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뒤 화려함 무슨 소용"

"죽음을 예측하는 것은 자유를 예측하는 일이다. 죽음을 배운자는 굴종을 잊고, 죽음의 깨달음은 온갖 예속과 구속에서 우리들을 해방시킨다." 몽테뉴 <수상록>의 한 구절이다.

진정하고 영원한 자유는 아름다운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메시지다. 그러나 우리 민간신앙은 죽음을 공포와 재앙으로 인식한다. 세상에서 누리는 행복 가운데 오래 사는 것(壽)과 사람 역할 다하고 편안하게 죽는 것(孝終命)을 오복(五福)의 첫째와 마지막으로 친다.

죽음에 대한 인식이 어떻든 목숨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지선(至善)의 가치라면 그 마침은 아름다운 삶의 징표로 남아야 할 것이다.

인류 문명의 불가사의라는 피라미드와 미라, 인도의 타지마할, 중국 진시황의 병마용(兵馬俑), 산둥성(山東省)의 공림(孔林·공자가의 무덤군), 고구려 즙안현의 장군총(將軍塚) 등은 권력과 영화·명예를 영원히 누리고자 한 화려한 무덤들이다. 그들의 시신인 미이라가 박물관에 박재돼 있다. 그 영혼은 편안할까. 과연 아름다운 죽음일까.

대도시를 중심으로 화장 문화가 보편적인 장례 방식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서울시와 부산시의 화장률이 70%를 넘어섰고 지난해 제주도 45.18%, 제주시 48.87%, 서귀포시가 37.04%이며, ‘08 전국 평균 화장률은 61.9%를 넘어섰다.

부모를 모시거나 어른을 공경하는 우리 민족의 경로 효친 사상은 세계 어느 나라 민족보다 우수하다. 그러나 지나친 효의 강조는 부정적인 면을 초래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조상의 산소를 풍수지리설에 의하여 산 좋고 물 좋은 양지 바른 곳에 모셔야 후손이 잘 살게 된다든지, 호화롭고 사치스럽게 꾸며야 잘 사는 집안이라는 것을 과시하는 풍조가 옛날부터 내려온 것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산소를 만들어 조상을 모셔오던 풍속을 바꾸어 하루아침에 납골당에 모셔야 한다는 것을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실정이다. 요즘 도시 근처나 시골에 가 보면 묘지가 산, 오름 전체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제는 산, 오름을 이용할 수 있도록 장묘 문화를 납골당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읍에서도 화장율을 높이기 위하여 화장장 견학, 무연분묘 정비, 화장유언 남기기 서명운동 등 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고 있으며, 점차적으로 화장후 납골당에 모시는 비율이 높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개장신고 민원인의 사례를 소개한다. 대정읍에 거주하는 A모씨인 경우 금년 4월 청명을 앞두고 조상묘 14기를 화장하고 납골당으로 모시기 위하여 개장신고를 하였다. 사유인즉 조상묘를 벌초할 후손들이 타지에 대부분이 거주하여 벌초시기에 후손들이 모이기가 어렵고, 나이가 들어 벌초하기도 어려워 고민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한다.

납골당에 조상이나 돌아가신 부모님을 모신다고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효 사상이 어디 사라져 가겠는가? 오히려 바쁜 도시 생활로 인해 조상의 산소를 돌볼 시간이 없는 현대인들에게는 황폐하게 변해 버린 조상의 산소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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