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은 신(神)이 만들었고, 도시는 인간이 만들었다고 한다. 봄은 남쪽에서 거슬러 올라와서 온 강산(江山)에 푸르름을 뿌려주고 있다.

그러나 도시의 봄이 내 고향의 풋풋한 봄내음이 아니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아차릴 수 있다.

고향과 봄내음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그래서 인정(人情)과 사랑과 이웃까지도 내팽개친 무리들 속에서 봄내음을 맡으려는 내 어리석음이 가엾다.

하나님이 만든 것 중에 제일 그럴 듯 원에 보이는 것은 비단 나 혼자 만일까?

새파랗게 움터 오르는 물먹음을 나뭇가지 대신 공해(公害)에 찌든 새싹을 바라보며, 자꾸 봄이란 낱말이 내포하고 있는 새로움과 희망과 미래와 열정을 아쉬워한다. 우리들의 바라는 봄, 우리들이 키운 고향

우리들에게 꿈을 줄 미래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그러나 어쩌면 지금 시골도 마찬가지로 닮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옆집 어미닭이 병아리를 데리고 울타리를 넘어와서 채소밭을 휘저으면 지금도 내 어머니 모이를 한줌 두줌 뿌려주고 있을까? 땀띠가 죽는다는 오얏샘의 그 이가 시련 차갑고 맑은 물을 지금도 내 이웃끼리 정답게 나누워 마실까?

내 고향에 봄은 맑은 물길로 울창한 숲을 길러내지도 않는 맨법관으로 황토먼지가 회오리 바람을 잦게 하는 곳이 없지만, 인정이 흘러 넘쳐 내 이 기억 속에서는 언제나 아기자기한 동경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그 곳 어디에도 내 그리움 내 추억을 되살려 줄만한 그 무엇이 그대로 남아 있을 것 같지 않다. 나를 감싸고 돌았던 사랑은 차츰 식어가고 나는 번번이 고향을 타향(他鄕)처럼 느껴야만 했다.

내 것, 우리 것, 내 이웃 사그라지는 아픔을 나는 거기서 또 메우고 말았다. 그저 나 우리는 해마다 그 봄을, 그 희망을, 그 법관을 멀리 내몰았던 것이다.

다시 봄을 맞은 우리 땅에 물을 주어 새싹을 키우듯 우리 도민 가슴에 활짝 열라.

태극기 하르방 한규북

저작권자 © 뉴스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