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영민 작가의 역사장편소설

▲  ©News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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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지폈다, 삼별초의 본거지로 들어가는 유일한 성문에. 누가 봐도 무모한 행동이었다. 직접 명을 내린 김방경도 반신반의하는 눈치였지만. 지금으로선 딱히 다른 방도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몽골군이 원하는 대로 계속 병력을 투입했다가는 성문은커녕 고려군 전체가 무너지리라는 판단이 있었다. 우회로 진입하는 방안도 검토해보았으나, 이곳은 요새였다. 지형 자체가 다른 곳으로는 쉽사리 진입할 수 없었고. 특히 대규모 병력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삼별초는 이쪽의 움직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삼별초의 내부는 살펴볼 수 없었다.

고려군 내부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컸지만, 정탐을 다녀온 군사들의 보고에 다른 방도를 내밀지 못 했다. 몽골군은 일단 여기서 물러나고, 완전히 고립시키자는 의견도 내놓았으나, 김방경이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저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없소!

결국 고려군은 성벽을 지키는 삼별초를 일단 물러나게 하고, 그 자리에 불을 지피게 하였다. 그조차도 쉽지는 않았다. 일단. 그간의 전투로 성문 주변은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였다. 그마저도 불을 지피러 가는 고려군이 삼별초와 산발적인 전투를 벌이면서 피비린내는 더욱더 짙어졌다. 전투 못지않은 희생이 발생했으나, 일단 시작했으니 김방경은 물러날 기미가 없었다. 몇 차례 전투로 일단 성문 밖의 주도권은 고려군 쪽으로 완전히 넘어와 있었다. 성벽 너머에서 돌과 화살이 간간이 날아들긴 했으나, 물량이나 정확도 면에서 허술한 수준이었다. 간간이 성벽 위로 올라오는 삼별초 군사들이 있었지만, 고려군의 견제에 금방 내려오곤 했다.

처음에는 아주 작게 피어오르던 불은 점점 성문을 완전히 가릴 정도로 치솟고 있었다. 고려군은 서로 번갈아서 불을 지켜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굳게 닫힌 성문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어찌 보면 불길이 성문을 보호해주는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불을 지키려다가 다쳐서 돌아오는 군사들이 속출하자, 고려군 내부에서도 조금씩 원성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몽골군은 계속해서 장수를 보내왔다. 김방경과 몇 차례 고성을 주고받고는 물러나곤 했는데. 그때마다 그 주변에 있었던 터라,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알 수 있었다. 어려운 내용은 아니었고, 도대체 왜 시간을 지체하냐는 항의이자 위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군량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물론 탐라 곳곳에서 모아오긴 했으나, 여기서 자체적으로 구할 수 있는 군량은 한계가 있었다.

더구나 바다를 건너서 뭐라도 와야 할 텐데, 아직도 소식이 없었다. 아마 처음 바다를 건너 본 몽골군은 고려군보다 더욱더 마음의 동요가 격심했던 걸로 보였다. 때때로 몽골군이 소규모의 군사들을 내보내긴 했으나, 딱히 성과는 없었다. 그들이 주장한 대로 우회 진입로를 찾는 듯했으나, 군사 열이 나가면 절반만 겨우 돌아오는 형세였다. 그들도 결국은 알고 있었다. 저 불길 너머 성문만이 유일한 통로라는 것을.

“하늘이 정해준 유일한 방도이올시다.”

김방경은 번번이 같은 대답으로 몽골군 장수들을 돌려보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날이 지날수록 몽골군 장수들의 방문은 더 잦았고 목청도 하늘을 찌를 듯 높고 거칠었다. 열흘쯤 되는 밤, 몽골군 장수들이 군사들까지 대동해서 김방경을 찾아왔다. 졸지에 고려 군사들은 군영에서 무장을 한 채 김방경 주위를 지키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불만 피울 작정이오!”

몽골군 장수 하나가 김방경에게 그을린 장작을 내던졌다. 이에 고려군이 모두 칼을 빼들었고, 따라고 몽골군도 모두 무기를 빼들었다. 그 와중에 김방경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목을 가다듬더니 미소까지 드러내는 게 아니던가. 그 모습에 몽골군은 물론이고 고려군 장수와 군사들도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전장에서 기다림은 고단수의 전략이오.”

어쩌면 그 이상의 대답은 나오지 않을 수 있었다. 몽골군 장수들은 모두 김방경에게 칼날을 겨누기 시작했다. 그에 대응하여 고려군도 몽골군사들을 에워싸며 칼끝을 들이밀었다. 그런데 여기서 김방경은 갑자기 칼자루를 바닥에 내던졌다. 아무것도 들지 않은 양손을 펼쳐보이며, 몽골군 장수들에게 한 발자국씩 다가가고 있었다.

“지금 뭐하는 거요!”

가장 앞에서 칼을 빼든 몽골군 장수가 조금씩 물러나고 있었다. 칼은 미세하지만 흔들렸다. 그리고 고려군은 점차 몽골군과 거리를 좁히기도 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서로 칼끝에 닿을 만큼. 하지만 누구도 섣불리 공격을 하지 않았다. 찬바람이 불었음에도 오히려 얼굴은 땀으로 뒤덮였을 뿐이었다.

“홍다구 장군을 만나야겠소.”

숨 막힐 듯 날이 선 침묵은 결국 김방경이 직접 깨고 말았다. 한마디에 모두 무기를 거둬들였고, 나를 포함한 약간의 고려군과 함께 몽골군 군영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몽골 군영에서는 홍다구가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손에는 자신의 얼굴보다 한참 큰 칼을 들고 있었고. 남은 손으로는 고기와 술을 게걸스럽게 집어 먹는 중이었다. 그 곁을 지키던 여인네들은 우리가 등장하자마자 서둘러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불 피우느라, 정신이 없는 줄 알았건만.”

홍다구는 코웃음과 함께 빈 술병을 김방경에게 던졌다. 거리가 조금 있어서 중간쯤 땅에 떨어지더니 산산히 조각나고 말았다. 김방경은 잠시 멈칫했으나 다시금 홍당구에게로 다가갔다. 그의 앞에 서서 다시 미소를 드러냈다.“어째 밤잠 못 이룬다는 소식만 듣고 있소이다.”“도대체 누가 그러던가, 자네 덕에 이리 편히 놀고 먹는 중이구먼.”

“전장에서 흐트러지면 먼저 목이 달아나는 법이지요.”

“누구처럼 한가로이 불만 피우는 것보단야 낫겠지.”“가만히 있어 주는 게 큰 공이 될 겁니다.”

“고려놈들을 믿을 수 있어야지.”“고려의 피를 억지로 빼낼 수 없을 노릇이겠지요.”

두 사람은 알 듯 말 듯한 이야기로 계속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이야기가 계속 이어질수록 깨진 술병이 김방경 주변에 쌓이기 시작했다. 마지막 병은 결국 김방경의 발등에서 깨졌고. 순식간에 몽골 군사들이 달려들어 포박하기 시작했다. 김방경은 저항하지 말라 명했고, 졸지에 따라온 고려군은 모두 몸이 묶여 그 자리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

“네놈이 고려놈이라, 저놈들의 살길을 터주는 것이냐?”

자리에 일어난 홍다구는 자신의 칼로 김방경을 향해 겨누었다.

“그건 장군의 과한 망상입니다.”“언제까지 불만 피우고 있을 작정인가. 모두 굶어서 쓰러질 때까지?”“장군이 허튼 것만 덜 먹으면 군사들이 며칠 더 굶진 않겠소만.”

“뭣이!”

홍다구는 칼을 높이 들었다. 그때, 바람이 강하게 불어오더니 그의 칼들을 흔들었다. 김방경은 눈을 크게 뜨고 앞만 바라보았고, 홍다구는 흔들리는 칼을 꽉 붙잡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계속)

▲ 소설가 차영민. ©News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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