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주 철학박사, (사)제주참여환경연대 이사

▲ 이길주 철학박사. ©Newsjeju
▲ 이길주 철학박사. ©Newsjeju

필자는 2012년 2월부터 강정에서 상담을 몇 년간 진행했다. 상담에 참여했던 주민은 많지 않았다. 처음엔 강정 주민들이 상담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여유 있는 시간을 만들 수없는 상황이었다. 일하다가 사이렌이 울리면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현장엘 가야했고, 집안일도 해야 했다. 해군기지건설과 함께 그들의 삶은 불안과 찬반을 둘러싼 갈등 그리고 언론을 통해서 그들의 입장이 왜곡되는 상황 모두가 그들에겐 폭력이었고, 그 폭력에 맞선 주민들이 겪은 트마우마는 심각했고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본 필자는 제2공항예정지 내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똑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주민들이 마음에 완충작용이 될 수 있는 기제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 (사)제주참여환경연대와 함께 성산 주민들을 대상으로 인권 교육·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프로그램은 제2공항이 건설되면 직접적인 영향이 있는 난산리, 수산리, 신산리로 선정하였다. 프로그램은 각각의 마을에서 9회기로 진행하며, 그 내용은 1-3회는 ‘나와 나의 관계’, 4-6회는 ‘나와 너’, 7-9회는 ‘나와 사회’에 관한 주제로 구성하였다. 프로그램 진행방식은 각 주제를 가지고 각자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듣는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 또는 수정하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타자에 대한 공감력을 키우고, 자신의 현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함이다.

토지는 인간의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토지는 경제적인 논리로만 그 가치를 매길 수 있는 것일까? 제2공항 예정지내의 주민들에게 있어서 토지는 삶 그 자체였다. 주민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토지가 주는 다양한 의미를 알아보자.

벌초문화

“제2공항이 들어온다고요? 안됩니다. 이 마을이 없어지는 거잖아요. 조금 남는 땅엔 철조망을 친다고 하는데... 마을이 없어진다는 건 조상대대로 내려왔던 조상님도, 산소도 없어지는 겁니다. 묘도 다 이장해야 하고 그러면 벌초하는 친척모임도 없어질 겁니다. 문중자체도 없어지고 제사 모실 때도 단독으로 제사지내야 하고, 마을이 없어지면 명절 때 차례는 어디서 하고 친척들은 다 어디서 모입니까? 설령 공항이 생겨 이사를 가도 맨날 공항이야기만 하게 되고 명절분위기가 나겠습니까? (제2공항이 생기면) 다들 힘이 없으니까 결국 졌구나하고 생각할 것 같아요. 국책사업이라는 명목 하에 인식이 그렇게 자리잡혀 왔기 때문에 당연하다는 식인데 그게 잘못이죠.”(40대 남성)

제주의 벌초행사는 제주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위의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민들의 벌초 즉 선조에 대한 생각은 각별했고, 선조를 모시는 일은 그들에게 있어서 친인척간의 교제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얼마 전만 해도 제주엔 벌초방학이 있을 정도로 벌초할 시기가 되면 모든 친척이 모여서 날을 정해 벌초를 한다. 돌로 담을 둘러 만들어진 무덤은 또 하나의 제주만이 지닌 풍습이자 문화자원이기도 하다. 벌초는 어려웠던 시절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어렵게 마련한 선조들의 묘지를 잘 모시고 있다는 그들의 자긍심의 표현이자, 마을 공동체를 단단하게 하는 화합의 장이기도 하다. 결국 공항을 만들기 위해 마을을 없앤다는 것은 제주의 전통문화를 파괴하는 행위이며 가족공동체를 파괴하는 행위이고, 지금 도에서 추진하고 있는 향토문화를 복원시키고자 하는 목표와도 역행하는 행위이다.

한국은 전통문화유산을 지키고 계승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고 있다. 전통문화유산이라 학술적, 경관적으로 보존가치가 있고, 향토문화, 토속, 풍속 등을 연구 또는 보존 관리할 필요성이 있는 것, 또는 동식물, 광물 등 지질학적, 생물학적 생성물과 그 밖의 자연현상으로 향토유적으로서의 보존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고, 제주 역시 제주의 향토문화를 복원하겠다고 막대한 세금을 사용하고 있다. 전통문화유산은 선조들이 살아왔던 흔적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이다. 즉 전통은 사람과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오랜 세월 살아온 흔적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일은 해당지역의 특수성을 밝히고자 하는 일이고, 최근에 전통문화유산을 보전하고 복원하려는 움직임은 도시화되어가는 흐름 속에서 전통의 중요성과 전통이 관광자원이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전통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고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해당지역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이어지는 행동양식이나 마을단위로 이루어지는 어떤 행위인데 천 년 이상 이어진 마을을 파괴하여 제2공항을 만든다는 발상은 이 지역의 전통과 풍습을 파괴한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고향의 품

“젊을 때 일을 하다가 IMF때 빚만 지고 빈털터리로 여기 들어왔어 여기 오니까 선배들도 그렇고 삼촌들도 그렇고 의지가 많이 됐죠. 동네 분들이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살아진다, 살아진다’ 해주고. 6개월 정도는 집에서 나오지도 않고 사람들 만나는 것도 싫었지. 내가 빈털터리가 되었을 때 올 곳이 여기 밖에 없는 거야. 처음 한 6개월은 두문불출하고 집에만 있었지. 6개월 정도 지나자 동네 선배가 집에 찾아와서 이렇게 있으면 어떻게 할거냐고 하더라고요.
처음에 찾아왔을 때는 귀찮았지요, 왜 왔지? 안 왔으면 좋겠는데... 근데 선배가 여러 번 찾아오면서 어울리게 되었고, 그 때가 여름이었는데 바다에 같이 가자해서 낚시도 다니고. 그렇게 선배도 만나고 후배들도 만나기 시작하니까, 아무 의욕도 없던 내가 먹고사는 것도 걱정되고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이렇게 어울리면서 청년회 활동도 하고 동네 삼촌들도 만나고 하다보니까 열심히만 하면 살아진다고 격려를 해주셨죠. 그래서 밤엔 대리운전하고 낮에 노가다 하고, 용역도 다니고 동네 밭일 해달라고 하면 밭일도 하면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지. 동네에선 선배나 후배가 충고를 해도 진정성 있게 느껴지는데 시에서 생활할 때는 일 때문에 만난 사람이고 또 취미생활로 만난 사람이었는데, 내가 빈털터리가 되니까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고, 친하던 사람도 전화 한 번 없더라고요.”(50대 남성)

남성의 이야기는 공동체 즉 고향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잘 나타내고 있다. 1997년 12월 발생한 IMF로 인해 한국사회는 절망의 벽에 선 사람들이 많았다. 그 예로 1998년 한 해 동안 자살자 수는 8,622명으로 시작되어 2002년엔 1만3천55명에 달했다. IMF당시 자살 원인은 빈곤 및 사업실패가 주된 요인이었고, 남성보다 여성의 자살률이 많은 세계적인 통계를 비교하면, 남성 자살률이 여성의 2.6배에 달했던 당시 얼마나 많은 가장들이 위기에 몰렸었는지 알 수 있다. 위에 언급한 주민분도 당시 자살하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겐 돌아갈 고향이 있었고, 마을 분들은 그에게 살고 싶다는 의지를 불어넣었다. 당시에 자살한 많은 분들에게 일자리가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역할은 정부도 도정도 아닌 마을 공동체였다. 오래된 시골엔 도시와는 다른 마을사람들의 유대관계가 있다. 그의 생활을 보면 6개월 정도를 두문불출했다고 하는데 마을사람들이 없었다면 그의 은둔생활은 더 이어졌을 것이다. 은둔생활을 하는 사람을 밖으로 나오게 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 방증으로 현재 정부에선 은둔형 외톨이 사업을 진행 중인데, 은둔자를 밖으로 나오게 하는 일은 전문가들도 힘들어 한다. 선배들이 오는 것도 싫어했던 그가 은둔생활을 마감하고 사회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표면적으론 선배이기에 거절할 수 없었지만, 그 안에는 어릴 때부터 이어진 유대감과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배꼽친구

“공항이 들어와 이 마을이 없어지면 친구들과 함께했던 추억과 우정이 진행형에서 과거형으로 되어버릴 겁니다. 마을이 없어지면 안돼요. 그들은 배꼽친구예요. 애기 때부터 같이 살면서 지금까지 지내온 친구와 사회친구는 틀리잖아요. 이곳 친구들이 날 생각해주는 것도 틀리고 사회에서 만난 친구는 그렇게 막 편한 친구가 안 되지요. 우린 서로 말을 편하게 할 수 있고 그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도 알 수 있지. 마을이 없어지면 조금 있는 땅 가지고 그거 팔아 그 돈 가지고 집 밖에 더 삽니까? 그리고 50이 다되었는데 이 나이에 어디 가서 취직을 합니까? 여긴 밀감이라도 팔고 택배도 하면 농약 값이라도, 용돈이라도 되는데 도시에 살면 그런 것도 어수게. 이 나이에 어디가서 취직을 합니까? 저는 서울서 다른 일 하다 왔는데, 다시 가기 싫지.”(40대 남성)

어른이 되어서 만들어진 우정이란 쉽지 않다. 사회에서 친구를 만들기 위해선 매번 나를 설명해야 하고 매번 신뢰를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친구관계는 이미지만으로도 편안함을 주는 존재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경쟁 속에서 만난 관계에서는 찾기 어려운 존재인 것이다. 굳이 선인들의 말이나 심리학자들을 말을 인용하지 않아도, 친구가 없는 사람이 불행한 일이 닥치거나 위기에 처했을 때, 다른 사람들 보다 훨씬 고통스러워한다. 상담해보면 많은 내담자들 중엔 자신의 상황이 어려워졌을 때 속내를 보일 수 있는 사람이 없어 극단으로 치닫게 되는 사람들이 많다. 배꼽친구가 있다는 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든든한 보험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정부와 각 지자체에서는 막대한 예산을 상담에 할애한다. 실제로 도시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엔 상담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사람에 대한 불안이 많아서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정신적인 지주가 되는 마을 공동체는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보존되어야 할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마을을 파괴하여 제2공항을 짓는다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처사이자 주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업이다.

노후생활과 일자리정책

“지금 사람들은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모른다. 시골이라 말을 하면 금방 소문이 나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살았는데, 그래도 밭일하면서 사람들의 이야길 듣다보면 나만 고생하는 게 아니라고 다들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게 위로가 되었지. 지금도 그 사람들하고는 말을 안 해도, 옆에만 있어도 편안하지.”(70대 여성)

“시골에선 80살이 넘어서까지 일하지. 동네에서 검질 매 달라고 해서 일하면 돈도 받고, 집 앞 텃밭에 야채도 키우고 새싹이 나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파릇하게 나오는 새싹이 신기하기도 하고, 제주시에 가면 80이 넘은 날 누가 써줄거라. 자식들은 시에 와서 어멍이 좋아하는 거 하면 될 거라고 하지만, 난 여기서 자유롭게 사는 게 좋아. 여긴 작아도 내 집이고 텃밭에서 일도 하고 경로당에 가서 화투도 치고, 친구 집에 놀러도 가고 옛날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지금까진 일만하느라 몰랐는데 이렇게 자유롭게 사는 게 얼마나 좋은지 이제야 알았다. 난 시에 가서는 못살아.” (70대 여성)

“난 절대로 마을을 떠나고 싶지 않다. 내가 도시로 다시 가게 되면 수명이 단축될 거야. 왜냐하면 도시에 가면 아파트에 살아야 할 건데 아파트에선 옆집사람 얼굴도 모르고 살지. 지금은 텃밭도 돌보고 가끔 밀감도 따러 가서 돈도 벌고 사람들도 언제나 만날 수 있는데, 도시에 가면 그게 안 되잖아. 아마 난 도시로 이사를 가면 벽만 보고 살게 될 것 같고, 그러다 보면 우울증도 생길 것같아. 치매예방교육을 하러 오신 선생님은 친구들과 이야기도 많이 하고 활동도 해야 치매가 예방된다고 하는데, 우울증이 생기면 무기력해지고 모든 게 하지 싫어지거든. 그럼 우울하게 살다가 치매가 생기고 그러다가 빨리 죽을 것 같아, 그래서 난 제2공항은 반대야.” (80대 여성)

“난 우리 아들이 정년퇴직하고 오면 밀감 밭 하면서 같이 살기로 했어. 아들이 올 때 까지 여길 지켜야 돼. 그리고 제주시에 가면 다 낯설어서 싫어. 여긴 구석구석 뭐가 있는지 알잖아. 제주시에 가면 뭐하고 살거라게? 제주시에 가보면 뭐든 비싸고 여기선 텃밭이 있으니 고기나 쌀만 사서 먹으면 되지만 제주시에 가면 뭐든 사먹어야 하는데 난 안사고 참을 것 같다. 난 도시에 가면 일도 못하고 갑갑해서 못살 것 같아. 여기선 밭일도 하고 해서 돈을 모아 손주들 용돈도 주고 했는데 도시에 가면 뭐하며 살거라. 70살이 넘은 사람이 일할 곳도 없고, 여기선 80이 넘어도 다들 일을 하는데, 시에 가서 살면 일도 못하고 그러면 몸도 더 아플거고 그러다 빨리 죽을거라게.”(70대 여성)

마을은 어르신들에게 정신적인 면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면에서도 든든한 지지집단이다. 텃밭은 먹거리를 제공하고 노인들에게 자칫 부족할 수 있는 활동량을 늘려주기도 한다. 오랜 세월동안 함께 해온 이웃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마을에는 도시의 노인들이 겪는 소외감과 외로움 대신, 삶의 경험에서 나오는 재치와 어려운 삶을 극복해온 자들의 여유로움까지 보인다.

어르신들은 불편한 건강상태도 나이를 들어가면서 느끼는 소외감, 외로움, 상실감도 비슷한 경험과 삶을 함께한 이웃을 보면서 위로를 삼는다. 노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를 보면 도시의 노인에 비해 시골의 노인들의 경우 자신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높게 나온다. 객관적으로는 도시에 살고 있는 노인들이 건강하지만, 시골에 살고 있는 노인들 스스로는 자신이 건강하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다는 결과다. 시골에 살고 계시는 노인들은 정신이 건강하다는 이야기이다. 어르신들이 건강하게 사시는 비결은 지지집단의 유무와 관련되어 있다. 마을 공동체는 강한 유대감, 모여살고 있다는 특성, 경로당의 순기능과 아파트와는 다른 개방적인 주택구조가 어르신들의 삶에 활력이 되는데, 난산리, 수산리, 신산리야말로 지지집단이 어르신들의 삶을 지탱해주고 있다는 걸 잘 알 수 있다.

한국은 65세 이상의 인구가 14%를 넘어 유엔이 정한 고령화 사회로 많은 문제를 지니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노인들의 삶의 만족도 저하인데, 이는 경제적인 기반이 없는 노인들이 일자리에서 배재되고 그로 인해 경제적인 궁핍으로 이어지는 것이 주된 원인으로 해석되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는 그 심각성을 인지하여 노인일자리 창출에 막대한 예산을 사용하고 있지만, 일자리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일자리의 질도 떨어져 만족도가 크지 않은 점이 또 다른 문제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예정지 내의 경우를 보면 온평리를 포함한 4개 마을의 주소지로 등록된 총인구는 2019년 현재 4,331명으로 65세 이상은 1,305명으로 전체의 30.13%를 차지한다. 한국의 고령인구가 2018년 14%를 넘어서 고령사회로 진입한데 비해 이 지역은 초고령화 사회임을 알 수 있다.

25일 통계청이 공개한 ‘2019년 사회조사’를 보면 일과 가정생활 중 가정생활을 중시한다는 응답은 13.7%다. 노후생활비에 대해서 자녀·친척의 지원은 받는다는 비중은 31.4%에서 17.7%로 낮아졌다. 이는 지금까지 노인들을 가정이 돌봐왔다면 일을 중시하는 사회의 흐름상 노인들은 자력으로 살아가야 하고 실제로 자신의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힘든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어르신들이 많고, 앞으로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이런 사회적 흐름 속에서 마을공동체는 노인들의 정신적, 물질적인 문제를 지지할 수 있는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주민들에게 토지는 삶과 사람, 그리고 공동체 그 자체

주민들의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느낀 점은, 그들의 이야기엔 사람들이 있었다. 벌초도 고향도 우정도 노후생활도 오랫동안 함께 해온 사람들이 중심이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신뢰 속에 다져진 단단한 연결고리임을 알 수 있다. 그 연결고리는 개방적인 공간 속에서 -현관문을 닫아버리면 또 하나의 섬이 되어버리는 아파트와는 달리, 문을 열면 마당이, 텃밭이, 사람이 보이는 개방적인 공간- 오랜 기간 함께 동고동락했던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들에게 토지란 돈으로 환산되는 매매의 대상이 아니라 익숙한 공간이 주는 편안한 장소이자, 다양한 추억이 깃든 공간이며, 전통을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이자,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공간으로, 추억을 공유하고, 서로를 의지하고 살 수 있는 버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주민들에게 토지는 삶이고 사람이고 공동체이다.

마을공동체는 각박한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있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공간이다. 개인 중심의 삶이 전개되고 있는 도심지의 삶은 각자가 커다란 경제체제 안에서 부품으로 살아간다면, 시골의 삶은 외적으로는 배타적인 공간에 시대에 뒤떨어진 공간이라고 착각하지만, 마을이야말로 함께하지만 각자가 주체가 되어 생산적인 활동에 기반을 두면서 공생하는 공동체이다.

이러한 마을공동체가 붕괴되기 시작한 것은 식민지시대로 올라간다. 일본의 농민에 대한 수탈은 소작농의 증가와 농민의 빈곤, 일본식 제도와 문화이식 등으로 많은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야 했으며, 이로 인해 마을공동체는 급격하게 붕괴되어갔다. 광복이후엔 한국전쟁으로, 1960년대 이후엔 산업화, 도시화로 인한 대규모이동에 따른 인구이동으로 마을공동체 붕괴는 가속화되었다.

마을공동체 붕괴는 우리의 전통과 문화뿐만 아니라 각개인의 정체성 상실로도 이어진다. 인간은 소속감을 통해 정서적인 안정을 얻고 소속은 정체성으로 이어진다. 안정감은 자긍심 또는 자존감으로도 이어지며 타자와의 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최근 마을공동체가 각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한 각종 연구결과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 중에 특기할 사항은 마을공동체 붕괴는 범죄율이 높아지고, 심리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인성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이런 연구결과는 복지사업과 마을사업으로 이어져 전국적으로 마을공동체 살리기에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한번 붕괴된 마을공동체를 살리기란 쉽지 않고 막대한 예산과 시간이 걸려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국가는 시민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존재한다. 즉 각자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국가는 시민들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국책사업이란 이유로 5,000명이 넘는 주민들에게 고향을 빼앗고 일터를 빼앗고 친구관계를 빼앗고 있다.

국책이란 미명아래 일제식민지 시대에 마을공동체를 파괴하고, 농민을 도시의 주변으로 내몰아 난민을 만들었던 일본의 폭력은 오늘날에도 경제발전이란 명목으로 진행되고 있다. 과장된 표현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기업 또는 국가의 식민지가 되어 마을공동체가 붕괴되고 해당지역의 사람들을 또 다시 몰아내고 있는 것이다. 난민은 전쟁으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마을에서 쫓겨나 도심지의 주변을 맴돌고 새로운 환경은, 그들에게 불안한 심리상황을 만들고 경제적인 측면과 인간관계에서도 난민을 만들어낸다고 할 수 있다.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고 어떤 정치가도 주민들에게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공약을 한다. 단 한 명의 시민도 부당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를 만들겠다던 정부는 5,000명의 주민들은 시민이 아니란 말인가?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은 무엇인가? 마무리는 주민의 이야기로 하려고 한다.

“당사자 입장에서 생각 안 하면 멀리서 상대방은 공항생기니까 좋겠구나, 관광객 많이 들어오고 일단 뭐 관광수입 창출되고 제2의 홍콩처럼 잘 살겠지, 이렇게 해버리면 산업도 활성화 되고 땅값도 올라가고 좋을 것 같지만 그게 아니야, 당사자들은! 어디 가서 정 붙이고 살긴 살겠지만 마을 자체가 없어진다는 건 결국 고향은 없어지는 게 맞습니다. 마을에서 쫓겨나가야 하는 게 인권이 없는 거고, 인권이 없으니까, 삶이 없어지고 마을 자체가 없어지니까. 그게 딱 맞아 떨어지는 게 아닙니까?”(40대 남성)

※ 주민들의 발언내용은 그들의 동의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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