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섬 제주도’란 말처럼 3월의 제주에는 평화가 한가득 내려앉았다.

평화는 포근한 솜이불처럼 온 제주를 감싸 안고, 오름은 저마다의 위치에서 초록의 자태를 뽐낸다. 그 아름다움에 취해 정신이 혼미할 정도다.

싱그러운 봄을 알리는 오름에 오르니 붉은 송이가 눈에 들어온다. 그 빛깔이 붉어, 피를 연상시키는 송이. 제주도민의 붉은 피를 먹고 자란 것 같아 봄날의 아름다움을 보자면 자꾸만 가슴이 아파온다.

그렇기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평화의 섬, 제주의 봄날은 너무도 잔인하다. 대정읍 생활개선회의 ‘역사문화 현장 탐방’은 이러한 모순적 감정을 일깨우며 시작되었다.

평화의 터에서부터 시작한 역사유적지 탐방은 4․3의 기억으로부터 시작했다. 대정 지역의 아픔을 한땀한땀 온몸에 수놓으신 양신하 선생님의 증언이 보태어져 더욱 실감나는 행보였다.

오좌수 의거비 걸쳐 알뜨르비행장과 일제의 잔해인 지하벙커에 들어갔다. 축축한 공기가 무겁게 깔려있었다. 전쟁터의 모습을 상상했다. 나도 모르게 오싹해졌다.

섯알오름 양민학살터에서는 죽어가는 젊은 청년들의 울부짖음에 어미로서, 부인으로서, 자식으로서 그 때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흐느낄 수밖에 없었다.

백명의 조상을 한꺼번에 모셔야만 했던 현장, ‘백조일손지묘’에서 경건한 참배를 마치고 대정향교와 개죽은 못, 추자 김정희선생 유배지, 구시홀 생태습지, 그리고 유네스코인증 쥘다기를 견학하며 일정을 끝냈다.

역사유적지 탐방을 마치고 많은 대화가 오고갔다. 한 회원은, 알뜨르 비행장 근처에 밭이 있어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면서도 이런 아픔이 있는 줄 몰랐다며 아침마다 경건하게 참배 드린 후 일을 시작해야겠다면서 다짐했고, 타지에 나가 살고 있는 자녀들이오면 꼭 한번 데려오고 싶다는 회원도 있었다.

무관심 속에 깊숙이 잠겨만 있던 제주의 역사가 오늘 탐방을 계기로 수면위로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아픈 기억이라도 그것을 마주하는 일은 몇몇 학자에게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본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 너, 우리 모두가 역사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냉소적인 도시, 그곳은 희망이 없는 철저한 이방인의 도시일 뿐이라는 것을 오늘 우리는 깨달았다. 죽은 자들을 위해 증언하는 것, 그리고 그 기억과 마주하려는 노력은 살아남은 자들의 의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더 이상 아픈 상처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오늘과 같은 기회가 많아지길 바라며, 또한 역사에 대한 뜨거운 감성을 갖고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들이 많아지길 기대하며 미숙한 감상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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