.

좋은 시는 좋은 글이라는 작가. 좋은 시란 어떤 것일까? 좋은 시에 관해 현택훈 시인과 다양한 얘기를 나눴다.

#요즘 시 열풍이 일고 있는데, 지난해 시집전문서점(시옷서점)을 제주에 최초로 열었다. 시가 관심을 받고 있는 이유, 무엇이라 생각하나.

'시옷서점'은 작년 만우절에 열어 장사는 여전히 되지 않고 있고, (웃음)하루에 한 분 정도 오신다. 저녁(7~11시)에만 연다. 낮에 열어 손님이 안 오면 큰일나니까. 생계유지 때문에 다른 일을 하면서 서점하고 있다.
시가 뜨는 이유는 많이 고민했는데 시적인 것 때문에 사람들이 시를 좋아하는 것 같다. 시에 관심없는 사람도 시적인 것은 좋아한다. 시적인 장면, 음악, 영화를 좋아한다. 그리고 또 우리나라 시인에겐 관대한 것 같다. 시라면 배려해주는 문화가 있다.

#시인으로 등단하기 전, 다른 직업을 가졌다고 들었다.

학원 국어 강사, 공장(자동차부품, 국수공장), 방과후 초등학교 강사, 직업군인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는데 시인을 원래 동경했다. 그래서 28살에 늦깍이로 대학에 갔다. 우송정보대, 대전에 있는 문예창작과 산소학번(2002)이었다.(웃음)
문학을 너무 공부하고 싶어했는데 시, 소설쓰는 게 학과 생활 전부라 행복했다. 그래서 고향 귀향을 포기하고 주변의 권유로 편입했다. 그 때 학점이 4.5 만점에 4.4였다. 같은 계열인 국문과로 편입하려다가 사범대에 합격해서 목원대학교 사범대에 다니게 됐다. 대학원 석사과정은 제주대학교에서 밟았다. 교내문학상도 해마다 받았다. 같은 장르는 다음 해에 지원이 안 되니까 한 해마다 시와 소설을 다르게 번갈아가면서 출품했다.

#미투운동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또 이 시국에서 좋은 시란 어떤 시라고 생각하는지.

악용했다. 예술가니까, '시인이니까 괜찮을거야'라고. "시를 쓰는 사람이니까 평범한 사람이 아니야. 이성을 함부로 대해도 돼" 이런식으로 생각한거다. 실제로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 선배 문인들도 그랬고. 6, 70년대 시인에서는 최근에 고은 시인이 대표적인거다. 그 비슷한 연배들은, 시대가 흐르면서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작품에서 여성을 함부로 대하거나 성적인 것들이 많았다. 또 하나는 높은 문단의 권력을 이용해 지망생들을 함부로 한거다. 문창과에 진학하려면 실기 및 수상이 중요하기 때문에 첨삭 문화가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좋은 대학에 가고 싶은 마음을 악용한 거다.
좋은 시라... 시는 예술이기 때문에 주관성이 강하고, 조건이나 종류는 다양하겠지만 좋은 시는 일단 좋은 글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라는 장르적 특징이 있는데, 좋은 글이 좋은 시일 수 있다. 또한 시는 유행가란 생각이 많이 든다. 그 시대에 맞는 시가 있다. 광주 민주화 운동 때 '사평역에서', 산업화 시대엔 '농무'라는 시처럼. 시대를 반영한 시가 최고의 시라 생각한다. 사람의 얘기를. 그렇다고 민중시처럼 선동적이거나 그런 것 보다는, 목적을 달성하려면 감동으로 해서 감동으로 끝나는 시. 그래야 독자들이 감동을 받고 시대적 문제가 있구나 한다.

#일요일 아침마다 문학모임(라음) 활동이 쉽지는 않았을텐데.

서울 중앙문단이 중심이 돼서 행정도 서울이 중심이기 때문에 불리한 입장이 있다. 인맥작용이 되기 때문이다. 다른 예술도 마찬가지지만 시는 발표 기회가 많아야 한다. 문예지에. 그렇게 발표하려면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알음알음으로 좋은 문예지에 발표하고 싶어도... 사실 시 잘 쓰는 사람 정말 많다. 다 열심히 읽고 열심히 쓰니까. 근데 잘 알려지지 못하지. 지역 특수성(제주도)을 활용해서 쓰는 건 장점이다.
'라음'같은 경우는, 원래는 '다층'이라는 동인에서 지내다가 나와서 '고팡'이라는 동인을 새로 만들어 활동했다. '고팡'은 제주어로 곡식 담아두는 시설을 말하는데, 그 '고팡'이라는 어감이 좋았다. 헌데 날이 갈수록 계속 고팡처럼 창고 속에 숨어서, 어두운 곳에서 한다는 생각이 들어(웃음) 이름을 (라음으로)바꿨다. 실제로 시간이 흐르니까 인원도 조금 바뀌게 되고... 라음이란 뜻은 도레미파솔라의 '라(계 이름)'에 그늘 '음(陰)'자를 썼다. 그늘에서 '라'를 노래하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건, 약자가 있는 곳에서 희망을 노래하자는 생각에서였다. 우리가 밝은 곳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게 아니라, 소외된 자와 연대해서 시를 쓰는 걸 추구하자 생각해서 지은 이름이다. '동인'이란 말의 뜻도 같을 동(同) 사람 인(人)이다. 그러니 시적 지향점이 같은 사람들의 모임인 것이다.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 상처받은 사람들, 멋있는 지역사회를 위해 활동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여긴다.

현택훈 시인은 라음동인회를 일주일에 1번, 일요일 10시에 이끌고 있다.
현택훈 시인은 라음동인회를 일주일에 1번, 일요일 10시에 이끌고 있다.

#4.3 시는 어떻게 쓰고 있나.
4.3시를 늘 고민한다. 세 번째 시집에선 반 이상을 4.3시로 짓고 싶다. 올해 낼건데 가제가 '난 아무곳에도 가지 않아요'다. 바뀔 수도 있는데, 이 시 주제를 이렇게 잡은 이유는 처음에 4.3시는 증언이나 고발이 많아서 다큐멘터리(리얼리티)를 많이 봤다. 4.3시 쓴 기간이 초기, 중기, 후기 할 것 없이 아무때나 썼다. 그러다가 서정성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쓴 '곤을동' 시(詩)도 증언 위에 서정이 덮어진 시다. 앞으로의 4.3시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생각해 낸 게 있다. 제목의 뜻에 '4.3사건은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제주도는 아무 곳에도 가지 않고 그대로 있다'는 의미를 담아내고 싶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 하지만, '몇십 년 전 사람들이 살았던 곳에, 제주란 공간은 그대로이고, 사람만 바뀌었을 뿐' 이런 의미를 담아내고 싶다. 4.3의 아픔을 현재의 시점으로 노래하고 싶다.

#요즘에도 시는 현대사회에 많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이미지에 대한 저항이 있다. 시는 이미지에 저항한다. 미래파도 저항 때문 아닌가. 기존의 저항을 뛰어넘기 위해서 새롭게 이미지를 해왔기 때문에 시는 다른 장르와 달리 이미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시는 정치에 대해서도 저항한다. 특별히 새롭게 저항하는 시가 다시 각광받고 잇는데, 저항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시라는 게 세대가 변하면서 시를 쓰는 방식도 변했다. 하상욱 시인처럼 SNS시인들도 늘어나고 있고, 콘텐츠가 조금씩 달라져 가고 있다. 하상욱 시인 같은 경우도 순수시에 대한 저항이다. 대중들은 싫어하는데, 근엄하게 순수시만 지향하고. 그런 거에 대한 저항으로 하상욱 시인이 등장한 거라 생각한다.

#본인의 시 가운데 가장 아끼는 건.
여행길이라는 시가 있는데 검색하면 나올거다. 이 시에 나오는 분 성함이 '아부 압둘라 무함마드 븐 압둘라 무함마드 븐 이브라힘 알 라와티(줄여서 이븐바투타)'이다. 아랍 출신의 여행가인데, 그 분 여행가의 위인전을 보게 됐다. 초등학생을 위한 전기문이었는데, 거기서 이븐바투타의 본명이 나온다. 본명이 긴 이유가 아버지 이름, 아버지의 아버지 이름, 아버지의 할아버지까지.
이건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이를테면 '병(甁, bottle)이란 말에는 수많은 문화와 자연과 다양한 뜻이 이름으로 담겨있구나'를 느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 생각이 들어 시에서 은유로 돛단배의 긴 이름을 지었다. 이렇게 시를 써 나갔다.

다음은 현택훈 시인의 시 '여행길'의 전문.

터번을 쓴 남자의 이름은
아부 압둘라 무함마드 븐 압둘라 무함마드 븐 이브라힘 알 라와티
짧게는 이븐바투타

손가락으로 창문을 여닫는 관악기의 이름은
처마 아래 볼 빨간 아이가 호호 불면 분홍색 바람 꽃잎 골목길 가득 흩날리는 악기
짧게는 피리

눈동자를 끔뻑이는 지팡이의 이름은
그림자에 의지해 시간이 흩날려 쌓인 사막을 건너며 지워져버릴 길을 만드는 오아시스
짧게는 낙타

하얗고 큰 그리움을 올리는 배의 이름은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얇고 부드러우나 때때로 구겨지는 푸른 비단을 항해하는 여행
짧게는 돛단배

사라진 별의 반짝임을 쓰는 마음의 이름은
아잔타 석굴의 먼지벌레가 두고 온 공간에게 쓰는 편지
짧게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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