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조기 봉합하지 않으면 불교계만 다친다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고 있다. 총무원과 봉은사간의 미묘한 시각차가 서로간 불신으로 커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의 정쟁 소재로 비화하고 있다. 불자들은 수란스럽다. 조계종은 중간에 끼여 정권의 외압이나 받는 단체로 전락하고 있다. 피해는 고스란히 불교계가 안을 것이 자명한데도 총무원은 속앓이만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마치 '국정원 직원이 조계사에 압력을 행사해 시민단체들의 행사를 취소시켰다'는 주장과 비슷한 양상이다.

국정원 직원이 조계사 모 과장에서 전화를 한 것은 행사를 취소하기 2시간 전쯤인 1월 28일 오전9시였다. 국정원 직원은 행사의 개요를 조계사 직원에게 물었고 이 직원은 국정원 직원의 전화내용을 상부에 전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오전 11시께 주지 스님이 불러 행사 취소를 지시했다. 이유는 불교계 NGO가 조계사 앞 마당에서 불우이웃돕기 기금 모금을 하는 줄 알았는데 다른 단체들이 합세해 정치적 집회 우려가 있다라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라는게 조계사 주지의 설명이다.

이어 오후 3시께 국정원 직원이 부임 후 처음으로 조계사 주지와 대면했다. 이 자리에는 인권운동가 한 사람도 동석했다. 이 때는 이미 조계사 행사는 취소된 후였다. 이 자리를 주선하고 배석한 한 인사는 "행사 취소 압력을 하려면 조계사 주지에게 전화하지 왜 실무자에게 했겠느냐. 국정원 직원과 조계사 주지는 이 때 처음 인사를 나눴다. 특히 인권운동가까지 배석한 마당에 국정원 직원이 행사취소 압력을 넣는게 가당키나 하냐"고 반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직원이 오전에 행사 개요를 묻고 "행사를 진행하면 총무원장 스님의 방북 등에 누가 되지 않겠느냐"라고 발언한 게 사실이라면 대단히 부적절하고 종교탄압 행위이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을 만난 자리에서 "좌파 주지, 운동권 스님"운운하며 "현 정권 비판적인 봉은사 주지 그냥 두면 되겠느냐, 돈을 함부로 운동권에 쓰는 것 막아야 한다"고 발언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 역시 적절치 못한 것이다. 종교의 자주성을 헤치고 정교분리를 명시한 헌법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주지교체와 직영사찰 전환으로 연결됐다고 보는 인식은 지나친 비약이고 성급한 단정이다.

조계종에서는 오래전부터 봉은사의 직영사찰 전환을 논의해왔다. 167차 중앙종회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됐다. 종무회의에서 본격 논의하고 안건을 상정한 것은 총무원장 스님이 아니라 다른 종무위원 스님이었다. 총무원장 스님이 안상수 대표의 말을 해당 종무위원에게 전달하고 이를 전달받은 종무위원이 안건을 상정했다는 증거나 증언이 나와야 '안 대표의 압력으로 직영사찰로 전환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

총무원장이 중앙종회 석상에서 명진 스님의 임기를 보장한다고 말한 것은 그 어떤 공식 문서보도 강한 효력을 발생한다. 안 대표의 압력으로 주지를 교체하려 했으면 바로 하면 되지 굳이 명진 스님의 임기 보장을 총무원장이 약속할 이유가 없다.

중간 연결고리가 쏙 빼져버린 것이다. 그래서 "국정권 직원 압력으로 조계사 행사가 취소됐다" "안상수 대표 외압으로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이 됐다"라는 논리가 통하는 것이다.

동국대와 불교를 쑥대밭으로 만든 소위 '신정아 사건'은 여러모로 이번 봉은사 사태와 닮았다.

신정아 사건은 종단내 계파간의 갈등이 외부로 터져나와 대통령 선거를 앞 둔 시점에 정쟁의 도구가 됐다. 불교계의 내재적 한계로 터져나온 귀한(?) 재료를 당시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은 절묘하게 이용했다.

동국대 이사들간 세력 다툼 과정에서 신정아씨의 허위학력 문제가 제기되고 급기야 청와대의 핵심 인사인 변양균 실장의 개입설이 흘러나왔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졌고, 불교계의 국고조보금이 도마 위에 올랐다.

신정아씨의 허위학력 사건 외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는 이미 불교계는 만신창이가 됐다. 현재 동국대는 사건의 단초를 제공한 예일대를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진행 중이다. 동국대가 승소하더라도 무너진 명예는 회복할 수 없다. 지금도 불교계는 국고보조금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불자 공직자들도 사찰이나 스님 일 도우기를 꺼려하고 있다는 여론이 팽배하다.

봉은사 사태는 직영사찰 전환을 둘러싼 명진 스님을 비롯한 봉은사와 총무원간의 감정대립에서 촉발했다. 이 과정에서 명진 스님은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자승 스님에게 한 발언을 공개했다.

야당은 연일 성명이나 논평을 통해 한나라당의 비도덕성을 질타하는 등 조계종 내부 문제가 정치쟁점화 되고 있다. 총선에 악영향을 미칠까 한나라당은 방어에 급급하다. 명진 스님은 총무원은 물론 중앙종회까지 신뢰할 수 없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이어나가고 있다. 명진 스님의 발언은 '총무원장이 여당 대표에게 종교탄압적인 소리를 듣는 것도 모자라 합종연횡의 산물인 중앙종회가 거수기 역할만 했다'는 소리로 들린다.

이번엔 진보적 시각의 언론과 민주당 등 야당이 가세한 점이 신정아 사건과 다를 뿐이다. 불교계의 일을 정치도구화한 것도 신정아사건 때와 다르지 않다. 템플스테이예산 관련 정책협의회 자리였다는 보도에 따라 이웃종교에서 템플스테이 예산을 보는 시각은 곱지 않을 것이다. 더 심각한 후푹풍이 일 것으로 보인다. 또 한번 만신창이가 될 불교 걱정에 다리가 후들거린다는 불자들이 많다.

총무원의 적극적인 자세가 사태 해결의 열쇠다. 직영사찰 지정 과정에서 부족했던 소통 과정을 참회해야 한다. 명진 스님이 외치는 목소리와 그 이면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안상수 대표 발언이 사실이라면 총무원은 때늦은 감이 없지않지만 공개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 직영사찰 지정을 마치 주지 자리 싸움으로만 보는 편협한 시각에 대해 충분한 설명과 근거자료도 내놓아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해의 골이 깊어지고 종단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다. 종교계로부터 마음의 평화를 얻어야 할 속인들이 종교계 내부를 걱정하는 모순을 언제까지 되풀이할 순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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