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영민 작가의 역사장편소설

▲차영민 역사장편소설 '펜안허우꽈'. ©Newsjeju
▲차영민 역사장편소설 '펜안허우꽈'. ©Newsjeju

소문의 진상은 김방경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참이든 거짓이든 고려군사들의 동요가 일어난 게 더 문제였다. 진작 성을 함락해도 남을 시간이었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질 않았다. 직접 나서겠다는 김방경을 수하들이 극구 말리기 일쑤였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그 사이 소문에 소문을 덧대어 군사들을 더욱더 두려움으로 몰아넣었다. 심지어 몇몇은 군영을 이탈해서 아예 모습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니. 하루 사이에 김방경의 얼굴은 밤낮없이 어둠이 내리깔려 있었다. 그동안 몽골군 쪽에서는 공식적인 반응이 없었다. 다만 여러 소문 중 하나가, 몽골 군사들 몇몇이 역병에 걸려 고생한다는 것. 그렇다면, 내부를 미리 살펴보고 온 군사들의 말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라는 증거였다. 그것이 결국 저 안에 들어가면 역병에 걸려 살아나오지 못 할 것이란 소문을 사실로 만들어주었다.

“모두 전투를 준비하라!”

결국 김방경은 결정을 내렸다. 더 이상 지체할 그것도 아니었다. 성문은 눈앞에서 쓰러졌고, 삼별초 군사들은 일단 모습을 계속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작 고려군의 발을 막은 건, 몽골군이었다. 이번에는 부장들이 아니라, 홍다구가 직접 김방경을 찾아왔다. 막사 안으로 들어가서 두 사람이 마주 앉았는데. 나도 그 자리에 몇몇 장수들과 함께 자리를 지키었다.

“저곳은 군사들이 들어가기만 하면, 끝인데. 왜 망설이는가?”

홍다구가 등을 기댄 채 손바닥으로 탁자를 살짝 두드렸다. 

“어째서 우리만 계속 먼저 보내는 것인지. 의중이 궁금하오.”

김방경도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살짝 치켜드는 시늉이었다. 그때 홍다구의 얼굴이 살짝 붉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당신네들 땅인데 우리 손에 피를 직접 묻혀야겠는가?”“정녕 이곳을 탐하지 않습니까?”
“탐할 이유라도 있는지?”
“각별히 눈여겨 본 줄 알았사오만.”
“뭣이!”

두 사람은 점점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주변에 둘러 서 있던 고려와 몽골 장수들의 눈빛도 제법 날을 세웠다. 이 와중에 김방경은 살짝 웃음기를 드러내는 얼굴로 잠시 심호흡을 했다. 그 모습에 홍다구의 얼굴은 점점 더 붉게 올라왔다.

“그렇다면 확실히 해두지요. 저곳이 함락되면, 대장군의 군사들은 완전히 물러나는 거요?”

“상황에 따라, 내가 판단할 것이다. 당신이 염려할 문제가 아니지.”
“확실히 해두길 원합니다. 조정에서도 궁금해할 것인데.”
“우리 제국의 조정을 말하는 것이냐?”“저는 그저 오로지 한 분만을 모시오만.”

바로 그때 홍다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김방경이 재빨리 일어나 직접 그의 어깨를 붙들었다. 몽골군 군사들이 무기를 빼들려고 하자, 홍다구가 눈짓으로 제지하였다.

“자네랑 할 얘기가 없겠는데.”“어찌 자리를 피하시는 겁니까?”
“겁이 나면 우리가 알아서 가겠네.”
“갈 여력은 되는지요?”
“직접 보면 알겠지. 대신 군사들을 물려야 할 건, 자네가 될 것이야.”

김방경이 얼굴을 붉히더니 이를 꽉 깨물었다. 그 자리에서 홍다구를 거세게 밀어내는 게 아니던가. 순식간이라 누구도 말릴 틈도 없었지만. 그런데 딱히 홍다구는 바닥에 넘어지거나 뒤로 크게 밀려나진 않았다. 오히려 김방경의 휘청거림이 더 커보여, 홍다구에게 밀려난 모양새였다. 몽골군사들은 웃음소리를 숨기지 않았다. 

“그렇다면 먼저 가시게. 힘이 떨어져서 못 가나했더니, 남아 도는구먼.”

홍다구는 김방경을 슬쩍 밀어내며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자신들의 군영으로 돌아가자마자 고려군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선봉에는 김방경이 직접 나섰다. 여기서 도망치거나 뒤로 물러나는 자는 자신이 직접 처단하겠다는 명도 내렸다. 군사들은 주춤하는 기미가 있었지만 명을 거스르진 않았다. 성문 안으로 들어섰을 때, 김방경은 갑자기 군사들을 멈춰 세웠다. 날이 살짝 어둑하기도 했지만. 주변이 너무나도 어두웠다.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 드리웠고 바람도 갑자기 사방에서 몰아쳤는데. 주변에 쌓였던 돌들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람 때문이라기엔 돌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나도 군사들 사이에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돌틈 사이로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걸 누구한테 말할 새도 없이 돌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놀랠 거 없다. 각자 자리를 지켜라!”

김방경의 호령에도 군사들은 좀처럼 자신들의 자리를 지킬 수 없었다. 쏟아지는 돌의 양이 제법 많았을뿐더러, 점점 우리가 서 있는 공간을 좁혀오기 시작했다. 그 위로 낯선 무리가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창을 던지며 달려드는데, 순식간에 직접 부딪쳐서 싸우고 있었다. 문제는 당장 눈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둠이 짙게 내리 깔렸고. 옷도 검게 입었던 터라, 누구인지 얼마만큼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바람 때문에 꺼진 횃불이 한몫을 더 하였다. 나도 뒤에서 걷어차는 발길질을 피하지 못 하고 바닥에 쓰러졌고. 거기서 주변 군사들에게 발로 수차례 밟히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칼소리에 맞춰 쓰러지는 비명의 주인공은 되지 않았다는 점. 대신 내 위로 뜨거운 피를 쏟아내는 고려군사 둘이 쓰러졌다는 점이었다. 분명 삼별초의 세력은 꺾였다고 들었건만. 어째서 고려군이 꼼짝도 못 하는 걸까, 의문스러움에 빠지기가 무섭게. 저 멀리서부터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 보니, 그들이 오고 있었다. 횃불과 기마를 앞세운 몽골군들. 점점 가까워질수록 우리와 직접 싸웠던 낯선 자들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쓰러진 자는 단 한 명도 없었고.

“힘이 남아도나 했더니, 어째 맥도 못 추리는군.”

홍다구의 목소리와 함께 몽골군은 점점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김방경은 말 위에서 그를 잠시 빤히 쳐다보더니, 고려군 사이로 유유히 지나가는 그들을 그대로 놔두었다. 몇몇 부장들이 자신이라도 먼저 진격하겠다고 밝혔으나. 김방경이 고개를 내저었다.

“누가 진짜 적인지 다시 판단을 해봐야겠구나.”

혼잣말처럼 내 뱉은 그의 말에 고려군사들은 눈만 끔뻑이고 있었다. 그사이 난 쓰러진 군사들 사이에서 빠져나왔고. 고려군사들이 다시 정비하는 틈을 타서, 그들에게서도 완전히 나오고 말았다. 나는 달려가기 시작했다. 조금 전, 몽골군이 향했던 그곳으로.(계속) 

소설가 차영민.
소설가 차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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