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영민 작가의 역사장편소설

▲차영민 역사장편소설<펜안허우꽈?>. ©Newsjeju
▲차영민 역사장편소설<펜안허우꽈?>. ©Newsjeju

홍다구,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방경의 목에 겨눈 칼자루를 더욱더 꽉 쥐었다. 뻘건 핏기가 드러났다. 얼굴이 시뻘게진 김방경은 잠시 주먹을 쥐었지만 다시 심호흡과 함께 눈만 질끈 감았다, 

“여기서 많은 희생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건 내가 판단할 문제다.”“성벽은 무너뜨려서 넘는 게 아닙니다.”
“네놈이 감히 나를 가르치는 게냐!”

두 사람의 대화에 몽골군과 고려군의 모든 시선이 모여들었다. 대화를 이어갈수록 김방경은 목소리가 차분해졌고. 반면 홍다구는 점점 눈을 시뻘겋게 끓어올렸다. 오히려 옆에 있는 몽골군 군사들이 직접 다가와 만류할 정도였다. 하지만 결정은 바뀌지 않았다. 다시 전열을 정비했고, 고려군을 선봉으로 진격이 시작되었다.

김방경은 목에 맺힌 피를 닦아내며 직접 군사들과 함께 달려나갔다. 이번에도 성벽 너머로 화살과 돌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쓰러지는 군사들도 순식간에 성벽 앞마당을 뒤덮었다. 몽골군이 주춤하는 동안 고려군은 더욱더 성벽과 가까워졌다. 드디어 성벽을 타고 오르는 군사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사이 쓰러진 군사들이 훨씬 더 많았다. 몽골군도 방패를 앞세워서 따라붙었지만 역시 꿋꿋하게 그 전열을 유지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대장군, 퇴각하셔야 하옵니다!”

몽골군 부장이 홍다구에게 다가갔지만. 퇴각 깃발은 올라가지 않았다. 오히려 고려군 본진의 진격을 명하였다. 덩달아 나도 화살이 쏟아지는 성벽 앞으로 한 발자국씩 다가가고 있었다. 눈앞에서 쏟아지는 화살들, 그리고 쓰러지는 군사들. 다리에 힘이 풀릴 지경이었지만 뒷사람이 계속 밀고 있었다. 그 역시도 더 뒤에서 밀고 있으니 어쩔 수 없었을 터. 어쩔 수 없었다. 손에 창을 꽉 쥐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소리를 크게 질러보고, 입술도 부르트도록 꽉 깨물기도 하고.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건, 성벽을 타고 오르다가 떨어지는 고려군사들 뿐이었다. 바로 발 앞에 덜어지는 돌들도 함께였다.

“퇴각하라!”

몸이 굳어버리려던 찰나, 김방경이 소리쳤다. 홍다구 쪽에서는 어떠한 신호도 보내지 않았지만 고려군은 재빠르게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몽골군이 방패진을 치고 퇴각로를 막아냈지만. 그것마저도 과감하게 밀어내었다. 바로 그때, 성문이 열리는 게 아니던가. 그곳에서 삼별초 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성벽 위에서 돌을 던지던 노인과 아이들이 아니었다. 기골이 장대한 장정들이 성벽 앞에 정교한 진을 치고 있었다. 놀란 건, 김방경보단 몽골군 쪽이었다. 방패로 진을 치던 몽골군은 급히 본진으로 물러났고, 고려군도 마찬가지였다. 그 와중에 나 역시도 본진 군사들과 함께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뭣 하는 건가!”

홍다구는 김방경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대답은커녕 아예 고개를 돌릴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사이 삼별초 쪽에서 다시 사람들이 나왔는데. 군사가 아니었다. 탐라 사람들이었다. 성벽에서 돌로 맞섰던 노인과 여인네 그리고 아이들이었다. 그들도 길게 진을 쳤고 한 발자국씩 나아오기 시작했다. 

“절대 대응해선 안 된다!”

바로 달려들려는 고려군에게 김방경이 손짓을 하였다. 이를 보던 홍다구가 갑자기 앞으로 치고 나오더니. 몽골군을 앞으로 불러내었다. 고려군은 길을 내어 주었고, 어느덧 몽골군과 삼별초가 직접 대치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반드시 책임을 물을 걸세!”

김방경을 한 번 더 흘겨보던 홍다구는 곧장 군사들과 함께 달려가기 시작했다. 말발굼소리와 함께 비명이 쏟아졌다. 특히 아이들의 목소리는 고려 군사들 조차 눈을 못 뜨고 서 있을 정도였다. 삼별초도 방패막이처럼 앞세운 사람들 너머에서 창과 화살도 대응했고, 성벽 위에도 궁수들이 화살을 쏟아붓고 있었다. 기마대를 앞세운 몽골군은 좀처럼 삼별초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을 넘어서질 못 하고 계속 쓰러지고 있었다. 오히려 점점 더 밀리는 추세였는데, 바로 그때 김방경이 신호를 주었다. 

“저놈들을 성벽 안으로 밀어넣어라!”

한마디만 내뱉고 가장 앞장서서 진격하였다. 고려군이 다가가자, 삼별초가 점점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나도 함께 다가갔지만 방금 내뱉은 김방경의 명이 이상했다. 분명 알아서 나온 삼별초를 왜 쓰러뜨리지 않고 안으로 밀어 넣으라고 했을까? 어째 고려군은 진격은 했으나 같이 화살로 맞대응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각자 방어 태세를 유지하고 계속 한 발자국씩 나아갈뿐. 

몽골군이 성벽에 더 가까워지자 땅에서 불기둥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한 번에 동시다발적으로 타오르는 불길은 순간 성벽을 완전히 가로막을만큼 높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몽골군의 기마대가 뒤엉킬 때쯤, 삼별초가 성문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드러났다. 고려군이 뒤쫓긴 했으나 이미 문이 닫힌 상태였고, 삼별초 앞을 지키던 사람들은 모두 바닥에 쓰러진 상태였다. 결국 홍다구는 퇴각 신호를 보내고 말았다.

군영에 돌아오자마자 홍다구는 김방경을 불러내었다. 모두 보는 앞에서 발길질로 배를 걷어차는 게 아니던가. 고려군사들이 움찔했지만. 재빨리 손을 뻗어 말린 건, 김방경 본인이었다.

“어찌 그리 노하셨습니까?”
“그걸 말이라고!”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네놈이 생각하는 때는 언제더냐?”
“최소한 지금은 아니란 말씀입니다.”

이번에는 칼을 뽑으려는 홍다구를 김방경이 재빠르게 손으로 막아내었다. 얼핏 양손으로 붙드는 모양새였지만. 내 눈에는 빠른 손짓으로 그를 제압하는 게 분명했다. 홍다구는 순간 눈짓으로 주변을 살피더니 칼자루에서 손을 거두었다. 결국, 어떻게 성벽을 넘을지에 대해 합의도 보지 못 한 채, 일단 각자의 구역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어느덧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일단 나도 잠시 눈을 붙이려는데, 부장이 조용히 다가와 손짓했다. 그를 따라나선 곳은 다름 아닌 김방경의 막사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군사들은 하나도 없었고 웬 여자아이가 훌쩍거리는 게 아니던가. 바로 김방경의 옆에서. 예닐곱 살은 되어 보이는데, 얼굴은 검게 그을렸고 옷은 다 해져서 너덜거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몸에 지독한 썩은내가 풍기고 있었다. 그 와중에 눈물과 콧물까지 범벅이 되어 퉁퉁 부은 얼굴은 도저히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특히 발등 곳곳에 돋아난 핏자국은 꺼멓게 눌어붙기도 했다. 그에게 김방경은 일단 마실 걸 권하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손짓했다. 이 앞에 앉아보라고.

“어서 오게.”

누군지 선뜻 물어보진 않았다. 하지만 그를 쳐다보는 김방경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그런데 왜 여기서 나를 부른 걸까? 저 아이는 도대체 누구인가? (계속)

▲소설가 차영민. ©Newsjeju
▲소설가 차영민. ©News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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