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곽씨 입에만 의존, 핵심 증거 인정 못받아
ㆍ‘공소장 변경’ 수모… 강압수사 의혹까지
ㆍ‘정치검찰’ 비판 확산, 거센 후폭풍 예고

한명숙 전 국무총리 뇌물수수 의혹 사건의 1심 재판이 검찰의 완패로 끝났다. 재판부는 검찰이 내놓은 증거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리한 진술을 얻어내기 위한 무리한 수사가 있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검찰은 김준규 검찰총장 취임 후 벌인 최대의 특수수사에서 무죄가 선고됨에 따라 ‘정치검찰’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고, 책임론도 불거질 것으로 예상된다.

◇ 판판이 깨진 검찰의 논리 = 진술만 있고 물증이 없는 뇌물사건에서 판단의 가장 중요한 근거는 뇌물공여자 진술의 신빙성이다. 뇌물로 제공된 금품의 출처와 돈을 주고받을 당시의 구체적 정황도 함께 입증돼야 유죄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검찰이 한 전 총리를 기소하면서 제시한 핵심적인 증거나 정황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 수사가 그만큼 부실했다는 의미다.

실제 곽영욱 전 사장의 진술은 오락가락했다. 한 전 총리에게 전달했다는 뇌물 액수는 10만달러, 3만달러, 5만달러로 계속 바뀌었다. 돈봉투도 “한 전 총리에게 건넸다”고 검찰 조사에서 말했다가 법정에서는 “의자에 놓고 나왔다”로 변경했다.

뇌물사건은 이처럼 공여자의 진술이 번복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에 대비하는 것이 수사의 기본이다. 하지만 검찰은 아무 준비도 돼 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검찰에 공소장 변경을 권고했다.

뇌물자금의 출처, 은행거래 실적, 환전기록, 돈심부름을 담당한 전달자 확보 등 폭넓은 정황증거 수집도 필요하지만 역시 부족했다. 검찰은 대신 한 전 총리와 곽 전 사장의 친분관계를 입증하기 위해 골프채 선물과 제주 골프콘도 사용 사실 등을 내세웠다. 하지만 재판부는 공소 사실과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판단조차 하지 않았다. 검찰 입장에서는 헛수고를 한 셈이다.

◇ 재판부, 강압수사 가능성도 인정 = 검찰은 횡령 혐의로 곽 전 사장을 구속한 뒤 정치자금을 제공한 정치인 이름을 확보하기 위한 수사로 확대했다. 곽 전 사장은 검찰이 심야에 불러 정치인 관련 조사를 실시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조사가 아니라 면담이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검찰 해명을 수긍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오히려 검찰이 곽 전 사장을 압박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곽 전 사장이 뇌물 공여 사실을 부인할 때는 검찰 수사가 심야시간으로 이어졌고, 시인할 때는 수사 시간이 극명하게 짧아졌다는 점까지 근거로 들었다.

곽 전 사장으로부터 유리한 진술을 얻는 대신 일부 혐의에 대한 수사를 축소했을 것이라는 ‘빅딜’ 가능성도 인정됐다. 검찰은 횡령 혐의로 대한통운의 전직 사장 2명을 기소했지만 균형이 맞지 않았다. 검찰은 곽 전 사장의 경우 횡령액 83억원 중 개인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본 37억8000만원에 대해서만 기소한 반면, 이국동 전 사장의 경우에는 사용처와 관계 없이 조성한 비자금 229억원 전부를 횡령한 혐의로 기소했다. 재판부는 “곽영욱이 이 사건 뇌물공여 진술을 하게 된 것이 (이런 사법처리와)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검찰의 허술한 수사는 재판 과정에서도 여러 차례 드러났다. 검찰은 공판에서 불리한 진술을 한 것으로 해석되는 총리공관의 경호원을 위증 혐의로 재수사했다. 오찬 당일 음식 서비스를 맡은 호텔 직원에게는 수사관을 보내 검찰 출석을 종용했다. 경호원 등 주변 인물에 대한 수사는 한 전 총리를 기소한 지 1개월 이후에 진행해, 뒷북수사 비판이 제기됐다.

특수부 검사 출신 변호사는 “김준규 검찰총장 취임 후 실시된 최대의 특별수사인데 기초적인 증거 수집이 너무 부실하게 진행됐다”면서 “어떤 목적으로 수사를 했고 검찰 수뇌부는 이런 수사를 왜 방관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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