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곽씨 진술에 의존 오락가락·증거부실
ㆍ“애초에 공소유지 자체가 문제였다”
ㆍ수뇌부·수사팀 인책론까지 제기돼


한명숙 전 국무총리 뇌물수수 의혹사건이 검찰의 완패로 끝나면서 ‘김준규호(號)’ 검찰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신사다운 수사’를 하겠다는 김준규 검찰총장의 약속과 달리 재판 과정에서 진술 강요와 별건(別件) 수사 등 구습이 되풀이됐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수뇌부와 수사팀에 대한 인책론이 자연스레 흘러나오고 있다.

김 총장은 지난해 9월 대전에서 열린 전국 검사장 회의에 참석, “과거의 수사관행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자백을 받기 위해 피의자를 몰아붙이는 ‘강압수사’와 피의자의 혐의가 드러나지 않을 때 다른 사건으로 수사를 압박하는 ‘별건수사’를 금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한 전 총리 뇌물수수 의혹사건에서 검찰은 이 두 가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먼저 유리한 진술을 얻기 위해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을 압박한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밝혀졌다. 또 조서는 검찰에 유리한 부분만 선택적으로 기록한 사실도 드러났다.

곽 전 사장은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는지 여부에 대한 진술을 계속 바꿨다. 액수도 10만달러, 3만달러, 5만달러로 오락가락했다. 그러나 검찰조서에는 3만달러를 인정한 부분부터 기록돼 있다. 검사가 전주고 출신 정치인들에게 돈 준 사실을 추궁한 것도 조서에는 없다. 이 같은 ‘취사선택’ 조서는 재판부로 하여금 진술의 임의성(자유의지에 따라 자백했는지)을 의심케 했다.

곽 전 사장이 진술하는 내용에 따라 조사시간이 달라졌다는 점도 재판부에 의해 지적됐다. 검찰은 곽 전 사장이 돈을 안줬다고 진술했을 때는 새벽 2시까지 면담을 강행했다. 하지만 5만달러를 줬다고 진술한 날에는 오후 6시30분에 일찌감치 조사를 끝냈다.

검찰에 불리한 증언을 한 총리공관 전 경호원 윤모씨는 재판 도중 ‘위증혐의’로 수사를 받기까지 했다.

뇌물사건 1심 선고를 하루 앞두고 불거진 불법 정치자금 수사는 전형적인 ‘별건 수사’라는 지적이다. 검찰은 공판 중 제보가 들어온 ‘신건(新件) 수사’라는 입장이지만, 한 전 총리를 타깃으로 한 저인망식 수사의 결과물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판결선고 일주일 전부터 본격적인 소환조사에 들어가고, 하루 전에 관련업체를 압수수색한 것은 한 전 총리를 압박하기 위한 카드였다는 것이다.

과거의 수사관행을 바꾼다면 수사가 더욱 과학적으로 이뤄져야 하지만 그렇지도 못했다.

뇌물사건의 경우 뇌물의 출처·전달방법·용처 삼박자가 세밀하게 입증돼야 유죄판결이 나온다. 하지만 검찰은 불안정한 곽 전 사장의 입에만 의존해 5만달러가 어디에서 생겼고, 어떻게 전달됐으며, 어디에 썼는지를 전혀 입증하지 못했다.

검찰이 주장한 뇌물전달 방법도 지나치게 자의적이라는 평가다. 검찰은 현장검증에서 곽 전 사장이 의자에 놓은 5만달러를 3~4초 안에 한 전 총리가 서랍장이나 핸드백에 넣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는 총리경호 관행이나 공관 구조 등에 비춰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올해 법무부 업무보고에서 “3심까지 무죄가 선고된 사건에 대해서는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 검사들은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수사에 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귀남 법무장관도 “사건 처리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서 무죄가 나온 검사에 대한 인사조치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검찰 내부에서도 ‘공소유지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평가를 받은 이번 사건 수사팀과 수뇌부에 대한 인사조치 가능성이 있다는 게 안팎의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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