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안허우꽈?] 97화, 아이의 전략
[펜안허우꽈?] 97화, 아이의 전략
  • 차영민 작가
  • 승인 2020.01.26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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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민 작가의 역사장편소설
▲차영민 역사장편소설<펜안허우꽈?>. ©Newsjeju
▲차영민 역사장편소설<펜안허우꽈?>. ©Newsjeju

아이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흙과 핏기로 시커메진 얼굴과 달리 눈망울이 맑았다. 마치 깊은 호수에 빠져든 것처럼. 잠시 멍하게 하는 사람을 멍하게 하는 기운이 서려있었다. 그 눈이 점점 붉어지더니 눈물을 천천히 끌어올렸다. 깊고 맑았던 눈망울은 어느덧 뿌옇게 번지고 말았다.

“죽입써.”

아이가 내 팔을 붙들었다. 아니, 살려고 여기까지 들어온 게 아니었던가? 어찌 저 어린것의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올 수 있는 건지. 옆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김방경이 눈짓과 함께 조용히 바깥으로 물러났다. 마침 내 옆에는 김방경이 슬쩍 내려놓은 칼이 하나 놓여 있었다. 

아이는 칼과 나를 번갈아보더니 온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일단 칼은 손으로 좀 더 멀리 밀어냈다. 대신 앞에다가 아이를 앉혀 놓고 마실 것부터 권하였다. 하지만 입은커녕 손도 갖다 대지 않으려고 했다. 잠시 내려보다가 어찌 여기까지 왔는지 물어보았다. 대답은 없었다. 계속 조금 더 떨어진 칼만 바라보고 있을 뿐. 다시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 바깥에서는 김방경의 헛기침 소리가 들렸지만 별로 들은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저 빤히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눈물이 메마른 아이의 볼에는 핏기가 더 넓게 번지고 말았다.  

“전 어젯밤에 죽어시난, 죽여줍써.”

아이의 목소리에 한껏 힘이 들어갔다. 도저히 뜻을 알 수 없었다. 어젯밤에 죽은 건 무엇이고, 지금 초면인 내게 죽음을 청한단 말인가. 속사정을 아니 들어볼 수가 없었다. 칼을 다시 내 곁으로 가져왔고, 정녕 죽고 싶다면 여기까지 온 연유에 대해 소상히 밝혀 달라고 청하였다.

“게민 고라주민 죽입써양.”

아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힘이 있는 듯했지만 끝으로 갈수록 힘이 빠지고 있었다. 더욱더 귀를 열고 목소리에 집중하였다. 듣자 하니, 원래 아이는 성안에서 살았다. 삼별초가 탐라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부모와 가족을 모두 잃고, 가까운 이웃이 거두어주었다고 한다. 대신 아기를 돌보게 되었는데, 탐라에선 아기업개라고 불렸다. 삼별초의 소개령에 이쪽으로 이주하게 되었는데. 하필 지난 전투 때 사람들과 함께 휩쓸렸다고 한다. 아기를 업고 있는데도 삼별초 군사들은 가치없이 고려군이 쏘는 화살 세례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그나마 아이는 팔에 몇 대만 스쳤고, 업고 있던 아기는 무사했으나. 삼별초가 퇴각하는 과정에서 아기의 부모가 고려군이 쏜 화살을 맞고 쓰러졌고. 아이는 서둘러 성문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문은 굳게 닫히고 말았다. 소리치며 문을 두드렸지만 반응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사이 고려군을 피하려고 얼른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아기의 울음이 멈추고 만 것이다. 

전투가 벌어지는데 물을 마실 곳이 어디 있었겠는가, 아이 혼자 몸도 감당하기 힘들었을 상황에 아기까지 제대로 챙기는 건 불가능이었다. 아이는 눈물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의 책임이라며. 어떻게든 성문 안으로 들어갔어야 했는데. 분명히 아기만은 살려보겠노라고 부모에게 약조하였는데. 그걸 못 지켰으니 살 이유가 없다는 것.

아이는 탁자에 얼굴을 파묻고 통곡에 빠지고 있었다. 숨이 넘어갈 듯 쏟아내는 울부짖음에 막사 주변이 군사들의 기운이 느껴졌다. 밖에서 김방경이 헛기침을 크게 하자, 서서히 발걸음이 물러나고 있었다. 아이의 손을 살짝 잡아당겼다. 그리고 말했다. 죽지 말라고. 너의 잘못이 아니니까.

“게민 누게가 잘못한 거꽈.”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눈을 빤히 쳐다보았지만 제대로 마주볼 수 없었다. 아이 뿐만 아니라 탐라 백성들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데에 콕 짚어서 누구만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나 역시도 그 책임을 완전히 피할 수 없었으리라. 그래도 무슨 대답이라도 해줘야만 했다. 말했다, 성문을 닫는 삼별초라고. 

아이의 눈빛이 뜨거워졌다. 피가 나도록 입술을 꽉 깨물던 아이는, 성문 너머로 삼별초를 반드시 응징하러 가겠노라 외쳤다. 꼭 우리가 그리하겠노라 말했으나, 아이는 고개를 내저었다. 절대 고려군과 몽골군의 힘으로만 성문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대신 그 방도는 자신이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방도가 무엇인가?”

그때 김방경이 다시 들어왔다. 아이는 잠시 주춤했으나 탁자 가운데 불을 가리켰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물었다. 불로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방법 자체는 간단했다. 성문에 불을 지피라고 열나흘 정도면 쇠가 녹아 문을 열 수 있다고.

“어찌 그걸 하란 말인가!”

김방경이 살짝 코웃음과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아이의 얼굴은 미동 없이 그대로 굳어 있었다. 다시 말했다.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김방경은 잠시 턱을 괴고 있다가, 군사를 불러 잠시 아이와 함께 밖으로 나가게끔 했다. 탁자에는 나와 단둘이 마주보고 있었다.

“아이가 말한대로 해야겠소?”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등장한 아이가 군사적인 방도를 알려줬는데. 그걸 무조건 따라하라고 할 수가 있나. 다만 절대 거짓말 같지는 않다고 하였다. 딱히 지금으로서 다른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현재 상황으로서는 성문은 굳게 닫혀 절대 열리지 않을 거 같았으니까. 

잠시 후, 막사에 몽골군 장수가 들어왔다. 김방경은 아이의 이야기와 함께 성문 앞에 불을 지피자고 권하였다. 돌아온 건 큰 웃음이었다. 몽골군 장수는 이걸 사령관께 알리면 김방경이 역모로 참할 수도 있다고 경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래도 김방경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유일한 방법이라면 일단 시도는 해보아야 한다고. 몽골군이 협조하지 않겠다면 최소한 방해는 말아달라고 청하는 느낌으로 통보하였다. 

“어디 마음대로 해보시오.”

몽골군 장수는 의자를 걷어차며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김방경의 안위가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하지만 김방경은 몽골군 장수가 나가자마자 군사들을 불렀다. 

“불을 지펴야겠다!”
(계속) 

 

▲소설가 차영민. ©Newsjeju
▲소설가 차영민. ©News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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