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가 시점 고려하면 공론화조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게 맞아
도민여론 등 돌릴 게 뻔한 결정을 내린 진짜 이유는 대체 뭘까... 의문

영리병원 허가에 따른 후폭풍 여론이 거세게 불고 있다. 제주도 내 시민사회단체에선 '퇴진운동'까지 나오고 있다. 이를 예견하지 못했을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결코 아니다. 국회의원만 3연석, 제주도지사로 2연석에 성공한 정치 고단수인 그가 대체 왜 이런 큰 부담을 안으면서까지 '허가'를 선택한 것일까. 

원희룡 지사는 지난 5일 국내 제1호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의 개설 허가를 최종 승인했다. 공론화조사위원회를 통해 제주도민들이 선택한 최종 권고안은 '불허'였다. 물론 원희룡 지사의 설명대로 불허 권고안은 '비영리병원'으로 전환한 뒤 고용된 인력들의 실직을 막으라는 주문이었지만, 원 지사는 이를 이행하려면 어쩔 수 없이 '허가'를 내려야 했다는 역논리를 내세웠다.

이에 대해 원 지사는 이날 허가 발표 기자회견에서 "모든 비난을 감수하고 모든 정치적인 책임을 지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게다가 "이럴거면 왜 공론화조사를 했느냐"라거나 "그 때 결정했어야 한 게 아니냐"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것에 대해서도 "제가 결과적으로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도 했다. 어찌됐든 도민들이 선택한 민의를 저버렸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자신도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모든 상황(가능성)을 끌어와 원희룡 지사가 허가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을 파헤쳐봤다.

▲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지난 5일 국내 제1호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의 개설 허가를 최종 승인했다. ©Newsjeju
▲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지난 5일 국내 제1호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의 개설 허가를 최종 승인했다. ©Newsjeju

 

# 1. 허가 시점 의문... 공론화조사, 정치적 도구로 이용

이번 허가 결정으로 나오는 대표적인 반응은 "이럴거면 공론화조사는 왜 했느냐"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공론화조사는 원희룡 지사가 자신의 정치석 생명선을 연장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원희룡 지사의 설명대로 제주도정은 올해 1월께 이날과 같은 허가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지난해 말에 보건의료심의위원회가 이미 외국인 제한조건으로 개설 허가 권고안을 도지사에게 제출했으며, 이에 따른 문제발생 우려점에 대해 제주도정이 보건복지부에 의뢰한 내용도 올해 1월에 회신받았다.

그러니 "이 때 결정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원 지사는 발표하지 않았다. 이유는 명백하다. 올해 지방선거에 나서 재선에 성공해야 했어서다. 6월에 진행될 지방선거를 앞두고 허가 발표를 하면 지금과 같은 역풍을 맞아 선거기간에 독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원 지사는 마침 시민사회단체가 공론화 조사를 청구했다는 것을 빌미로 공론화조사를 받아들인다는 '명분'을 세웠다. 조사가 추진되는 기간에 지방선거 문턱을 넘은 뒤 그 이후에 결정짓자는 심산이었던 셈이다.

결국 제주도에서 최초로 시행됐던 공론화조사는 원 지사의 재선을 위한 도구에 불과할 뿐이었다는 결론으로 자연스레 귀결된다.

실제 5일 기자회견장에선 이를 지적하는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원 지사는 "(공론화조사를 통해)도민들에게 더 많은 정보를 알릴 필요가 있었다"는 답변으로 회피했다. '도민'을 이유로 공론화조사를 받아들였다고 해놓고선 이제와서 허가한 이유도 '도민'이라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고 치사한 변명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원 지사는 자신의 난처한 입장에 대해 어느 쪽을 선택하든 피차일반이라는 듯(불 속으로 뛰어들 것이냐, 물 속으로 뛰어들 것이냐)이 얘기했는데, 허가 시점을 놓고 보면 다 부질없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결정한 것조차 도민 핑계를 대고 있으니 도지사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녹지국제병원(영리병원) 시설 현장을 찾아간 원희룡 제주도지사. 원희룡 지사는 3일 현장방문을 통해 "현실에 맞는 결정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녹지국제병원(영리병원) 시설 현장을 찾아간 원희룡 제주도지사. 원희룡 지사는 3일 현장방문을 통해 "현실에 맞는 결정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 2. 허가 논리의 허점

제주도정 혹은 원희룡 지사는 이번 영리병원 허가 논거로 10가지 정도의 이유를 들었다. 그 사유 면면을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모두 타당성이 부족하다.

보도자료로 밝힌 공식적인 허가 사유는 ▲경제 살리기 ▲관광산업 재도약 ▲지역경제 활성화 ▲한·중 외교문제 ▲행정신뢰도 추락 ▲손해배상 문제 ▲직원 실직 문제 ▲토지반환 소송 문제 ▲타 용도 전환 불가 ▲내·외국인 관광객 감소 문제 해결 등이다.

경제 살리기나 관광산업, 지역경제 활성화 등은 온갖 각종 사업에 갖다 붙여 온 일반적인 내용에 지나지 않는다. 허가 시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이유들은 언제 갖다 붙여도 다 말이 되는 흔한 근거다. 만일 지역경제 활성화 등이 진짜 근거가 될 수 있다면 제주에서 못할 개발사업이 어디 있겠나.

게다가 VIP 외국인 관광객들이나 이용할 영리병원으로 내·외국인 관광객 감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 역시 어처구니가 없다. 영리병원 개설 허가로 내국인 관광객을 유도할 수가 없을 뿐더러 외국인 관광객도 돈 있는 사람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최고급 시설이다.

또한 녹지그룹이 중국 공기업이긴 하지만 손해배상으로 처리할 문제가 한·중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될 것인지도 의문이다. 행정신뢰도 추락이야 예래단지 문제로 이미 다 알려졌다.

그나마 결정적인 근거라고 할 수 있는 건 손해배상 문제와 직원 실직 문제일터인데, 손해배상의 경우는 어쩔 수 없이 복지부와 JDC, 제주도정이 나눠 가져야 할 부분이다. 이 근거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돈 물어주기 싫어서 허가했다는 말이 되는 셈이라 이 역시 공론화조사 결과인 도민의 선택을 뒤집을만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예래휴양형주거단지 조성사업에 따른 대법원의 판례를 제주도정은 아직도 각인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3000억 원에 달할지도 모르는 예래단지 소송문제는 행정이 도민의 뜻을 반했기 때문에 빚어진 문제다. 인허가 대상 여부를 두고 사업자와 토지주 중에 사업자 편을 들어 준 행정의 오만함이 볼러 온 참사다.

이번 영리병원도 도민의 뜻을 거역하고 사업자의 손을 들어줬다. 그랬으면 뭔가 그럴듯한 확실한 논거가 제시됐어야 했다. 차라리 구태의연한 이 10여 가지 논거를 제시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냥 원희룡 지사가 발언한대로 권고안대로 이행하려니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서 허가하게 됐다고만 적시하는 것이 훨씬 솔직하고 개연성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원 지사가 내건 이유인 '권고안 이행 불가'가 허가의 근거가 되진 못한다. 비영리병원으로의 전환 방법에 대해 과연 원희룡 지사는 보건복지부와 JDC 측과 얼마나 대화했나. 권고안이 제시된 건 10월 4일이다. 겨우 2달 얘기해보고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건가.

원 지사는 권고안에서 하나만 선택하고 하나를 버렸다.
권고안은 '비영리병원'으로 전환한 뒤 고용된 인력들의 실직을 막으라는 주문이었다. 고용된 인력들의 실직은 막았지만 비영리병원 전환은 포기했다. 권고안을 반만 이행한 셈이다. 그래놓고선 최대한 존중했다고 자위하고 있다. 비영리로 전환하기 위해 제주도정은 얼마나 노력했나. 겨우 2달 동안.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의 '녹지국제병원 불허권고'를 존중하겠다던 원희룡 지사가 입장을 번복하고 개설 허가를 내주면서 원희룡 도정을 향한 도민사회의 불신이 확산되고 있다. 한 입으로 두 말을 한 셈인데, 오락가락한 제주도정의 행보를 두고 일각에선 "막장까지 가고 있다"는 조롱 섞인 비난마저 나오고 있다.  ©Newsjeju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의 '녹지국제병원 불허권고'를 존중하겠다던 원희룡 지사가 입장을 번복하고 개설 허가를 내주면서 원희룡 도정을 향한 도민사회의 불신이 확산되고 있다. ©Newsjeju

 

# 3. 지방선거, 도민만 보고 가겠다던 그는 어디로?

원희룡 지사는 6.13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뒤 무소속 신분으로 나서면서 "제주도민당으로 도민만 보고 가겠다"고 말해 재선에 성공했다.

도민들이 선택한 결정도 뒤집는 판국에 이 말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으로 다가올까를 가늠하면 원희룡 지사는 향후 3선엔 도전하지 않을 듯하다. 

만일 다시 선거판에 뛰어든다면 원 지사는 이 때 발언이 두고두고 꼬리표처럼 따라 붙으면서 상대 후보진영에서 조롱거리 안주로 삼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하면 제주도지사직이 아닌 다른 지역 선거판에도 얼굴을 들이밀 수나 있을까.

원희룡 지사의 '허언'은 이 뿐만이 아니다.
재선에 당선되자마자 원 지사는 공론조사 결과를 '도민의 명령'으로 받들겠다고 했고, 이후에 공론화조사 결과가 '불허'로 나오자 권고안을 최대한 존중하겠다고도 했다. 이 '존중하겠다'는 발언은 이후에도 두 차례나 거듭됐다. 도민들에게 생중계되는 제주도의회 도정질문에서도 그렇게 답했다. 그럼에도 원 지사는 공식 결정 내리기를 주저했다.

권고안을 받아안고서 2달 동안 무얼 고심하는 척 했지만 이미 원 지사의 결심은 올해 1월에 결정된 상태였다. 왜냐하면 '불허' 결정을 내릴 것이었으면 느닷없이 이제와서야 녹지국제병원을 방문할 필요도 없었다. 

올해 지방선거 이후 상황이 달라진 거라곤 공직선거법 상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재판을 받게됐다는 것 외엔 없었기 때문이다. 복지부의 의견도 올해 1월 이후엔 없었다고 원 지사가 밝혔고, 사업주인 녹지그룹 측이나 시행사인 JDC 역시 영리병원에 대한 그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았다.

결국 제주도의 미래와 제주도민을 위했다는 원희룡 지사의 진심은 그 어디에서도 증명될 길이 없는 상태에 빠졌다.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원 지사가 말한대로 향후 몇 년이 지나도 지금의 녹지국제병원이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4개 진료과목만으로 수익을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허나 그게 가능하리라 보는 이는 많지 않다.

이유는 물론 중국 때문이다. 중국은 최근에도 해외로의 자본유출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사드 사태 이후 제주도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 규모는 아직도 회복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개설허가 지연으로 지난해 8월부터 매월 8억 원 정도의 적자를 봤다는 게 녹지그룹 측의 입장이다. 환율을 고려하면 동남아 국가의 일반적인 관광객들이 고가의 병원을 이용할리도 만무하다. 개별 VIP 중국 관광객들이 잠재 수요고객인 셈인데, 과연 얼마나 많은 VIP 외국인들이 영리병원을 찾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팽배해 있다.

향후 최소 몇 년간은 적자를 메워야 할 상황에서 수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면 녹지그룹은 대안을 모색하게 될 것이고, 그게 다른 시도로 이어져 국내 의료체계에 비집고 들어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원 지사는 결코 그럴 일이 없게 하겠다고 장담했다. 만일 내국인을 상대로 진료를 한다면 허가를 취소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원희룡 지사는 다음 선거에 나오지 않는다. 이날 개원한 국내 제1호 영리병원에 대한 후속 책임은 전적으로 후임 지사가 지게 된다.

아직 3년이나 남은 민선 7기 원희룡 지사가 이 모든 부담을 안고서 왜 '허가' 결정을 내렸는지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원희룡 지사에게 있어 도민의 뜻을 어기면서까지 선택한 '제주의 미래'가 대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정말 '청정'과 '사람'과 '자연'인가. 어렵고 오래 걸리더라도 도민만 보고 가겠다고 했던 그는 초심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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