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안허우꽈?] 88화, 다시 만난 빛
[펜안허우꽈?] 88화, 다시 만난 빛
  • 차영민
  • 승인 2019.05.19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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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민 작가의 역사장편소설
▲차영민 역사장편소설<펜안허우꽈?>. ©Newsjeju
▲차영민 역사장편소설<펜안허우꽈?>. ©Newsjeju

비명은 금방 사라졌다. 대신 발바닥을 심히 긁어대는 진동이 소리로 바뀌어 귀를 파고들었다. 방금 터져 나온 비명은 어느 순간, 미세한 신음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 이게 무슨 일인가!”

내 앞에 그는 소리쳤지만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조금 전보다 더 큰 진동이 흙먼지와 함께 내 몸을 벽 쪽으로 밀어냈다. 눈앞에 당장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손을 뻗어 바닥을 훑었으나 온통 흙과 까끌까끌한 돌멩이만 가득했다. 몸을 일으켰으나 정수리에 뭉툭하고 뾰족한 것이 닿았다. 허리를 반쯤 숙이고 반 발자국씩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것도 잠시, 더 이상 갈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손을 뻗었으나 커다란 바위가 버티고 있었다. 앞쪽도 양옆도, 그리고 몇 발자국 걸어왔던 뒤쪽도 마찬가지였다.

“누, 누구 있소.”

몸을 돌리려던 순간, 누군가 내 발꿈치를 툭 건드렸다. 분명 사람 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어떠한 형체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내 손이 앞에서 움직인다는 느낌만 겨우 받았을 뿐. 다시 움직이려 했으나 또다시 발꿈치를 건드렸다.

“사, 살려주시오.”

분명 목소리를 들었고, 발꿈치도 건드렸건만 도무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 앞으로 한 발자국 나갔다. 손을 더듬어, 가로막는 큰 바위를 일단 붙잡았다. 다른 손으로 조금 더 높은 곳에 튀어나온 부분을 잡았다. 힘껏 온몸을 끌어올렸다. 살짝 발이 바닥에서 붕 뜨긴 했으나 금방 손이 미끄러지고 말았다. 다시 바위를 붙잡고 몸을 끌어당겼다. 조금 더 바닥에서 올라가는 듯하더니 또다시 떨어지고 말았다.

“어찌 혼자만 살려고 하는 거요.”

다시 그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려 아래쪽으로 살피니, 어렴풋하게 사람의 형상이 보였다. 팔을 슬쩍 뻗었다. 손끝에서 콧김이 스쳤다. 나도 모르게 온몸이 부르르 떨렸고 옆으로 슬쩍 물러났다.

“애초부터 여길 살려고 들어와선 안 될 일이었지.”

그의 한숨이 내 발앞에 닿았다. 도대체 누구냐고 물었더니. 여기서 그저 그렇게 살아왔던 사람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무엇보다 허리 아래쪽이 답답하다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일단 붙잡았다. 거의 뼈만 잡히는 수준이었으나 거기서 나오는 힘은 보통이 아니었다. 끌어당겼지만 오히려 그쪽으로 이끌리는 게 아니던가. 다시 한 번 더 힘껏 당겼지만 돌아오는 건, 귀를 날카롭게 찌르는 비명이었다.

“아무래도 깔린 모양이오. 내 이럴 줄 알았지.”

다시 한 번 그를 잡아 당겨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내 손을 놓았다. 대신 갑자기 흐느끼는 게 아니던가. 그렇다고 딱히 더 다가가고 싶진 않았다. 

“그래, 살 사람은 살아야지. 나가고 싶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가 내 얼굴을 볼 리는 만무했다. 대신 헛기침을 일부러 내뱉었다. 그의 손이 발등을 두드렸다.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나다가 벽이랑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다. 머리가 울려서 어떤 얘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밟고 가시게.”

정확히 마지막 말만 귀에 들어왔다. 두 눈을 크게 떠보니 어렴풋하게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형상이 드러났다. 괜찮겠냐고 물었다. 다시 한 번 끌어당겨 보겠다고 했으나. 얼른 밟고 올라가라는 말만 했다. 일단 그의 두 손을 오른발로 밟았다. 바로 손을 뻗어 뭉툭하게 튀어나온 부분부터 꽉 붙잡았다.

“조심해. 날카로운 것들도 있으니까.”

발밑에서 올라온 말이 무섭게, 더 위의 것을 쥐다가 소리를 내질렀다. 손바닥이 쓰라렸고, 뜨거운 것이 흘러나왔지만 놓을 순 없었다. 당장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는 게 없었으나 위로 손을 뻗는 족족 잡을 만한 것들은 있었다. 그만큼 미끄럽고 온몸에 힘이 풀리기도 했으나, 그럼에도 힘을 빼지 않았다. 이를 꽉 깨물고, 그것도 모자라 입술이 터질 만큼 악다물고 오르고 또 오르니, 바위 꼭대기 평평한 곳까지 다다랐다. 여전히 사방에 보이는 건 없었다.

“거기서 해가 뜨는 방향으로 파야 하네!”

밑에서 그의 목소리가 올라왔다. 그런데 여기서 해가 뜨는 방향은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짐작할 수 없었지만 코앞에 있는 벽을 손으로 짚었다. 흔들거리는 부분을 떼니 흙이 잡혔다.

“시간이 없네. 서둘러!”

다시 그의 목소리가 올라오기 무섭게, 바닥이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저 아래서 쿵, 돌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냐고 소리쳤더니.

“어서 서두르라니까!” 라는 대답이 메아리처럼 내 주변을 맴돌았다. 몸은 이미 흔들렸고, 흙은 계속 파내긴 했지만 제법 단단했다. 얼마나 더 파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조금 전 떼어낸 돌로 찍어내고 파냈다. 중간에 또 다른 돌이 딱 버티는 게 아닌가? 아무리 찍어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사이 내 몸은 왼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서서히 기울어진 쪽으로 미끄러지니, 손이 다급해졌다. 파내던 흙에서 자리잡은 돌부터 두 손으로 잡아당겼다. 그러나 쏟아지는 건, 흙이 아니라 이마에서 줄줄 흐르는 땀이었다. 닦을 새도 없이 또다시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깊게 박힌 돌을 빼내자마자 흙이 쏟아지듯 따라 나왔다. 그곳에는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만한 구멍이 있었다.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닥이 재빠르게 기울어졌다. 구멍으로 빨려들 듯 일단 몸을 집어넣었고, 그 사이 거대한 진동과 함께 소리가 울려퍼졌다. 아래에 있는 그가 괜찮을지 목소리를 틔웠다.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들어왔던 곳으로 나갈 수도 없었고.

웅크린 상태에서 팔을 반쯤 뻗었다. 흙과 함께 풀이 잡혔고, 그대로 당겼다. 우수수 흙이 배 위로 쏟아졌는데 눈앞에 빛이 보였다. 분명 저건 햇빛이었다. 몸에 흙을 걷어내 일어났다. 빛을 향해 조금씩조금씩 기어 올라갔다. 손에 잡히는대로 꽉 붙들었고, 너무 좁아서 온몸이 찢어지듯 긁히긴 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손이 미끄러져도 도로 내려가진 않았다. 모든 정신을 내려놓고 이를 꽉 깨물고 오로지 빛만 올려다보며 나아갔다. 드디어 사방이 온통 햇볕으로 뒤덮인 공간까지 올라왔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밝아서 오히려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온몸이 쓰라렸지만 일단 누워서 숨을 골랐다. 바로 그때였다, 내 주위로 그림자들이 하나둘 드리우기 시작했다.
(계속) 

▲소설가 차영민. ©Newsjeju
▲소설가 차영민. ©News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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