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구속영장 기각..."증거 능력 인정 어려워"
혐의 입증 '난항'...장기 미제사건 다시 안개속

‘제주 어린이집 보육교사 살인사건’ 피의자가 결국 석방되면서 혐의 입증에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할 당시만 해도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였으나 법원이 이를 기각하면서 부실수사 논란이 재점화 될 전망이다.

제주지방법원 양태경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8일 살인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 박모(49)씨에 대한 영장 실질심사를 진행한 끝에 이날 오후 11시 30분,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양태경 부장판사는 구속영장 기각 사유에 대해 "피의자의 주장이나 변명에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점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 제출된 자료들을 종합할 때 범죄사실(피해자가 범행 당일 피의자가 운행하는 택시에 탑승한 사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판단됨에 따라 현 단계에서 피의자를 구속해야 할 사유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양 부장판사는 "최근의 감정결과를 전혀 새로운 증거로 평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고, 범행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로 보기도 어렵다"며 "피의자의 택시나 옷 등에서 피해자의 혈흔이나 DNA가 검출됐다거나, 피해자의 옷이나 신체 등에서 피의자의 DNA 등이 검출된 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피의자의 택시 안에서 당시 피해자가 입었던 점퍼(무스탕)의 동물털과 유사한 섬유가 발견되었다는 감정 결과, 피해자의 우측 무릎과 어깨 등에서 당시 피고인이 입었던 진청색 남방의 직조섬유와 유사한 진청색 면섬유가 발견됐다는 감정결과가 제출됐지만 이는 동일한 것이 아닌 ‘유사’하다는 의미에 그쳐, 양자가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수사과정에서 피의자 택시 외의 다른 용의차량에서도 피해자가 입었던 무스탕의 동물털과 유사한 섬유가 발견되기도 했다"며 "거짓말탐지기 검사, POT 검사(긴장정점 검사) 및 뇌파검사 등의 결과에 대해 형사소송법상 증거능력을 인정하기는 어렵다"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됨에 따라 과학수사의 발전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던 장기미제 사건이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제주 어린이집 보육교사 살인사건’ 피의자가 결국 석방되면서 혐의 입증에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할 당시만 해도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였으나 법원이 이를 기각하면서 부실수사 논란이 재점화 될 전망이다.

이번 사건은 9년 전인 지난 2009년 발생했다. 당시 보육교사였던 이모(당시 27세)씨는 그해 2월 1일 새벽께 제주시 용담동에서 남자친구를 만나고 헤어진 뒤 택시를 이용해 제주시 애월읍 구엄리 소재 집으로 향하던 중 종적을 감췄다.

사건 발생 5일 후인 그해 2월 6일, 제주시 아라동에서 이 씨의 핸드백이 발견됐지만 이 씨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이 씨는 그로부터 이틀 후인 2월 8일, 제주시 애월읍 고내봉 인근의 한 배수로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당시 이 씨의 상의는 착용된 상태였으나 하의는 모두 벗겨져 있었다.

당시 경찰은 택시기사였던 박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지만 증거 불충분의 이유로 그를 풀어줬다. 이후 경찰은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한 이른바 ‘태완이법’이 시행되자 2016년 2월, 미제 사건을 재수사하기 위해 미제사건팀을 신설하고 보육교사 미제 살인사건을 다시 들여다봤다.

전국 경찰청의 프로파일러를 소집한 뒤 피해자의 사망시점을 명확히 추정하기 위해 합동분석에 들어간 경찰은 최대한 당시 상황과 유사한 기후조건에서 실험을 진행했다. 

경찰은 시체가 발견된 현장에서 과학실험에 활용되는 비글과 돼지를 이용, 4회에 걸쳐 실험을 진행한 끝에 피해자의 사망 시점이 사체 발견 당시가 아닌 실종 당일 또는 이튿날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소견을 내놨다. 

당시 경찰은 "살인 사건의 기초는 피해자가 언제 사망했느냐 하는 점이다. 사망시점이 명확해지면 증거수집의 방향도 달라지고 용의자도 압축할 수 있다"며 "용의선상에 올랐던 이들을 대상으로 과거에 했던 진술을 분석하고 음성 또한 분석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과학수사를 토대로 과거의 흔적을 재구성해 용의선상에 오른 이들을 압축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경찰은 기존에 투입된 7명의 직원 이외에 추가로 7명을 더 투입시켰다. 이 사건에 투입된 경찰인력만 총 14명에 달할 정도다.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됨에 따라 과학수사의 발전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던 장기미제 사건이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피해자의 사망 시점이 달라지자 경찰은 당시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를 재분석하기 시작했고 압축 끝에 박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이후 경찰은 법원으로부터 체포 영장을 발부 받고 본격적인 검거에 돌입했다.

하지만 박 씨는 8년 전인 2010년, 이미 제주를 벗어난 상태였다. 경찰은 박 씨의 계좌를 추적하고 통화내역을 분석해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한 뒤 경북 영주시로 향했고, 영주시에서 3일 간의 잠복 끝에 지난 5월 16일 박 씨를 붙잡았다.

경찰의 손에 이끌려 제주동부경찰서로 압송된 박 씨는 검은색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박 씨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쏟아지는 취재진의 질문에도 불구하고 박 씨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오다 영장 실질심사를 마치고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취재진의 "억울하느냐"는 질문에 박 씨는 "네"라고 대답하며 범행 사실을 부인했다. 

앞서 경찰은 박 씨를 검거할 당시 "피해자의 몸에서 당시 피의자 박 씨가 착용했던 옷의 실오라기를 발견했다"며 "피해자와 피의자 간 동일한 유형의 섬유재질이 서로 교차한 흔적을 발견한 것 이외에도 또 다른 결정적인 증거를 추가로 확보했다"며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인 바 있다. 

그러나 경찰의 이 같은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피의자 박 씨 이외에 다른 용의차량에서도 피해자가 입었던 무스탕의 동물털과 유사한 섬유가 발견됐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혐의 입증에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구속영장 기각 이후 경찰은 "과학수사 기법을 동원해 재수사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 기존 증거를 재분석해 추가 증거를 수집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며 "구속영장 기각이 사건의 종결은 아니므로 앞으로 관련 증거를 보강해 사건해결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뉴스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