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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마을활력과 강지향

청백리란 깨끗한 공직자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말로 조선시대에 특별히 국가에 의해 선발되어 청백리안에 이름이 올랐던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며, 깨끗하고 유능한 관리를 뜻한다.

조선 3대 청백리 중 한분인 아곡(莪谷) 박수량(1491~1554) 선생의 비석에는 아무런 글자도 없다. 박수량 선생은 24살에 등과에 63살까지 형조참판, 좌참판, 호조판서 등 38년 동안 조정의 고위관직에 올랐으나 변변한 집 한칸 갖지 못했다. 명종은 박수량 선생이 청백하다는 말을 듣고 두 번이나 암행어사를 보내 그의 생활을 알아봤다. 생계를 겨우 연명할 뿐 집은 낡아서 비가 샐 정도이고 끼니 때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는다는 보고가 올라왔을 정도였다. 사후에도 청빈했던 그는 세상을 떠나면서 묘를 크게 하지말고 비도 세우지 말라고 유언했다.

그의 죽음에 명종은 관리들이 모범으로 삼을 청백리가 떠났다며 서해 바다에서 빗돌을 골라 하사하고 “박수량의 청백을 알면서 빗돌에다 새삼스럽게 그가 청백했던 생활상을 쓴다는 것은 오히려 그의 청렴을 잘못 아는 결과가 될지 모르니 비문없이 그대로 세우라”하여 지금의 백비(白碑)가 됐다. 결국 그는 아무것도 세상에 남겨놓지 않으려 하였으나 그의 청백리 정신은 입으로 전해져 50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공직자의 청렴한 자세에 대한 강조는 늘 있어왔다. 청렴에 대한 교육이 많아졌지만 아직도 비리와 부패에 관한 매스컴 보도는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는 박수량 선생과 명종의 이야기를 통해 청렴과 청백리 정신에 대해서 다시한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무엇을 남긴다거나 거창한 것이 아니다.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든 항상 청렴한 마음으로 생활속에서 청렴을 실천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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