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영민 작가의 연재 장편소설

▲차영민 역사장편소설<펜안허우꽈?>. ©Newsjeju
▲차영민 역사장편소설<펜안허우꽈?>. ©Newsjeju

그들은 내 이름을 불렀다. 귀가 의심스러웠지만. 분명했다. 그림자로 드리워 얼굴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으나, 누군지는 알 것만도 같았다. 순간, 숨을 크게 내뱉었다. 그들의 부축에 다시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주변을 둘러싼 다섯 남자의 얼굴이 명확하게 들어왔다.

“살아있어서 다행이외다.”

그중 한 사람은 구면이었다. 나와 직접 가깝게 지낸 건 아니고, 장인이 자주 불러서 술을 청하던 자였다. 도성을 지키는 일개 군관이었지만. 장인과 독대해서 만나는 일이 많았던 예사 인물은 아니었다. 그런 자가 바로 내 앞에 있다니.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함께 온 이는, 그와 함께 움직이던 도성의 일개 군관들이었다. 물론 내가 개경에 있었던 기억만으로 말이다.

“어른께서 근심이 깊었소이다. 어찌 소식이 닿아, 직접 내려오게 되었소.”

참, 듣던 중 새삼스럽게 반가운 소식이었다. 장인께서 여태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니. 그와 동시에 부인의 소식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거의 죽은 줄 알고 상까지 치르려고 했다나. 장인이 절대 세상을 쉽게 떠나지 않을 거라는 만류에, 반쯤 죽은 듯 살아간다는 내용이었다. 기별조차 넣을 수 없는 사정이니, 장인이나 부인에게 면목이 없는 노릇이었다. 

“어째, 몰골이 흉측하다 못해 알아보기도 힘들겠소이다.”

그는 내게 감자를 건넸다. 본능에 가깝게 허겁지겁 입에 욱여넣다가 목이 막혀서 뒤로 휘청거렸다. 크게 기침했을 땐 목구멍에 걸렸던 게 그대로 바깥에 쏟아져나왔다. 다시 주워먹으려 손을 뻗었으나 그가 말렸다. 대신 물로 목을 축이고서야 조금은 차분하게 숨부터 골랐다. 

“어찌 내려오긴 했는데. 돌아갈 방도가 막막하더이다.”

그러니까. 나도 그게 궁금했다. 여길 어떻게 내려왔단 말인지. 일단 이들과 함께 다른 곳으로 움직이면서 얘기를 들어보았다. 이들은 삼별초에 포섭된 상선의 짐꾼으로 잠입했고. 한동안 남해 인근만 떠돌다가 이번에 탐라까지 내려왔다. 그 시간까지 제법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동안 삼별초는 남해안 일대를 다시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쪽에 사람이 더 필요한 건 어쩔 수 없었을 터. 어찌 탐라에 물자를 갖다 줄 일이 일어 내려오긴 했으나. 

“저놈들, 보통내기가 아니더이다.”

탐라 포구에 내려오자마자 기다리는 건, 삼별초 군사였다고. 무작정 짐꾼과 몇몇 사람들을 끌어내리더니 고려군이 아닌지 잡아 족치기 시작했다는 것. 그만큼 고려 구석구석에 자기 사람들을 심어놨다는 증명이기도 했다. 결국 배에서 내리자마자 삼별초에게 붙들린 자들은 거기서 바다로 내쳐지고 말았다. 불행이라면 그들은 고려군과 상관없었다는 점이지만. 그래서 다행인 건 나랑 같이 있는 자들은, 아직 의심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느낌상, 이것마저도 오래갈 게 아니었지만.

“그놈들이 눈치챈 건 아닌지.”

그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타고 왔던 배는 삼별초가 거의 빼앗듯 장악해둔 상황. 언제 다시 출항할지는 알 수 없었다고 했다. 더구나 배에 탔던 사람들을 하나씩 조사하겠다는데, 이들은 몰래 빠져나온 것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이들의 몰골도 나 못지않게 말이 아닌 상태였다. 그럼에도 우연히 나와 만난 건, 정녕 하늘이 도와서 그런 걸까?동굴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못 믿는 눈치였다. 그 전의 일들도 소상히 밝혔으나 다들 웃기만 했다. 그렇게까지 했는데 지금 멀쩡히 걷는 모습을 믿지 못 하는 눈치였다. 내가 바로 살아있는 진실이라 했건만, 아예 정신이 좀 나간 사람 취급하기도 했다. 아무렴 어뗘랴, 탐라에서 나를 진정으로 살려 줄 사람들과 만나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들과 함께 걷는 길은 막연했다. 계속 숲이 이어졌고, 저 멀리 바다가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어떻게든 여길 빠져나가야 해야겠는데.”

그는 나와 만나기 직전까지 일행과 함께 주변 작은 포구들부터 살펴보았다고 한다. 아무리 살펴봐도 작은 배만 있었고, 그마저도 삼별초의 감시 때문에 구해볼 엄두도 낼 수 없었다고. 어쨌든 여길 나가려면 배가 유일한 방법이긴 했다. 문제는, 당장 어디서 몸을 숨기냐 이것이었다. 숙소는커녕 먹을 것도 조금 전 먹다 뱉은 게 마지막이란 걸 듣고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걷는 내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걷다가는 어떻게 될지 정말 장담할 수 없었다. 명확한 대책이 필요했다. 그때쯤, 저 멀리 큰 불빛들이 보였다. 몸을 숨기며 천천히 다가가 보니. 그곳이었다. 높은 곳에 요새처럼 자리 잡은 새로운 성. 불과 얼마 전까지 그곳에 있을 때만 해도 허허벌판이었건만 돌로 높게 쌓은 성곽의 모습이 갖춰졌다. 횃불을 든 삼별초 군사들이 성벽 위에서 경계를 서고 있었다.

“적의 중심지 아니오?”

김통정과 주요 병력은 모두 저곳에 있을 터. 어서 발길을 돌려야 한다고 재촉하였다. 그들은 나와 생각이 달랐다. 말로만 들었던, 새로운 성이 있다는 사실을 역시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분명, 김통정은 용장산성에서 겨우 도망친 패잔병들 아니었던가. 그들이 탐라를 완전히 장악한 것도 모자라 성까지도 새로 지어 놓은 모습 그 자체를 두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 했다.

“직접 들어가서 봐야겠소.”

놀란 건, 그의 한마디였다. 나머지도 일단 동조는 했으나 각자 얼굴빛이 달랐다. 하지만 딱히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주변에 마을이 있긴 하나, 괜히 돌아다니다 삼별초 군사들과 맞닥뜨리는 것도 딱히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계속 여기저기 피해 다니다 보면 어떻게 될지 역시 장담할 수 없었다. 오히려 저들의 소굴로 들어가는 것, 거기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것. 지금으로선 현명한 선택이리라. 그길로 곧장 성문으로 찬찬히 다가갔다.

“누구냐!”

성문 앞에 다다랐을 때, 삼별초 군사들의 시선이 모두 우리 쪽으로 향하였다. 우린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무조건 살려달라는 말만 내뱉었다. 성문이 열렸고, 몇몇의 군사들이 쏟아지듯 나왔다. 코앞에 드리운 창 끝에 식은땀이 흘렀으나. 여기서 저것이 찌를 것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혹여 나를 알아보진 않을까 싶었으나 딱히 그것도 아니었다. 우린 그 자리에서 삼별초 군사들에게 붙들려 성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무엇이 어떻게 있는지 전혀 예상하지 못 한 채 말이다. (계속) 

▲소설가 차영민. ©Newsjeju
▲소설가 차영민. ©Newsjeju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저작권자 © 뉴스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