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안허우꽈?] 70화, 전하의 명
[펜안허우꽈?] 70화, 전하의 명
  • 차영민
  • 승인 2018.07.08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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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민 역사장편소설
▲  ©Newsjeju
▲차영민 역사장편소설<펜안허우꽈?>. ©Newsjeju

진도에 상륙한 삼별초는 먼저 주변 마을부터 재빠르게 장악하였다. 주민들은 대체로 삼별초의 등장을 놀라워하지 않았다. 물론 젊은 사람들은 징집의 두려움 때문일까, 애써 자취를 감추려는 눈치였고 노인들은 누구보다 반겼다. 오랑캐에 무릎 꿇은 고려군보다 끝까지 맞서는 삼별초가 진짜 고려의 정체성이라고 치켜세울 정도였다.

해안을 따라서 진도 곳곳이 차근차근 삼별초의 세력권으로 변해갔다. 어떤 곳은 삼별초 군사들이 직접 가지 않아도 알아서 마을의 대표자가 찾아오기도 했다. 금세 용장산성만 빼고 진도 전체가 삼별초의 영향력에 들어오고 말았다. 이상한 것이, 고려군은 해상 전투에서 퇴각한 이후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군사적으로 중요한 거점들마저도 텅 비워놓은 상황이었다. 내 눈으로 직접 분명하게 본 건, 고려군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들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이 마셨던 음식과 심지어 몇몇 무기들도 남겨둔 상황. 어떤 곳은 막사까지도 그대로 남겨둔 채, 급하게 비운 흔적이 역력했다. 분명 수상쩍은 상황이었지만 김통정은 별로 개의치 않은 눈치였다.

“오합지졸들로 어찌 감히 우리를 상대하려 하겠는가!”

오히려 어깨에 힘을 꽉 주고 군사들을 더욱더 독려하고 있었다. 물론 척후들이 미리 주변 상황을 살피고 돌아온 결과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곳은 삼별초를 완전 꺾어버린 상징적인 공간이 아니었던가? 해전을 치를 때만 해도 결코 적지 않은 군사들이었는데 어떻게 금세 다 빠져나갈 수 있었던 건지. 여러 가지로 생각해봐도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김통정은 용장산성으로 군사들을 이끌었다. 척후가 가져온 소식으로는, 이곳 역시 텅 비었다고 했으나. 이번만큼은 김통정이 잠시 머뭇거렸다.

“내가 이곳을 정말 잘 알지. 튼튼한 요새이기도 하지만 잘못하다가 치명적일 수도.”

결국 삼별초는 용장산성을 저 앞에 두고 따로 진지를 구축하였다. 사방이 탁 트인 평야였지만 혹시라도 모를 고려군의 기습에 더 대응하기 좋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용장산성 진입은 따로 별동대를 꾸리기로 하였는데, 나를 거기에 포함시키고 말았다.

“누구보다 그대를 믿고 있소이다. 내부를 잘 살펴주시길 바라오.”

김통정은 분명 내게 부탁은 하였지만, 별동대로 차출된 군사들에 대한 권한은 하나도 주지 않았다. 평소 자신과 가까운 부장 하나를 대장으로 삼았고, 그 아래에서 조언 정도만 해주면 된다는 얘기였다. 결국 달이 으스름하게 떠올랐을 때, 난 별동대와 함께 조용히 용장산성 안으로 진입하였다. 성문은 이미 활짝 열려있던 터라, 따로 돌아서 가지 않아도 되었고, 성벽 곳곳에는 역시 고려군의 깃발과 무기들이 남아 있었지만 군사들은 온데간데 없어보였다.

어둠이 점점 짙어지는 성안은 적막함까지 감돌 정도로 조용하였다. 불이 꺼진 민가에서 간간히 인기척은 들렸지만, 직접 확인해보면 그저 이곳에 사는 주민이었다. 산성 가장 안쪽에는 한때 삼별초가 왕족을 앞세워 궁으로 사용했던 건물이 보였다. 규모만 개경과 강화에 있던 것보다는 작았을 뿐. 입구부터 건물 구석구석이 지금도 궁으로 사용해도 전혀 무리가 없어보였다. 오히려 탐라에 있던 성주청보다 더 나아보일 정도였다. 굳게 잠그지 않은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보았다. 피와 땀이 오묘하게 섞인 진한 냄새가 구석구석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도 분명한 건, 불과 얼마 전까지 사람이 지냈던 흔적이 역력했다. 특히 건물 한구석에 불을 피우다가 급하게 끈 흔적이 연기로 남아있었다.

“오랑캐보다 못 한 놈들, 다 도망갔구먼!”별동대장은 내 얘기를 슬쩍 흘겨 듣고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고 말았다. 다른 군사들도 내가 발견한 흔적은 별로 개의치 않은 눈치였다. 까마귀 한 마리가 우리 머리 위에서 빙빙 돌고있을 무렵, 낯선 그림자가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

“잠깐!”

별동대장이 주먹을 재빠르게 들었다. 모두 멈춰섰는데, 하필 마당 한가운데였다. 서 있는 자리에서 눈짓만으로 주변 건물들을 살펴보았다. 그림자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으나, 공기가 무거워진 것만큼은 확실했다. 별동대장과 군사들이 각자 무기를 꺼내들기 시작했다, 나도 마찬가지로 품속에 있던 단도를 천천히 꺼내었다. 칼끝이 달빛에 정확히 맞닿을 그때, 순간 시야가 잠시 멈칫한 바로 그때. 사방에서 화살이 날아들었다.

“기, 기습이다!”

별동대장은 한마디 외침과 함께 목이 화살에 관통되어 그 자리서 맥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연이어 군사들 몇몇도 팔다리, 몸통에 화살이 박혀버렸다. 나도 위아래에서 쏟아지는 화살을 피하지 못 한 채, 왼쪽 팔이 깊게 긁히고 말았다. 다시 대열을 정비할 새도 없이 온몸을 검은천으로 두른 자들이 쏟아져 나오더니, 금세 포위까지 하였다.

“살고 싶다면, 칼을 버려라.”

그중 내 목에 칼끝을 겨눈 자와 눈이 마주쳤다. 나를 포함해 함께 있던 군사들은 모두 손에서 칼을 내려놓고 말았다. 양팔이 허리 뒤로 꺾인 채, 줄에 묶여 가장 가까이 있는 건물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차가운 나무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낯선 자들의 감시 아래 가만히 자리를 지켰다. 살아남은 별동대원은 나를 포함해서 다섯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그 자리에서 맥 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그나마 남은 자들은 모두 여기서 차출하여, 특별히 안면도 없는 터였다. 오히려 그들의 시선은 오직 내 얼굴에만 향했다.

“네놈이 대장이더냐?”

조금 전 내 목에 칼을 겨눴던 자가 앞으로 다가왔다. 쪼그려 앉으면서 복면을 벗었는데, 나도 모르게 뒤로 중심이 흐트러져 주저앉고 말았다. 구면이었다, 탐라에서가 아닌 개경에서 몇 번 인사 정도 했던 자였다. 거기다 더 내 눈을 의심하게 한 건, 나와 함께 묶였던 별동대원들이 갑자기 풀려나는 게 아니던가? 심지어 여기로 끌고 온 자들에게 “고생많았다”는 얘기도 스스럼없이 나누지 않던가? 곧이어 내 팔을 묶었던 줄도 다른 사람이 다가와서 풀어주었다.

“그동안 정말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여기선 안심하시지요.”

칼을 겨눴던 손으로 나를 일으켜주는 게 아니던가? 내 기억에 문제가 없다면, 이자는 바로 개경 왕궁에서 봤던 용호군의 장군이었다. 특히 우리 장인어른과 각별하여 한 번씩 처가에서도 얼굴을 보던 그런 사이였다. 동그래진 두 눈은 좀처럼 깜빡일 수 조차 없었다.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정말 탐라에서 잘못된 줄 알았소이다. 어르신께서도 많이 걱정하셨지 뭡니까?”

그에게 자세한 사정을 들어보니, 장인어른께서 전하께 고하여 친히 용호군 일부를 진도까지 내려보낸 것. 상황을 지켜보다가 여기서 군사들을 추려 탐라로 내려올 작정이었다고 한다. 삼별초의 움직임은 이미 모두 파악한 눈치였고, 오히려 언제쯤 쳐야 할지 때를 기다리는 듯 싶었다. 이제 난 여기서 이들과 함께 있다가 개경으로 돌아갈 수 있나 싶었지만.

“전하께서 먼저 미안하단 말씀을 전해달라고 하셨소이다.”전하께서? 순간,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곧이어 전하의 명이 나왔으나,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았다. 그건 다름 아닌, 탐라로 다시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 지금으로선 탐라의 사정을 소상하게 살펴보고 기록까지 해 줄 사람이 없는 게 현실이라며 조금만 더 고생해주라고 부탁하였다. 도대체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이유가 뭐란 말인가?

“좀 있다 여길 나서는 순간부터, 우린 다시 적으로서 대할 수밖에 없소이다.”

다시 복면을 쓴 그는, 별동대로 함께 있던 자들과 함께 나를 바깥으로 내보내었다. 조금 전 쓰러진 별동대장 근처까지 동행한 뒤, 자신의 수하들과 함께 유유히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점점 식어가는 시신들을 함께 수습하다가 또 다른 인기척에 고개를 돌려봤더니, 그곳엔 다름 아닌 그가 서 있다. 바로 그! (계속)

▲  ©Newsjeju
▲소설가 차영민. ©News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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