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에선 '아직'인데 원희룡 지사 머리속엔 온통 '블록체인' 뿐...

제주특별자치도는 10일 <'블록체인 선도도시' 제주도-에스토니아가 만났다>라는 제하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지난 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에스토니아의 케르스티 칼유라이드(Kersti Kaljulai)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는 내용이다. 이름도 생소한 '에스토니아'라는 나라와 회담을 가진 이유는 단 하나, 에스토니아가 블록체인의 선두국가로 알려져 있어서다.

보도자료 제목만 보면 마치 제주도가 블록체인 선도도시인 것처럼 비춰진다. 게다가 보도자료 서문에선 제주특별자치도를 '글로벌 블록체인 허브도시를 추진하는'이라고 수식했다. 블록체인 허브도시 추진은 아직 어디까지나 원희룡 지사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지난 9일 세계지식포럼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에스토니아의 케르스티 칼유라이드 대통령과 만나 블록체인에 대한 회담을 나눴다.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지난 9일 세계지식포럼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에스토니아의 케르스티 칼유라이드 대통령과 만나 블록체인에 대한 회담을 나눴다.

현재 제주자치도는 블록체인 특구 지정에 대한 공론화는커녕 도내 기업 및 도민들과 제대로 된 대화조차 해본 적이 없다. 제주도민들이 원하고 있는건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태다.

게다가 지난해엔 일부 암호화폐(가상화폐)가 해킹 당하는 국제사례가 발생하자, 대한민국 정부는 중국이나 미국 등과 함께 '암호화폐 공개(ICO, Initail Coin Offering)' 제도 규제에 나선 바 있다.

이 사건으로 중국 정부가 지난해 9월 ICO를 전면 중단해버리자 암호화폐의 대표주자인 비트코인의 가치는 급락했다. 한 때 1BTC(비트코인 화폐단위)에 2500만 원까지 치솟았던 비트코인은 현재(10월 10일 기준) 750만 원 이하로 추락한 상태다. 지난해 비트코인 열풍이 불었을 때 1억 원을 투자한 사람이 아직 손에 들고 있다면 무려 7000만 원가량의 손실을 입었다는 얘기다.

이렇게 위험한 시장변동성 때문에 한국은 블록체인에 의한 가상화폐 도입을 꺼리고 있다. 

그런데도 원희룡 지사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주도의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제주도에만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고 가상화폐를 도입해 볼 필요가 있다"며 특구 지정을 건의했다. 아직까지 블록체인에 대한 문 대통령의 생각이 밖으로 표출된 바는 없다.

정부는 아직 검토조차 하지 않고 있는데 제주자치도는 벌써부터 '글로벌 블록체인 허브도시'를 추진한다며 홍보부터하고 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만 마시는 격이다.

▲ 에스토니아는 북유럽 발트해 연안에 인접해 있는 자그마한 국가다. 2001년부터 전자정부 시스템을 도입해 전체 행정의 90% 이상을 '종이' 없이 전자문서 형태로만 처리하고 있다. 블록체인 선두국가로 알려져 있다. ©Newsjeju
▲ 에스토니아는 북유럽 발트해 연안에 인접해 있는 자그마한 국가다. 2001년부터 전자정부 시스템을 도입해 전체 행정의 90% 이상을 '종이' 없이 전자문서 형태로만 처리하고 있다. 블록체인 선두국가로 알려져 있다. ©Newsjeju

# 에스토니아, 행정의 90% 이상을 '종이' 없이 전자문서 형태로만 처리

지난 9일, 원희룡 지사와 50분간 대화를 나눴다는 칼유라이드 대통령은 자신의 나라 '에스토니아'에선 "행정의 90% 이상을 온라인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체 에스토니아는 어떤 나라이길래 행정의 90% 이상을 '종이' 없이 전자문서만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게 가능한가. 

에스토니아는 북유럽 발트해를 왼쪽에, 핀란드만을 북쪽에 끼고 있는 면적 4만 5000㎢ 규모(한국은 9만 9720㎢)의 작은 나라다. 인구도 130만 명 뿐이다. 1918년까지는 독립국이었으나 1940년에 구 소련에 합병됐다가 1991년 소련 연방이 해체되면서 다시 독립했다.

이 때 에스토니아는 새로운 국가 설립을 위해 파격적으로 '전자정부'를 전면 도입키로 하고 계획을 세웠다. 1991년은 본격적인 (국제적)인터넷이 막 태동한 후 초기 네트워크를 구성하려던 시기다.

10여 년의 연구 끝에 에스토니아는 2001년에 '엑스로드(X-Road)'라는 분산형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을 도입했고, 여기에 모든 행정기관과 의료, 학교, 금융 정보를 모두 연동시켰다. 모든 국민의 개인정보와 민간 영역까지 집어 넣었다. 분산형 DB시스템은 현재의 블록체인 개념과도 같다.

엑스로드에 포함되지 않은 행정 업무(이른바 '종이'로 처리해야 하는)는 결혼과 이혼, 부동산 매각 등 단 3가지 업무 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해서 행정 낭비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투명성과 편의성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렸다.

허나 여기서 의문점이 발생한다. 가상화폐도 (이론적으로 매우 어렵다는)해킹되는 판국에 개인정보 유출을 어떻게 감당하느냐다.

에스토니아에서 모든 국민은 자신의 개인정보를 직접 관리할 수 있다. 가령, 누군가 혹은 어떤 집단이 자신의 정보를 들여다봤다면 그것 자체로 기록이 남고, 그것을 당사자에게 알려준다. 만일 정보 열람에 동의하지 않았다면 곧바로 관할기관에 수사를 의뢰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이를 통해 에스토니아는 2002년부터 세계 최초로 전자신분증(e-ID)을 발급했다. 인구 밀집 지역에 무료 와이파이 망을 깐 뒤, 2005년에 전 세계 최초로 전자투표를 실시해 정치인들을 선출했다. 또한 2015년엔 블록체인 기반으로 만들어진 디지털 영주권 제도를 도입했다. 이를 이용하면 전 세계 어디에 있든지 에스토니아에 사업자등록을 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이 최근 전 세계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이렇게 에스토니아는 블록체인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블록체인 기술이 발달한 에스토니아도 아직 '가상화폐'를 도입하고 있진 않다. 이는 그만큼 가상화폐의 높은 시장 변동성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일 수 있다.

▲ 에스토니아 케르스티 칼유라이드 대통령과 원희룡 지사가 회담을 나눈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Newsjeju
▲ 에스토니아 케르스티 칼유라이드 대통령과 원희룡 지사가 회담을 나눈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Newsjeju

# 원희룡 지사, 대체 무슨 생각인걸까.

최근 원희룡 지사는 '블록체인'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틈만 나면 언론을 통해서든, IT 관련 행사장이든 블록체인 강연에 나서면서 제주도를 '블록체인 특구'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도지사가 직접 나서는 전도사 역할도 부족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올해 하반기 제주에선 유독 블록체인 관련 행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IT 전문가를 제주도청에 입성(공직)시키는가 하면, 전문 강사를 초빙한 강연도 여러 차례 진행되고 있다.

이날도 원 지사는 에스토니아 대통령에게 "미래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기술들을 적극 도입하고 노력하고 있다"며 "이번 회담을 통해 에스토니아와 정보 및 인적교류가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원 지사는 "에스토니아의 전자정부 및 블록체인 전략과 제주도의 디지털 정책발전을 위해 실무진 차원에서 다양한 논의와 협력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원 지사의 바람대로 제주도를 블록체인 특구로 지정한다 하더라도 당장 제주도정이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을 듯 하다.

앞서 언급한 에스토니아의 전자정부 시스템을 제주도가 도입할 수 있을까를 고려해보면 현재로선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당장 도민공론화부터 거쳐야 하고, 정부의 허용과 지원은 당연한 선결과제며, 안정적인 시스템 개발에만 몇 년이 걸릴지 모를 일이다.

무엇보다 전자정부 시스템이나 블록체인(가상화폐)을 제주도에만 적용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조차 알 수 없다.

원 지사는 관광에 편중돼 있는 제주도의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선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아무런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에선 혼자 열심히 외쳐봐야 소용없다. 제주도민들이 원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원 지사는 도민들과 대화에 나서기 보단 "제주도가 블록체인 기술을 선도한다"는 식의 홍보에만 집중하고 있는 모양이어서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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