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의 완전한 해결, "이제 됐다"고 할 때까지... 이낙연 국무총리의 약속
유족 손녀의 손편지 글에 뜨거운 눈물 흘린 생존 희생자... 주변 모두 눈시울 붉어져

▲ 손녀 정향신(오른쪽) 씨의 가족사 낭독에 제주4.3 생존 희생자인 김연옥(가운데) 씨가 슬픔을 참지 못해 목 놓아 흐느끼고 있다. 다른 생존희생자(왼쪽)도 김 씨 곁에 다가와 위로해주고 있다. ©Newsjeju
▲ 손녀 정향신(오른쪽) 씨의 가족사 낭독에 제주4.3 생존 희생자인 김연옥(가운데) 씨가 슬픔을 참지 못해 목 놓아 흐느끼고 있다. 다른 생존희생자(왼쪽)도 김 씨 곁에 다가와 위로해주고 있다. ©Newsjeju

1948년 당시 7살이었던 소녀는 부모님 손을 잡고 불타는 마을을 떠나 매일 밤마다 도망다녀야만 했다.

끝내 잡혀간 곳은 서귀포 정방폭포 인근 수용소.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와 남동생 모두 끌려가는 도중 소녀는 돌담에 머리를 부딪쳐 기절해 쓰려졌다. 그렇게 가족 모두를 잃어야 했던 8살 어린 소녀는 이제 백발이 되어 2019년 4월 3일 제71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 행사에 참석해 목 놓아 울었다.

제주4.3 생존 희생자 김연옥(1942년생) 씨의 손녀인 정향신(23,여) 씨가 자신이 쓴 손 편지를 읽어 내려가자 참아왔던 울음이 터진 것이다. 김 씨는 손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전해질때마다 손수건으로 연신 흐르는 눈물을 훔쳐내며 어머니와 가족들을 불렀다. 

가족사 낭독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온 손녀는 할머니의 손을 맞잡고 슬픔을 달래려 애써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럼에도 김 씨의 눈에선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김 씨 주변에 앉아있던 배우 유아인이나 이정미 정의당 대표, 도올 김용옥 선생 등도 코 끝이 붉어지는 게 보였다.

다른 생존희생자도 김 씨에게 다가와 위로의 말을 건냈다. 흐느끼고 있는 김 씨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있던 많은 기자들도 코를 훌쩍거리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야 했다.

제주4.3 사건의 생존 희생자가 겪어야 했을 그 당시의 아픔과 그때부터 여태껏 살아왔던 날들에 대한 회한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전해질 수밖에 없던 현장이다.

▲ 제주4.3 사건 생존 희생자 중 한 명인 김연옥 씨가 4월 3일 제71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에서 손녀의 가족사 낭독에 슬픔을 참지 못해 눈물을 흘리고 있다. ©Newsjeju
▲ 제주4.3 사건 생존 희생자 중 한 명인 김연옥 씨가 4월 3일 제71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에서 손녀의 가족사 낭독에 슬픔을 참지 못해 눈물을 흘리고 있다. ©Newsjeju

아래는 손녀 정향신 씨가 낭독한 김연옥 씨의 가족사 전문.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정향신입니다. 1942년생인 김연옥 할머니의 손녀고, 제주시에 사는 대학생입니다. 오늘은 4.3 유족이자 후유장애인인 저희 할머니 얘기를 해 드릴게요. 

할머니에 대해 몰랐던 게 너무 많았습니다. 할머니가 글을 쓸 줄 모르셨더라고요. 세뱃돈 봉투에 제 이름 정향신 세 글자를 써 주셨던 2년 전 그 사실을 처음 알았어요. 할머니 머리에 애기주먹만한 움푹 파인 상처가 있는데요. 그게 4.3 후유장애였다는 것도 작년 4월에야 알았어요. 심지어 10살 때까지 신발 한 번 못 신어본 고아였다는 사실도 믿기 힘들었고요.

저희 할머니는 보시다시피 아주 고운 분이시랍니다. 얼굴도, 마음도요. 오늘은 검은색 저고리에 흰색 치마를 입으셨지만, 사실 제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항상 화사했어요. 또 할머니는 혼자 바닷가에 자주 나가셨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우리 할머니는 바다를 참 좋아하시는구나 라고만 생각했었죠. 차마 믿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할머니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오빠와 동생이 하루 아침에, 땅도 아닌 바다에 던져져 없어져버렸다는 사실은... 당시 할머니는 고작 8살이었는데. 
 
여러분, 혹시 ‘헛묘’를 아시나요? 4.3 이후 할머니는 어릴 적 10년 세월을 대구에서 부산으로, 다시 서울에서 제주로 헤맸어요. 한강에서 빨래도 하고 아이스깨끼도 팔며 그렇게 악착같이 살았대요. 그러다 꽃다운 18세가 되어 제주로 내려 오셨어요. 제주에서 살아야 부모님을 잊지 않고, 또 내가 누구 자식이고 누구 딸인가를 기억할 것만 같았서요. 친척 삼촌과 함께 시신도 없는 그런 헛묘를 지었답니다. 그래서 매년 그렇게 정성스럽게 벌초를 다니셨나 봅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고기를 안 드세요. 부모, 형제가 모두 바다에 떠내려가 물고기에 다 뜯겨 먹혔다는 생각 때문이었대요. 어릴 때부터 참으면서 멸치 하나조차 먹지 않았다는 사실도 저는 최근에야 알게 되었죠. 할머니는 그러셨어요. 

“나는 지금도 바닷물 잘락잘락 들이쳐 가민 어멍이영 아방이 '우리 연옥아' 하멍 두 팔 벌령 나한테 오는거 닮아. 그래서 나도 두팔 벌령 바다로 들어갈뻔 해져...” 

할머니의 바다를 이제야 알게 됐습니다. 너무 미안해요, 할머니. 할머니 삶에 그런 끔찍한 시간이 있었고 멋쟁이 할머니가 그런 아픔에서 살고 계셨는지 몰랐어요. 

오늘 이 자리에 오기 전에야 할머니에게 물었어요.  

“할머니, 할머니는 이제 바라는 게 뭐예요?”

마지막으로 우리 할머니의 마음을 대신 전해보려고 합니다. 

“나는 어멍 죽은 거, 물에 떠 댕기는 거... 그런 거만 생각허멍 살았주. 나 어린나이에 어떤 가슴으로 어멍 아방 시께를 하고, 소분을 댕겨져신지. 우리 어멍 아방, 할망 할으방... 아직도 피 묻은 옷 입엉 이시카부덴, 저승갈 때 입는 옷 새로 지어당 산 앞에서 태워드리고 해나서. 우리 어멍네 이런 내 마음 다 알아졈실건가... 우리 부모네 4·3에 경 억울하게 죽지만 않아시믄, 학교 공부도 하고, 누구한테 지지 않게, 살아져실 거 닮아. 그 4·3사건만 아니여시믄 나는 지금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말도 잘 하고, 어디 관공서에 이신 사람들처럼 당당하게... 경 살아져실거 닮아... 이제까지는 억울한 마음만 들어나신디... 그래도 이렇게 나 살아난 얘기 우리 향신이가 다 들어주난, 이제는 속이 다 풀어진거 닮아...”

에필로그
할머니. 할머니는 울 때보다 웃을 때가 훨씬 예뻐요. 그러니 이제는 자식들에게 못해준 게 많다고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할머니는 그 힘든 시절을 묵묵히 견뎌 온 멋진 사람이에요. 
할머니, 저랑 약속해요. 이제는 매일 웃기로..
오늘 4.3 추념식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들, 지금까지 우리 할머니의 이야기를 존중해주고 경청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 이낙연 국무총리가 이날 제71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추념사를 낭독하고 있다. ©Newsjeju
▲ 이낙연 국무총리가 이날 제71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추념사를 낭독하고 있다. 이낙연 총리는 제주도민들이 "이제 됐다"고 할 때까지 제주4.3 문제 해결에 끝까지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Newsjeju

그간 정부는 지난 2000년에 처음으로 '제주4.3 특별법'을 제정하고, 2003년에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선 최초로 제주를 방문해 공식 사과했다. 허나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론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2014년에 제주4.3 희생자 추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고, 2018년에서야 그간 중단됐던 암매장 유해발굴 조사가 재개됐다. 현직 대통령의 추념식 방문은 12년만에 이뤄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다시 한 번 제주도민들에게 사과했다.

이후 올해엔 제주4.3 생존수형인(18명)에 대한 불법 군사재판 재심 청구 공소기각 판결이 나면서 죄 없이 감방에 갇혀 '전과자'로 찍혔던 낙인이 걷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제주4.3 사건에 따른 문제는 남아있다. 국가의 공권력 횡포에 의해 희생된 것이 분명하기에 당시 희생자와 그의 유족들에 대한 명예회복 및 배·보상 문제가 이뤄져야만 한다.

김 씨의 사연처럼 이제 남아있는 생존 희생자는 112명(2018년 8월 기준)뿐이다. 대다수가 80대 이상의 고령자 분들이어서 지체할 여력이 없다. 

▲ 이날 제71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각 당 대표들. 왼쪽부터 자유한국당 황교안, 정의당 이정미, 손학규 바른미래당,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정동영 민주평화당. ©Newsjeju
▲ 이날 제71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각 당 대표들. 왼쪽부터 자유한국당 황교안, 정의당 이정미, 손학규 바른미래당,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정동영 민주평화당. ©Newsjeju

이날 제주를 방문한 각 당 대표들은 모두 제주4.3 특별법 개정에 한 목소리로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내용을 담은 '제주4.3 특별법 전부 개정안'이 지난 4월 1일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심사 보류됐다.

이 때문에 제주4.3 유족들과 제주시민사회에선 정치권에 대한 반발과 성토가 거세지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보다 더 힘써야 한다는 것에 동조한 듯, 이날 이낙연 국무총리는 "제주도민들이 '이제 됐다'고 하실 때까지 4.3의 진실을 채우고, 명예를 회복해 드리겠다"며 "희생자 유해를 발굴하고, 실종자를 확인하겠다"고 약속했다.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지원도 확대하겠다고 덧붙였다. 무산됐던 '국가 트라우마 치유센터' 설립과 배·보상 등 입법을 필요로 하는 문제에 대해선 국회와 협의해 정부의 생각을 제시하겠다고도 공언했다.

제주도민들이 "이제 이만하면 됐다"고 할 때까지 제주4.3 사건의 완전한 해결이 가능하긴 할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기대감을 갖게 하는 '책임자'다운 발언이다. 그 약속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또한 모르지만 정권이 바뀐다해도 계속 이어져 나가길 바라는 건 전 제주도민의 마음이기도 하다.

제71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이들이 제주4.3 영령들에게 헌화와 분향하고 있다.
제71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이들이 제주4.3 영령들에게 헌화와 분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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