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석 의장 "도민 신뢰 무너져" vs 원희룡 지사 "제주 현실 고려"
영리병원 개설허가 두고 어긋난 제주도 두 수장이 바라보는 제주의 미래

모든 국민은 자신이 속한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겠지만 그 방법은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지역사회도 마찬가지일터다.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영리병원 허가 결정을 지지하는 이들도 있겠으나, 다수의 제주도민들이 결정한 공론화조사위원회의 불허 권고를 무시한 것에 반발하는 이들도 많다. 

어느 쪽이 더 많느냐를 가늠해 가치판단을 내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6대 4로 결정난 공론조사 결과도 무색해지는 판국에 이를 가려내는 건 더 이상 의미없는 일이 돼 버렸다.

문제는 이 상태가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제주사회의 '분열'이 심화될 수 있다는 데 있다. 특히 제주도를 대표하는 두 수장인 제주도지사와 제주도의회 의장이 바라보는 제주의 미래가 달라 앞날이 암담해지기만 한다.

당장 내년부터 세입부족이 현실화 될 것이 전망되면서 힘들어질 경제상황에 같은 곳을 바라보고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이다. 서로 다른 결정의 간극이 벌어질수록 피해를 보는 건 제주도민이 될 수밖에 없다.

▲ 영리병원 개설허가에 대해 원희룡 지사는 "현실을 고려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했지만 김태석 의장은 "주권자들의 숙의를 포기한 첫 사례를 만들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Newsjeju
▲ 영리병원 개설허가에 대해 원희룡 지사는 "현실을 고려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했지만 김태석 의장은 "주권자들의 숙의를 포기한 첫 사례를 만들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Newsjeju

# 두 수장이 바라본 서로 다른 제주의 미래

제주특별자치도의 2019년도 새해 예산안이 최종 가결된 14일,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김태석 제주도의회 의장은 최근 제주도 내 최대 핫 이슈인 '영리병원 개설허가' 사태에 대해 여전히 다른 시각차를 보였다.

원희룡 지사는 이날 제주도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조정한 5조 3524억 원의 새해 예산안에 동의하면서 '영리병원 개설허가'를 내린 것에 대해 "제주가 직면한 현실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고 호소했다.

원 지사는 공론조사위의 '불허 권고안'에 대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행정조치 마련과 이미 고용된 분들의 일자리에 관한 정책적 배려를 해줄 것을 보완조치로 권고하면서 불허하라고 한 것으로 이해한다"고 해석했다.

불허 권고이긴 했지만 이행해야 할 사항이 더 중요하다고 봤다는 얘기다. 최종 결정보다 부대조건이 더 중요했다는, 주객이 전도된 '아전인수'식 자기만의 해석이다.

그러면서 원 지사는 "의료공공성 훼손 없이 지역경제 성장을 도모하는 길이 최선의 선택이라 믿고 조건부 허가라는 어려운 결단을 내린 것"이라며 "공론위의 권고를 그대로 수용하지 못한 것에 대해선 다시 한 번 도민 여러분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후 원 지사의 발언은 앞서도 누차 강조했던 '국민들이 우려하는 일이 생기지 않게 이중, 삼중 보완장치를 만들겠다'는 내용들로 반복됐다.

이에 김태석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장은 "우리는 아픈 선례를 남겼다. 도민들에 의한 집단지성이 선택한 고심의 결과를 폐기한 현실에 직면했다"며 "(도지사는)폐기가 아닌 차선을 선택했다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태석 의장은 공론화조사 권고안에 대해 "(도민들은)절차적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나온 최선의 결과라 믿었지만 그게 어긋나 도민사회가 혼란에 빠져버렸다"며 "도민주권의 힘을 바탕으로 선택한 결과가 유실됐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김 의장은 "과연 우리가 지불해야 할 것이 정녕 도민의 결정을 포기했을 때 발생하는 비용보다 더 큰 것인지 고심해야 한다"며 "우리는 주권자들의 숙의결과를 포기한 첫 사례를 만들고 말았다"고 성토했다.

특히 김 의장은 "앞으로 도민주권은 돈과 고용, 외교분쟁이라는 단어가 언급된다면 언제든지 포기될 수 있는 사례를 만들고 만 것"이라며 "재량권자의 두려움에 대한 선택이 절차적 민주주의 결과를 외면하는 선택 위에 서게 한 것"이라고 원희룡 지사의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김 의장은 "지사께서 하신 고뇌에 찬 결정이 정녕 도민을 위한 것인지 다시 한 번 묻고 싶다"며 "지사가 말한 책임의 무게라는 게 어떤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끝으로 김 의장은 "도민주권이자 숙의민주주의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대체 무엇이냐"고 재차 물으면서 "(원 지사는)단지 도피적 결정을 내린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 "중앙 곁눈질을 멈추고 제주도민만 바라보겠다." 올해 6.13 지방선거 당시 비가 내리던 지난 5월 7일,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자신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했던 말이다. ©Newsjeju
▲ "중앙 곁눈질을 멈추고 제주도민만 바라보겠다." 올해 6.13 지방선거 당시 비가 내리던 지난 5월 7일,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자신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했던 말이다. ©Newsjeju

#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정치인들은 선거 때마다 늘 남발하는 공약이 있다. 도민을 섬기겠다는 말. 그들은 왜 이런 말을 내뱉을까.

그건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들이 국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으니 각 지역을 대표하는 사람을 선정해 대신 행사하도록 한 것이 현 국회 민주주의다. 그러니 이번 영리병원 결정도 그러했다.

65만 제주도민 모두가 참여할 순 없으니 대표성을 띤 200명을 선정해 토론을 진행하고 서로 합의한 결과를 도출해 내보자는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보다 더 성숙한 민주주의 결정 방식인 셈이다.

물론 원희룡 지사가 말한대로 공론조사위원회의 '권고안'이 반드시 이행돼야 할 의무사항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공론조사 결정은 제주도민의 뜻을 함의하고 있는 민주주의 방식으로 결정한 사안이다. 문서상으로 의무적이지 않더라도 더욱 더 믿고 따라야 할 결정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다면 숙의민주주의는 왜 있어야 하며, 제주의 미래는 단 한 명의 판단에 맡겨야만 한다는 것인가의 의구심으로 치닫는다. 돌이켜 볼수록 원희룡 지사의 이러한 발언은 면피성 발언에 불과한 치졸스런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김태석 의장이 지적한대로 다수 제주도민 집단지성들이 선택한 결과다. 그게 민주주의다. 그러니 다수 도민의 선택보단 자신(결정권자 한 명)의 선택이 더 최선이라고 믿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나. 

김태석 의장이 원희룡 지사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전체 제주도민의 의견을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겠으나, 도민의 선택을 외면했다는 결과만 보더라도 일면 타당한 지적이 많다는 점에 수긍한다. 제주도의 많은 시민사회단체와 여러 정치권에서도 한 목소리로 원희룡 지사를 비판하고 있다. 이는 영리병원 개설허가 선택이 낳은 당연한 현상임을 원희룡 지사도 잘 알 것이다.

도민 신뢰를 무너뜨리면서라도 제주의 현실을 고려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제주의 미래인가. 아니면 당장 손해배상으로 수백억 원의 재정지출을 감당하더라도 도민의 선택을 믿고 따라가는 것이 제주의 미래인가의 문제는 향후에도 두고두고 곱씹어 볼 사례가 됐다.

대권을 바라본다는 원희룡 지사.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의 국민이 선택한 결과를 뒤집는 대통령이 과연 있을 수 있겠나 싶다.

저작권자 © 뉴스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