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영민 작가의 역사장편소설

▲차영민 역사장편소설 '펜안허우꽈'. ©Newsjeju
▲차영민 역사장편소설 '펜안허우꽈'. ©Newsjeju

달렸다, 조금도 쉬지 않고. 몽골군은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서 멈춰 있었다. 잠시 전열을 정비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러기엔 이곳은 적진 한가운데 아니던가. 물론 삼별초 군사들이 모습을 드러낸 건 아니었다. 날은 여전히 어두웠고, 어디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온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주변은 고요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그들의 움직임에 잠시 집중하였다. 그래봐야, 횃불과 달빛에 비친 그림자가 전부였지만. 그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잠시 후, 아직 몽골군이 나아가지 않은 방향에서 제법 많은 무리가 쏟아지듯 다가왔다. 그들은 홍다구 앞에 무릎을 꿇더니 순식간에 몽골군 사이로 자리를 잡고 들어갔다. 머릿속을 스치는 느낌이 감돌았다. 곧바로 왔던 길로 발길을 돌렸다. 다시 고려군 사이로 돌아왔는데, 아직도 지난 기습을 수습하는 중이었다. 김방경에게 달려가서, 몽골군의 수상한 동태를 있는 그대로 알려주었다.

“알고있소.”

김통정의 무덤덤한 목소리에 잠시 할말을 잃었다.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단 말인가. 다시 입을 열려던 차에, 김통정이 말에서 내려왔다. 얼굴을 내쪽으로 바짝 붙였다.

“허나, 지금은 군사들이 알아선 안 될 사실이오.”

그렇다, 지난 기습은 최소한 삼별초가 아니라는 건 진작 눈치채고 있었던 것. 이미 고려군보다 앞서 들어간 몽골군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어쨌든 적진이고, 동맹은 고려를 완전히 장악한 대국이 아니던가. 연합군이라고 했으나, 사실상 그들에게 복종하는 자세를 유지할 수밖에. 김방경이 일일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았다. 

“다시 진군할 것이다! 다만 더 조심해야 할 것이야.”

김통정의 호령에 따라 고려군은 다시 나아가기 시작했다. 금세 앞서 갔던 몽골군과 맞닥뜨리게 되었는데. 그들은 삼별초 내성 앞에서 그대로 있는 것이었다. 전혀 공격 태세나 다른 행동은 없었고, 오로지 길게 자리만 지키는 형세였다. 거기다가 고려군이 뒤에 바짝 붙었는데도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김통정은 그저 홍다구의 뒤통수만 바라보고 헛기침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삼별초 쪽 역시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어렵사리 성문을 연 외성보다 더욱더 견고하게 쌓아올린 내성의 위용이 우리로 하여금 머뭇거리게 할 법했으나. 그렇다 하더라도 성벽 위를 지키는 군사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적진의 중심과 아주 가까이 있음에도 의문의 기습 말고는 어떠한 위협도 받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고려군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몽골군 쪽에서 군사 몇몇이 달려왔다. 홍다구의 직속 부장이란 자가, 김통정 앞으로 다가왔다.

“대장군께선 고려의 솜씨를 보고 싶어합니다.”

그 말인즉슨, 일단 우리가 달려들어 보란 뜻이었다. 몽골군 부장이 말을 꺼내기 무섭게, 고려군이 나아갈 길이 열렸다. 정확하게는 몽골군이 양쪽으로 진을 치고 가운데로 좁게 나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오른쪽 전면에 자리를 잡은 홍다구가 손짓하고 있었다. 김통정은 대답없이 손짓으로 군사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아가는 발걸음은 어째 서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여기까지 오는 것보다 훨씬 더 느리게 한 발자국씩 떼고 있었다. 

“고려의 군사들이 이리 겁을 먹었단 말인가!”

홍다구부터 시작된 웃음은 금세 몽골군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사이 우리는 그들을 양옆에 두고 정확하게 중심까지 이동하였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성벽과 마주하는 것인데, 김통정이 갑자기 손을 들었다.

“멈추어라.”

순간, 몽골군에 적막이 내리 앉았다. 특히 김통정과 거의 나란히 서 있던 홍다구가 눈빛에 날을 바짝 세웠다. 나머지도 마찬가지였다. 양옆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은 우리를 감도는 바람보다 더 차가웠고 날카로웠다. 

“지금 뭣하는 건가?”

홍다구가 목소리를 살짝 높였다. 하지만 그를 올려다보는 김통정의 눈빛이 서늘하였다.

“저들은 안에서 꼼짝도 안 할 궁리로 보입니다.”

“그러니, 가서 대원제국의 군사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이르거라.”

“하온데, 여기 오기 전 우리 고려군은 기습을 당했습니다.”

“막다른 길에 몰리면 뭐라도 해볼 수도 있지. 그게 대원제국의 무서움이니라.”

“쥐새끼처럼 치고 빠지는 것이, 참 요상합니다. 무엇이 그리 무서웠던 건지.”

“한가로이 농이나 나누자는 건가?”

“그저 의문이었을 뿐입니다. 어찌되었든 겁을 먹은 쪽이 어떻게든 움직이겠지요.”

김통정이 피식 웃어 보이자, 홍다구가 갑자기 칼을 빼 들고 겨누었다. 그와 동시에 고려군이 양옆에 몽골군을 상대로 칼을 뽑았다. 몽골군사들도 마찬가지로 똑같이 대응하였다.

“감히 대원제국을 욕보이는 것이냐?”

“제 발 저린 쪽이 어떻게든 몸부림치지 않겠습니까?”

“도대체 누가 제 발 저렸다는 것이냐!”

“그걸 어찌 알 방도가 있겠습니까. 어째 많이 예민하신 모양입니다.”

“내 기필코 군법으로 다스릴 것이다.”

“제가 모시는 건 고려의 왕이옵니다.”

“뭣이!”

바람이 휘몰아쳤다. 밤은 점점 더 깊어졌고, 두 사람의 목소리는 점점 더 하늘로 향하였다. 그 사이 고려군과 몽골군의 간격은 점점 좁혀들었는데, 여전히 삼별초가 있을 성 쪽에서는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다. 오로지 달빛만이 성벽의 존재감만을 알려줬을 뿐. 불빛 하나 새어 나오지 않은 성벽을 코앞에 두고 양측의 살기는 점점 목을 조여올 뿐이었다. 피비린내가 갑자기 코끝을 간질거리는 듯했다. 일단 나도 바짝 다가오는 몽골군 군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를 꽉 깨무는 순간, 우리의 머리 위로 바람을 가르는 화살 스쳐 지나갔다. 순식간이었지만 이 공간에 있는 모두 분명히 본 것이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날아든 것인가!(계속)

소설가 차영민.
소설가 차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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