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지법, 어린이집 보육교사 살인사건 1심 선고

▲ 제주지방법원. ©Newsjeju
▲ 제주지방법원. ©Newsjeju

이른바 '제주판 살인의 추억'이라 불리는 제주 어린이집 보육교사 살인사건과 관련해 재판에 넘겨진 전직 택시기사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면서 사건은 다시 미궁으로 빠졌다.  

11일 오후 2시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정봉기 부장판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등살인) 혐의로 기소된 전직 택시기사 박모(50)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경찰과 검찰이 제시한 증거들이 범행을 입증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사건이 발생한 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2월 1일 새벽. 어린이집 교사였던 피해자 이모(당시 27세, 여)씨는 제주시 용담동에서 남자친구를 만나고 난 뒤 택시를 이용해 제주시 애월읍 구엄리 소재 집으로 향하던 중 종적을 감췄다.

사건 발생 5일 후인 그해 2월 6일 제주시 아라동에서 이 씨의 핸드백이 발견됐고, 이틀 후인 2월 8일, 이 씨는 제주시 애월읍 인근의 한 배수로에서 하의가 벗겨진 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사건 발생 8일만이다.

당시 경찰은 택시기사였던 박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으나 증거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서 그를 풀어줘야만 했고 사건은 장기미제건으로 남았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제주판 살인의 추억'이라 불렀다.

그러는 사이 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이후 경찰은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한 이른바 '태완이법'이 시행되자 2016년 2월, 이 사건을 포함해 미제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기 위해 미제사건팀을 꾸렸다.

내로라하는 전국 경찰청의 프로파일러도 소집했다. 하지만 사건의 실마리는 쉽게 풀리지 않았고 경찰 수사가 오락가락하는 사이 시간은 지체 없이 흘러갔다. 박 씨도 이미 제주를 벗어난 지 한참 지난 뒤였다.

그러던 중 경찰은 지난해 결정적 증거를 확보했다며 법원으로부터 체포 영장을 발부 받고 경북 영주에서 사흘간의 잠복 끝에 박 씨를 붙잡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경찰은 박 씨를 검거할 당시만 해도 "피해자의 몸에서 당시 피의자 박 씨가 착용했던 옷의 실오라기를 발견했다"며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법원은 "수사과정에서 피의자 택시 외의 다른 용의차량에서도 피해자가 입었던 무스탕의 동물털과 유사한 섬유가 발견되기도 했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구속영장 기각 이후 경찰은 "과학수사 기법을 동원해 재수사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 기존 증거를 다시 분석해 추가 증거를 수집 하겠다"고 밝혔고 학수고대하던 소기에 성과를 얻는 듯 했다.

검찰은 지난해 5월 18일 1차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후 전담 수사팀을 꾸려 담당 경찰관들과 함께 철저한 보강 수사를 벌이고, 그해 12월 21일 2차 구속영장을 신청한 끝에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 받아 박 씨를 구속했다.

이후 검찰은 "동선과 미세섬유 등은 박씨가 범인이라는 실체적 진실"이라며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강간하려다 실패하자 목을 졸라 살해하고, 차가운 배수로에 방치해 사회적 격리가 필요하다"며 박 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180도 달랐다. 1심 재판부는 경찰이 당시 압수한 피고인의 청바지에 대해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경찰이 피고인이 당시 거주하던 모텔에서 업주로부터 청바지를 임의제출 형식으로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임의제출에 따른 압수는 형사소송법 규정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또한 "사형과 무기징역만 법정형으로 규정된 강간살인죄와 같은 중대범죄 수사를 위해 필요성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위법한 압수수색은 허용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피해자가 피고인의 택시에 탑승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신체에서 피고인과 피해자의 옷에서 전혀 발견되지 않은 미세섬유증거가 검출돼 피해자가 사망 전에 제3자와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피해자와 인상착의가 비슷한 여성 승객을 태웠다는 다른 택시기사의 제보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미세섬유증거에 대한 감정결과 피해자의 신체에서 피고인의 의류에서 검출한 미세섬유증거와 유사한 진청색 면섬유가 검출됐는데 대량으로 생산, 사용되는 진청색 면섬유의 특성상 진청색 면섬유가 피고인의 상의의 구성섬유와 동일하다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즉 미세섬유증거 분석결과만으로 피고인이 피해자와 접촉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일부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점이 있고, 통화내역을 삭제하는 등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으나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이 됐다고 볼 수 없어 무죄를 선고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재판부의 판단에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검찰은 "증거의 증명력 판단에 관해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항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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